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처 막히고 내쫒기는 ‘길냥이’, 죽음으로 내몰려
길냥이게 사료를 주고 있는 ‘캣맘’ 박씨(60), 길냥이들이 눈치보지 않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아파트 베란다 밑에 마련된 그릇에 어렵게 사료를 보충해주고 있다.
[일요신문=전주]신성용기자=“보람을 느끼기보다는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아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25일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박인정씨(가명·여·60)는 우리가 ‘캣맘’이라고 부르는 길고양이 보호활동을 하는 봉사자이다. 그녀에게는 봉사자로서의 보람이 성취감보다는 더 많은 아픔을 품고 산다.
‘캣맘’(Cat mom)은 주인이 없는 도시 등 지역에서의 야생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보금자리를 챙겨주는 등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이르는 신조어이며 길고양이는 길냥이로 불린다.
박씨가 ‘캣맘’을 시작한 것은 올해 5월부터로 불과 6개월여에 불과하다. 짧은 기간 동안 박씨에게 지금까지 길냥이와의 만남은 보람이나 성취감보다는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점철돼 있다. 길냥이들의 거처를 청소하고 사료와 물을 주는 일이지만 인간들의 탐욕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고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가 사는 곳 전북 전주시 완산구 용머리로 194번지는 단지면적이 11만 155㎡로 전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 효자주공3단지 아파트로 5층짜리 아파트가 무려 35개 동이나 된다.
1984년에 완공돼 무려 35년이나 지나 아파트여서 조경수가 울창해 도심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공기가 맑은 아파트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할 만큼 건축이 노후한 상태이다. 그만큼 관리도 소극적인 상황으로 이 같은 환경은 오고 갈 데 없는 길냥이들에게는 적당한 서식처가 되고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쓰레기 배출구와 지하 공동구 등이 길냥이들의 거처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은 더위는 그런 데로 피할 수 있지만 추위를 견디기는 어려워 보이고 위생 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박씨가 길냥이와 함께하게 된 것은 아파트 입구 쓰레기 배출구에서 발견한 새끼 고양이 3마리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배가 고파 울고 있는 고양이 새끼들에게 사료와 물을 주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비록 집에 데려가 키울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름을 지어주고 부르면 달려올 정도로 정이 들었다. 그런데 “사료와 물만 주면 되겠지”라며 쉽게 생각했던 것이 갈수록 일이 커졌다. 박씨가 먹이를 주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근에 살고 있는 길냥이들까지 몰려들어 뜻밖에 문전성시를 이룬 것이다.
일이 늘고 사료 구입비도 부담으로 다가 왔다. 그렇다고 날로 커가며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 새끼들만 챙기고 다른 길냥이들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아파트 경비원을 통해 아파트 단지 전체를 돌며 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이 활동한 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본격적인 ‘캣맘’의 길을 걷게 됐다.
오래 전부터 활동하고 있는 그 ‘캣맘’은 효자주공 3단지는 물론 인근 주택가와 아파트까지 길냥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에 감동을 받은 박씨는 아파트 35개 동 가운데 10개 동을 맡기로 약속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매일 아침 7기 30분부터 30분~1시간가량 길냥이들의 거처를 돌며 사료와 물을 주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캣맘’으로서 보람보다는 아픔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길냥이들을 혐오하는 주민들은 그녀의 활동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조롱과 욕설까지 퍼부었다. 여기에 그들이 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냥이 학대행위가 그녀의 가슴을 후볐다.
사람들이 길냥이들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들어보면 발정기 울음소리가 대부분이다. 시끄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내에 있으면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먹이가 없어 쓰레기봉투나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지만 ‘캣맘’이 먹이를 주는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도 길냥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야생성이 강하고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잘한다는 잘못된 인식과 막연한 혐오감 때문이라고 한다.
주위를 경계하며 불안한 모습으로 사료를 먹는 길냥이, 왼쪽 뒷다리에 커다란 상처가 보인다.
“사실 길냥이들은 인간들에게 거의 해를 주지 않습니다. 또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고양이를 혐오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들에 의해 고양이들이 상처받고 죽임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고양이들이 며칠 동안 사료를 먹지 않아 주위를 살펴보다 지하 공동구 통로를 막아 놓아 그 안에서 굶어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 적도 있다. 위생상태가 열악해 병에 걸린 길냥이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다. 두들겨 맞고 도망치다 차에 치인 길냥이들도 많다. 골목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동물의 대부분은 길냥이들이다. 겨울철 추위에 떨다가 자동차 엔진 밑에서 몸을 덥히다가 치어 죽은 길냥이가 적지 않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여기에 그녀가 충격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 키우다 내다버린 유기 고양이가 상상외로 많다는 것이다. 길냥이 대부분이 유기되거나 학대를 피해 집에서 도망을 나온 고양이라고 한다.
박씨는 가끔 처음보는 고양이들 가운데 말이 통하는 고양이를 발견하곤 한다. 집에서 키워지다 버려진 고양이들이다. 아파트 단지가 넓고 나무가 많아 이곳에 고양이를 몰래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박씨는 이 중 어리고 허약한 고양이들을 데려다가 치료해 입양을 주선하거나 보호기관에 넘기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크고 건강한 고양이는 사료와 물을 줄 뿐 방치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길냥이를 돌보는 그녀에게 “왜 밥을 주며 길냥이를 키우느냐?”며 항의하고 욕설을 한다.
그녀가 자신의 신분을 극구 밝히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일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주변의 괄시와 조롱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길냥이에게 사료와 물을 주고 있는 캣맘 박씨.
“결국 인간들의 탐욕이 길냥이들을 만들고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미안한 생각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박씨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걱정이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얼마나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는 거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이상 그들을 돌볼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당장 사료값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다 유기 고양이 진료와 치료비도 감당하기 버거운 실정이다. 다행이 13년 전 유기된 새끼 고양이를 집에 데려와 ‘캣맘’을 만들어 준 딸이 사료값을 보태고 동물애호가인 잘 아는 카페 주인의 도움으로 길냥이 밥 걱정은 덜었다.
그러나 나머지 문제도 녹녹치 않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더 이상 불행한 길냥이들을 자생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선 번식을 막기 위한 수컷들의 중성화 수술이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으나 현실은 쉽지 않다.
정부가 지원하는 수술비로는 수술 직후 곧바로 방생시켜야 돼 수술 부위 감염으로 인한 폐사 위험이 높은 실정이다. 2~3일 정도 회복 시간만 있어도 중성화 수술의 후유증을 막을 수 있는 데도 하루 3만 5,000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어 박씨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기에 진행되고 있는 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그녀에게 시름을 더한다. 재건축이 불가피하지만 이로 인해 아파트 단지에서 쫒겨나야 하는 길냥이들의 거처가 막막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들지 않았는데 사람들을 물고 할퀴는 길냥이는 없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길냥이를 혐오하지 말고 피해가 없다면 차라리 길냥이를 간섭하지 말고 놔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길냥이들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길냥이의 영역을 빼앗은 것입니다”
박씨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사료비와 진료지 등 물질적인 후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이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모든 이들을 반성하게 한다.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