수백만원 들여 서류 위조 후 정식 입국…국제면허증 구매해 신분증 활용 불법체류도
냉동 컨테이너 박스에서 사망한 한 여성은 영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우리 돈 약 4500만 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는 베트남인들이 밀입국 방법에 따라 최소 700만 원에서 최대 5000만 원까지의 비용을 내고 있으며 이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밀입국 알선 시장 규모도 연간 7조 원에 이른다고 10월 28일 보도했다.
영화 ‘해무’ 홍보 스틸 컷
비대해진 밀입국 시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이미 냉동 컨테이너 집단 사망과 유사한 일이 벌어진 바 있다. 2001년 중국인 60명이 ‘태창호’에 숨어 전라남도 여수로 밀입국을 하려 했으나 경찰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모두 질식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영화 ‘해무’로도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비극적 참사가 거듭 반복됨에도 ‘코리안 드림’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양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해상을 통해 밀입국을 하려다 검거된 밀입국자는 2016년 30명, 2017년 39명, 2018년 56명으로 매년 그 수가 늘고 있다. 불법체류자 역시 법무부 통계 기준 2016년 약 20만 명에서 2017년 약 25만 명으로 늘어났고 2018년에는 약 35만 명을 기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밀입국 방법이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발전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로 들어오는 밀입국자 상당수는 정식 입국 절차를 밟고 있다. 쉽게 말해 서류를 조작해 들어오는 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화물 수송 컨테이너 박스나 어선을 이용해 입국했다면 최근에는 위‧변조된 여권이나 서류를 통해 입국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개 호적을 위조해 국내에 가족이 있는 것처럼 속이거나 업무상 기업 초청서를 받은 사업자로 위장해 입국하고 있다. 이런 위조 서류는 브로커를 통해 200만~800만 원에 구할 수 있으며 위조 서류만 전문으로 하는 곳도 생겨 4~5일이면 완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보니 밀입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정적 여론과는 별개로 국내 공항과 항만 보안 경비가 허술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허위 서류 한 장으로 15년간 한국인으로 산 중국인도 있었다. 중국 국적의 A 씨는 2002년 신원 미상의 브로커의 도움으로 조O범이라는 가명으로 가짜 호적을 만들어 한국에 들어왔다. 놀라운 사실은 A 씨가 한국에 입국한 지 2년 만에 조O범이라는 이름으로 귀화 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점이다. 조작 서류 한 장만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셈이다.
조O범으로 살던 A 씨는 2008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탈세)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중국으로 도망쳤다. 그는 직접 출입국 사무소를 찾아가 “나는 중국 국적의 A인데 밀입국했다”고 자수한 뒤 자진 출국했다. 이로써 허위 서류로 탄생한 조O범은 한국에 남아 있는 것처럼 만들고 진짜 A 씨만 빠져나간 것이다.
중국에 숨어있었던 A 씨는 수사가 잠잠해진 틈을 타 다시 입국을 시도했다. 2010년 1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A 씨는 출입국 심사에서 조O범 명의의 여권을 내밀었으나 출입국심사 담당 공무원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A 씨를 보내주었다. 해외로 도주해 2년 동안 탈세 수사를 받지 않았지만 수사당국에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9년 8월에서야 A 씨는 출입국관리법위반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형을 선고 받았다. 2002년부터 첫 입국 이후 17년 동안이나 허위 신분으로 아무 문제없이 국내외를 오간 것이다. 이 때문에 재판 과정에선 A 씨의 신분을 명확히 알기 위한 유전자검사실험까지 이뤄졌다.
공항에서도 밀입국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위조 여권은 사용하는 것은 물론 환승 여행객이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제운전면허증을 위조해 불법 체류에 이용한 밀입국자도 있었다. 중국 국적의 B 씨는 2006년 칭다오항에서 선적 미상의 배를 타고 인천항을 통해 밀입국한 뒤 13년간 국내에 체류했다.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B 씨는 운전면허가 필요함을 느끼고 브로커로부터 150만 원에 필리핀 국제운전면허증을 구매했다. B 씨는 국제운전면허증을 신분증 대용으로 사용했고 이후 여권을 요구하는 경찰에게도 이 운전면허증을 제시해 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제주도 무사증 입국제도를 악용한 무단이탈 및 불법체류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제주특별법 제156조 제1항에 따르면 제주도는 테러지원국을 제외한 180개국 외국인에 한해 한 달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무사증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밀입국을 시도한 자는 최근 5년 동안 344명에 달한다.
실제로 2019년 3월 몽골인 C 씨가 제주도 입국 일주일 만에 브로커의 승합차 트렁크에 몸을 숨긴 채 완도까지 밀항을 하다 적발됐다. 이 브로커는 제주항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무요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브로커는 1인당 200만~250만 원의 돈을 받고 몽골인 30여 명을 육지로 이동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C 씨는 출국 조치되었다. 이 밖에도 이집트 국적의 D 씨가 비닐봉지에 신발과 옷가지를 넣고 4시간을 헤엄쳐 육지로 오는 등 다양한 형태의 밀입국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인권센터 관계자는 “밀입국은 사회적, 경제적, 개인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현상이다. 밀입국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처벌보다는 현행법이 갖고 있는 제도적 맹점들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밀입국 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