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MBC ‘PD수첩’ 캡처
마약 청정국가라는 말은 옛말이 됐따. 경유지, 화물 세탁지로 각광받던 대한민국을 직접 노린 마약왕이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우리 동네까지 이어지는 거대 마약 유통 조직의 우두머리, 코리안 마약왕 그리고 마약청정국이란 헛된 신화 속에서 안주하다가 마약에 속수무책이 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추적한다.
서울 서부경찰서에서 검거된 30대 김 아무개 씨. 그는 추적이 어려운 SNS를 이용하여 판매자와 직접 만나지 않고도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구매했다고 털어놓았다.
단순투약자인 김 씨의 말을 믿기 어려웠던 경찰은 시험 삼아 검색해 본 마약 광고를 통해 진짜 마약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들자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전국적인 규모, 1년여가 소요된 수사 끝에 오피스텔에 거점을 두고 마약을 팔아오던 판매책 일당들이 잡혔다. 그 마약을 해외에서 가지고 들어왔던 밀반입책 일당까지 검거됐다.
그러나 꼬리가 잘려도 계속 해외에서 마약을 보내던 이 조직 최고의 ‘머리’가 잡히지 않았다. 캄보디아에서 마약을 보내는 최고 ‘상선’, 마약왕 H를 잡기 위해 서부경찰서 강력팀, 국정원, 인터폴의 합동 수사가 펼쳐졌다.
팀은 마약이 유통되던 장소가 놀랍게도 초등학교 앞, 주택 등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밝혀 냈다.
검거된 조직원 최근까지 80여 명, 드러난 밀반입 량 약 5.6kg, 동시투약 약 20만 명 분이다.
그가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들여온 마약은 밝혀진 것만 최대 200억 원 어치에 달한다.
‘마약왕 H’의 측근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는데 마약왕 곁에서 환전을 통해 마약 수익금을 충당해주고 H에게 마약을 받아 밀반입할 ‘가짜 관광객’의 현지 안내를 도왔던 인물이었다.
그에게서 들었던 H는 신출귀몰했다. 건설회사 사장, 히피, 폭력조직의 우두머리 등 측근마저도 그의 과거와 진짜 얼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제작진은 지체 없이 캄보디아로 날아갔다. 현지의 ‘H’ 관계자들은 오히려 그가 ‘호인’이라고 기억했다. 100달러씩 팁으로 툭툭 넣어주고 소탈한 모습을 했단다.
그의 흔적을 따라 가던 중 제작진은 동아시아의 마약 유통에 깊게 관련된 인물인 마약상 K를 만났고 거대 마약상 K에게서도 ‘H’의 놀라운 면모를 듣게 되었다.
누군가 뒤를 봐주지 않고서는 그렇게 대담한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는 동종업계의 인물도 놀랄 만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국정원도 검거에 애를 먹었다. 수차례 미끼를 던져 유인한 후 검거하려던 계획이 무너졌다.
한 호텔에서는 사복경찰과 요원들로 물샐 틈 없이 경비를 해놓은 이후 놀랍게도 케이크 하나가 배달되었고 마치 조롱하듯 케이크 안에 소량의 필로폰만 넣었던 마약왕 H이었다.
H씨 일당들은 ‘공짜 해외여행’ ‘해외 고수익 취업’ 등의 광고 글을 온라인에 퍼뜨리며 운반책을 모집했다.
광고에 속고, 지인에게 설득 되어 ‘공짜 여행’이라는 이름의 밀반입에 가담하게 된 평범한 우리 이웃들. 유혹에 쉽게 넘어가 하루아침에 인생이 완전히 파괴되어 ‘마약 사범’ 꼬리표를 달고 살게 된 그들을 만나봤다.
평범하고 선량한 일반 주부들, 여성들. 그리고 더 나아가 지적장애인마저도 밀반입책으로 이용하고 버렸던 ‘H’ 일당의 무자비함과 모른 채 당했던 밀반입책들의 사연이 드러난다.
또 반년의 긴 취재 끝에 마약 거물을 만나 그가 감시망을 뚫고 마약을 유통할 수 있었던 치밀하고 계획적인 이야기를 들어 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