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형법으로 단죄 가능한 만화·애니 기소…실제 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 단속에 집중해야
임 씨는 지난 2010년 5월부터 3년 가까이 본인이 대표로 있는 공유 사이트에 일본의 성인용 에로 애니메이션이 올라오는 일을 막거나 파일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2심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방조죄로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는데, 대법원이 이를 “원심이 법리를 오해했다”며 뒤집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입장에서 난감한 건 이 사건의 기소에 쓰인 두 법률 가운데 하나가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라는 데에 있다.
#아청법의 정체
아청법은 19세 미만인 아동과 청소년을 성범죄에서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본래 2000년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로 출발해 2009년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으로 개정됐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2011년 9월 15일 공포되어 2012년 3월 16일부터 시행된 재개정안부터 이어져 온 기준 조항이다.
현행 아청법은 법의 정의에 해당하는 제2조에서 개정 전 ‘아동·청소년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①성교 ②유사성교 ③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④자위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적용 범위를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후략)’로 확장했다.
모호한 기준으로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기 때문에 1997년 청소년보호법과 2012년 웹툰 검열 사태를 겪었던 만화 창작자들을 비롯해 일본 쪽 성인 에로 애니메이션 하청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업계, 소녀 캐릭터 일러스트가 많이 쓰이는 게임 업계들에서 큰 우려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정 직후 해당 법률을 적용해 접수된 사건 건수가 그 전 해에 비해 22배, 기소 건수도 13배나 늘어났다.
이 증가세 대부분이 당시 실제 성범죄가 아닌 일본 에로 만화·애니메이션 불법 공유 적발로 일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헌 및 적법성 논란이 이어지자 최민희 전 국회의원(당시 민주통합당)이 2013년 2월 범위를 정의한 제2조 제5호의 전면 개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김희정 전 국회의원(당시 새누리당)이 같은 해 6월 역시 제2조 제5호에 ‘명백한’이라는 낱말을 추가하는 선에서 개정해 지금에 이른다.
하지만 이후에도 불명확하고 넓은 기준으로 말미암은 무분별한 단속이 이어지고 단속 분위기에 업계가 몸을 사리면서 크고 작은 피해가 연이어 발생했다. 그나마 2013~2014년 들어서 성인이 교복을 입고 출연한 에로 영상을 위헌 취지로 무죄 판결한 사례가 나오고, 2015년 헌법재판소가 제2조 제5호의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법의 적용대상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수준의 것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마구잡이로 단속하던 분위기는 일단 잦아들었다.
한동안 큰 이슈 없이 넘어가는 듯했던 아청법은 2019년 들어 중요한 판례가 확정되기 시작한다. 2019년 5월 30일 대법원에서는 웹하드 사이트에 교복을 입은 캐릭터가 성교를 하는 장면이 담긴 에로 애니메이션을 게시한 72세 남성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판결은 제2조 제5호가 정하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의 판단 기준을 풀이해 내어놓은 최초의 판결로, 아청법 적용 대상이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보아 명백하게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라면서 개별적 사안에서 작품 속 줄거리부터 세부 묘사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2019년 11월 6일에 있었던 애니메이션 공유자 파기 환송도 이 판결의 기준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헌데 일면 그럴싸해 보이는 이 말은 법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오류 앞에선 억지 해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대중을 우중으로 취급하나
아청법이 규제하고자 하는 대상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다. 곧잘 ‘이용’이란 낱말을 빼고 언급되곤 하지만, 본래는 실존하는 아동이나 청소년을 ‘이용’해 제작한 음란물이 이 법의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당국은 여기에 덧붙은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라는 조항의 모호성을 문제 삼기보다 선심까지 깨 가면서 법 적용 기준을 좁히는 형태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발상으로 아청법 비슷한 법을 발의한 사례가 2012년 덴마크에서도 있었다. 법안이 발의되자 덴마크 법무부 장관이 코펜하겐 대학병원에 연구 조사를 의뢰했는데, 발의자의 바람과는 달리 ‘애니메이션과 같이 가상 캐릭터로 하는 성애 묘사는 현실에서 아동 성범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기지 않는다’라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덴마크판 아청법 제정 시도는 무산됐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당국은 초반에 비해 적용 범위를 좁히려는 노력을 할 뿐 여전히 똑같은 발상으로 법봉을 휘두르고 있다. 그나마 범위가 좁혀졌으니 다행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법 조항이 남아 있을 때 그 법률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만화가 겪어온 역사가 잘 증명하고 있다. 법이 그대로라면 해석 기준은 법원이 바꾸면 그만이고, 그 기준이 한국의 대중문화와 그 창작자를 겨누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기소당한 이들이 저지른 행위는 파일 불법 공유나 음란물 제작 유포 등 얼마든지 일반 형법으로 단죄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를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및 배포라고 얽어 넣는 건 호환 마마를 거론하던 옛 캠페인 수준이나 다름없을 만큼 대중을 우중으로 취급하는 일이다. 물론 법은 입법부가 만드니 국회부터 법을 바꾸려 해야겠지만, 사법당국 또한 법조항의 근본적 문제를 회피하고 억지로 단죄할 이유를 만들기보다 실존하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 범죄를 강력 처벌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당장 사법부는 얼마 전 다크웹 사이트를 열어 진짜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동영상을 유통한 23세 남성에게 1심 집행유예에 이어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과연 누굴 ‘보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