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그룹 활동기간 5년으로 늘어 소속사로선 부담 “탈락 멤버도 눈여겨 봐야”
조작 논란의 시발점이 됐던 프로듀스X101. 사진=Mnet 제공
연예계 전반을 넘어서 사회적 이슈로까지 비화된 ‘프듀 조작 논란’은 그야말로 대국민 사기 사건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공분을 이끌어냈다. 단순히 프로그램 시청자들 사이에서만 들끓는 게 고작이었던 이전의 논란과 달리 국회의원들까지 앞다퉈 향후 수사 방향과 대책을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구속된 ‘프듀 시리즈’ 담당 제작진 안준영 PD와 김용범 CP(총괄 프로듀서)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업계의 큰손으로 불린다. 이들은 2010년대 Mnet의 간판 프로그램 ‘슈퍼스타 K’ ‘댄싱9’ 등의 연출을 맡아 대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프로듀스 시리즈를 이끌어 프로젝트 걸그룹 I.O.I(아이오아이)와 보이그룹 워너원을 데뷔시켰다. 유료 문자 시스템을 도입해 “국민 프로듀서가 직접 자신만의 아이돌을 데뷔시킨다”는 방식이 대중들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면서 이들은 데뷔 전부터 막강한 팬덤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 이 같은 성공을 발판으로 그 직후 이어진 ‘프로듀스48’ ‘프로듀스X101’을 통해 각각 걸그룹 아이즈원과 보이그룹 엑스원이 탄생했다.
당초 안 PD는 조작 논란이 불거진 당시 “PD 픽(pick·투표수와 관계없이 데뷔 멤버를 PD가 정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수사 과정에서 결국 조작 사실을 시인했다. 현재까지 그가 조작을 인정한 프로그램은 ‘프로듀스48’과 ‘프로듀스X101’이다. 앞선 프로듀스101 시즌 1과 2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안 PD 등 제작진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연예기획사들에게 강남 일대 유흥업소에서 약 40여 차례 접대를 받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투표수를 조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접대액은 한 번에 수백만 원씩으로 총 1억 원이 넘을 것이란 게 경찰의 주장이다. 이처럼 경찰이 잡은 ‘가닥’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태는 2010년대에서 가장 큰 연예계 스캔들이 된다.
#프로그램 후광 입고 소속사 활동 “빼달라”도 있었나
지난 8월 데뷔한 엑스원. 사진=박정훈 기자
경찰은 프듀 시리즈의 ‘데뷔 멤버’를 정조준하고 있다. 데뷔조가 결정되는 마지막 생방송 경연에서 유력 데뷔 주자로 예상됐던 연습생들은 탈락하고, 의외의 연습생이 최종 데뷔 조에 포함된 것은 투표 조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서 유흥업소에서의 접대 역시 데뷔를 목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던 ‘국민 프로듀서’들은 다른 측면도 바라보고 있다. 데뷔조에 ‘넣어달라’는 소속사 외에 ‘빼달라’는 요청을 한 소속사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앞선 프로듀스 시리즈의 이름값에 힘입어, 출연으로 주목은 받되 프로젝트 그룹이 아닌 자사 소속 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투표 조작을 묵인하거나 별도로 누락을 요청했을 가능성이다.
이 같은 의혹은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부 연습생의 미심쩍은 순위 변동으로 말미암았다. 최종 데뷔조 선발 직전에 이뤄진 경연과 문자 투표에서 줄곧 하위권을 맴돌던 연습생이 갑자기 상위권으로 치솟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가 프듀 시리즈의 매 프로그램 방송마다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쉽게 탈락한 이들이 ‘투표 조작에 희생된 연습생’이 아니라 사전에 PD와 미리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프로듀스48’을 통해 결성된 한일합작 프로젝트 그룹 아이즈원. 사진=박정훈 기자
의혹은 프로듀스X101에서부터 불거졌다. 다른 프로듀스 시리즈와 달리 프로듀스X101의 경우는 최종 데뷔조인 엑스원의 활동 기간이 5년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속사들 사이에서도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선 I.O.I나 워너원, 아이즈원의 경우는 각각 활동기간이 1년과 1년 6개월, 2년 6개월 수준이었다. 연습생들은 각자 별개 소속사에 소속돼 있고, ‘단기간에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하는’ 프로젝트 그룹의 특성상 오랜 기간 활동하는 것은 소속사에 큰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엑스원의 경우도 정식 활동 기간이 나오기 전까지는 “길어야 3년 남짓 활동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장기간의 활동이 계획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탈락자들 가운데서도 제작진과의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이미 제작진이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연습생 20명의 순위를 1위부터 20위까지 미리 정해놓은 상태에서 방송을 진행했다고까지 인정한 상태다. 투표와 별개로 선발은 ‘PD픽’으로 이뤄진 것이 확실시 된 만큼, ‘탈락’과 관련해서도 제작진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이 정도 조작이었다면 내부에서도 데뷔를 원하는 소속사와 그렇지 않은 소속사, 그리고 제작진 모두가 만족하는 ‘딜’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프로그램 화제성은 업고 가되 엑스원으로 활동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방송 분량은 챙기고 투표만 조작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데뷔조만 겨냥할 것이 아니라 그 직전에 순위 등락이 심했던 연습생들의 경우도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작그룹’ 오명 쓴 엑스원·아이즈원의 향방은
어른들의 ‘장난질’에 희생양이 된 탈락 연습생들은 물론, 이미 데뷔를 마친 그룹의 활동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11일 첫 번째 정규앨범 ‘BLOOM*IZ’를 발매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 중이었던 아이즈원의 타격이 크다.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아이즈원은 첫 번째 정규 앨범 ‘BLOOM*IZ’의 발매를 무기한 연기했다. 사진=오프더레코드 제공
아이즈원의 소속사 오프더레코드는 11일 예정됐던 쇼케이스를 전면 중지하는 한편, 앨범 발매 역시 연기하고 기약 없는 활동 중단에 들어간 상태다. 이번 활동에 맞춰 예정돼 있던 컴백쇼와 예능 방송 출연도 줄줄이 편집과 결방을 결정했다. 컴백 자체가 무산됐고, 방송가는 ‘아이즈원 지우기’에 앞 다퉈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각 멤버들이 소속된 개별 소속사는 물론, 이들의 프로젝트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소속사 오프더레코드 역시 무거운 침묵으로 사태를 관망 중이다.
반면 이번 논란의 시발점이 된 엑스원의 경우는 활동 강행 움직임을 보여 빈축을 샀다. 엑스원은 1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K-POP 페스타 인 방콕’, 1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2019 브이라이브 어워즈 V하트비트’에 참석해 정상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논란에 대해서는 아이즈원과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 강행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아이즈원과 마찬가지로 엑스원 역시 수사 과정에서 데뷔 멤버들의 소속사가 압수수색을 당하는가 하면, 일부 소속사 관계자는 투표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지목돼 제작진과 함께 나란히 수사 선상에 오르기까지 했다. 논란의 중심이자 시발점인 만큼 이들의 정상적인 활동은 아이즈원 이상으로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현재 경찰이 프로듀스 시리즈뿐 아니라 CJ ENM 전체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 그런 상황에서 사태를 촉발시킨 엑스원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난 8월 언론을 입막음하려 들었던 것처럼 쉬쉬하면서 빠져나갈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내부적으로도 각 멤버들의 소속사에서 엑스원 활동을 중단하고 다른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