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친구 위해, 피해자 입막음용 등 영상 보며 연대감 얻지만 명백한 범죄
10월 20일 페이스북 한 페이지에 올라온 ‘최근 익산에서 일어난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게시글. 사진=페이스북 캡처
이른바 ‘익산 여중 집단폭행사건’의 가해자는 경찰조사에서 “피해자가 말을 듣지 않고 연락을 피해 때렸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10월 9일 낮 전북 익산시 모현동 한 교회 인근으로 피해자를 불러 무릎을 꿇게 한 뒤 피해자의 머리를 움켜진 채 40여 차례 뺨을 내려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잘못했다”고 비는 피해자의 몸에 담뱃재를 터는 등의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가해자는 폭행 과정을 직접 찍었고 이 영상이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대중들의 공분을 샀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대전 지역의 중학생들이 동급생을 집단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공터 등에서 폭행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피해자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가 하면 다른 동급생을 불러내 강제로 싸움을 붙이고 심한 폭행으로 구토를 하는 피해자 앞에서 웃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기도 했다.
10대 청소년의 집단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눈에 띄는 부분은 폭행 과정이 담긴 영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영상들은 CC(폐쇄회로)TV에 찍힌 것도 아니고 목격자가 촬영한 것도 아니었다. 폭행 가해자가 직접 찍어 소장하거나 SNS에 공유해 알려지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퍼진 영상이 유명해지면서 과거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 경찰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폭행 영상은 경찰 수사에서 확실한 증거가 된다. 가해자가 스스로 영상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은 사실상 자백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셈이다.
온라인을 통해 폭행을 사전에 모의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는 청소년들.영상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추후 불리한 증거로 작용함에도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영상을 찍고 공유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청소년들의 활동영역이 전국 단위로 넓어진 데 있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학교 친구’나 ‘동네 친구’보다는 ‘온라인 친구’가 더 많아졌고, 물리적 한계로 직접 만날 수 없을 경우 SNS를 통해 폭행을 사전에 모의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려 영상을 남긴다.
서울시 내 청소년쉼터를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는 A 군(16)은 10월 25일 일요신문과 만나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다른 지역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린다.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가장 친한 친구는 부천과 부산에 산다. 평소에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분당이든, 인천이든 지역을 정해 만난다. 못 오는 애들을 위해 인터넷 방송으로 실시간 생중계를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A 군 역시 다른 지역 친구들로부터 폭행 영상을 공유 받거나 이들이 중계하는 인터넷 방송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부산 친구가 ‘말 안 듣는 후배 두 명이 있으니 참교육 하러 오라’고 한 적이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 못 갔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가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해줬고 방송을 통해 그 후배에게 몇 번 욕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발생한 이른바 ‘수원 노래방 폭행사건’ 역시 공모자들에게 그날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찍은 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된 사례다. 가해자들은 참석하지 못한 다른 가담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폭행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고 이를 단체 채팅방과 SNS 등에 게시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이날 폭행을 위해 서울과 인천, 광주 등 전국에서 모였으며 모두 온라인을 통해 만난 사이로 알려졌다.
폭행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는 또 다른 이유는 피해자의 입막음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서다. 과거 폭행사건으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는 B 군(17)은 “영상을 찍어서 가지고 있으면 맞은 애는 노예나 마찬가지다. 대드는 후배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잡뒤’(잡히면 뒤진다의 준말)를 걸어 때리는 경우가 많다. 애들 입장에서도 맞는 영상이 퍼지면 부끄러우니까, 그걸로 협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행의 증거물이 되레 피해자를 협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위의 기저에는 과시욕과 군중심리, 그리고 유대감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은 “청소년 범죄의 가장 큰 특징은 후일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년법 형량이 약하다는 것은 사실 가해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다. 또래집단에서 자신이 어떻게 비치느냐의 문제다. 폭행 영상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나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것”라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영상을 찍고 공유함으로써 얻는 연대감을 지적했다. 오 교수는 “청소년 범죄는 성인 범죄와 매우 다르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발생하는 성인 범죄와 달리 청소년 범죄는 물리적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단순한 형태로 집단적 범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종의 군중심리인데 범죄 현장이 담긴 사진, 영상 등을 돌려보면서 책임감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독자적 범행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그 사이에서 왜곡된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접 폭행 현장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영상을 찍고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다. 박옥식 청소년폭력연구소장은 “미디어 세대는 자신과 관련 없는 타인의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현실세계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보상심리의 일환으로 자극적인 영상을 찾아보고 공유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타인의 폭행 영상을 보고 유포하는 행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상 사이버 폭력으로 구분되며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에도 저촉되는 범죄다. 많은 청소년 피해자들이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이후 남는 영상으로 더 큰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학교 폭력 및 청소년 범죄에 대한 법적 제동 장치를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