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주’와 ‘선수’ 뒤 정치권 인사 포진설, 정보 창구 활용 의혹…법조계 “친분과 범죄 입증은 별개”
검찰 수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신라젠의 미공개 정보 활용 주식 거래는 수사가 진행 중이고, 라임자산운용도 임직원에 대한 지명수배가 내려지는 등 수사가 한창이다. 자연스레 법조계는 ‘어디까지 수사가 올라갈 수 있을지’를 주목하고 있다. 쩐주(투자 세력)와 선수(주가조작 세력)의 뒤에는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고, 이들과의 관계가 깨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게 공공연한 얘기다.
#라임 타고 계속되는 수사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하고 도주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에 대해 지명수배를 내렸다. 코스닥 상장사 리드 횡령에 연루된 혐의인데, 리드의 부실 운영 과정에 라임자산운영이 깊숙하게 관여한 정황을 검찰은 주목하고 있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 당시의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부장검사 김영기)은 11월 15일 예정됐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에 대해 지명수배를 내린 뒤 추적 중이다. 검찰은 리드의 전·현직 경영진이 회사 돈 800억 원가량을 빼돌린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하다 이 전 부사장 등 라임자산운용 측 인사들의 관여 흐름을 포착했다.
2015년 코스닥에 상장한 디스플레이용 장비 전문업체 리드는 최대주주가 여러 차례 바뀌는 과정에서 3000원대이던 주가가 지난해 2만 원대를 넘을 정도로 급등했다. 그 후 끊임없이 하락해 현재 753원에 거래가 정지됐다. 라임자산운용은 리드 전환사채(CB)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최대주주에 올랐다. 검찰은 이 전 부사장 등이 리드 경영진의 횡령 혐의에 가담한 정황을 포착했고, 지난 11월 13일 이 전 부사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이 전 부사장은 영장심사에 나타나지 않은 채 잠적했고 검찰은 그를 지명수배 조치했다.
라임자산운용이 주목받는 것은 단순 리드 때문이 아니다.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했던 종목 중 일부는 ‘주가 관리(주가조작을 순화해 부르는 용어)’가 세게 붙었던 곳으로, “세력이 붙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을 정도다. 이 전 부사장 등 라임자산운용 수사가 여의도 내 다른 상장 종목으로 확대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업 CB 거래에 밝은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환사채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투자할 때는 어떻게 회사 주가를 부양할지 다 준비해서 들어가고, 위험성이 큰 종목일수록 더더욱 그렇다”며 “리드 관련 주가조작 세력들을 타고 올라가면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투자꾼들이 얽혀있고 그들은 현 집권 세력뿐 아니라 야당까지, 폭넓게 정치인들과 교류한다”고 귀띔했다.
#미공개 정보 관련 신라젠도 박차
바이오 대장주 중 하나인 신라젠도 수사가 한창이다. 신라젠 임직원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처분한 혐의에 대해서다. 지난 7월 초 신라젠 한 임원은 자신의 보유 지분 전량인 88억 원어치 주식 16만 7777주를 매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신라젠이 개발하던 항암제 펙사벡은 미국의 한 위원회 무용성 평가에서 시험 중단을 권고 받았고 주가는 급락했다.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남부지검은 이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미리 주식을 처분했을 개연성에 주목하고 있다.
신라젠이 주목받는 이유는 리드나 라임자산운용과 좀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게이트처럼 정치인이 관여돼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는 점이다. 실제 몇몇 언론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미인가 투자업체 밸류인베스트코리아(밸류) 사무실에서 지지모임 주관 강연을 열었던 점 등을 주목하고 있다. 이철 전 밸류 대표는 사기·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부산 북구 부산지식산업센터 내 신라젠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이 주축이 돼 만든 바이오 회사인 신라젠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부산대의 관계가 언급되면서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검찰 출신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부산지검 특수부 폐지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부산에는 당장 핵폭탄이 될 수도 있는 신라젠 본사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치인 한둘은 당연히 끼고 갑니다”
법조계는 ‘게이트’를 언급하는 것은 너무 성급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친분이 죄가 아니고, 혐의를 입증하는 연결 고리를 증거화 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주가조작 세력들에게 정치인은 어떤 존재일까. ‘훌륭한 배경’이자 ‘좋은 정보 소스’라는 게 일관된 얘기다. 함께 찍은 사진 등은 기업 투자 홍보 등에 활용되고, 그게 집권 세력일수록 효과는 극대화 된다. 정부의 투자 방향 등이 증권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를 미리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실제 기자와 만난 국내 열손가락 안에 드는 주가관리 전문가는 “친여권 핵심 정치인 A 씨와 형동생 하는 사이”라고 자랑했는데, 그는 “A 씨와 함께 얼마 전 아프리카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 “A 씨를 통해 청와대 얘기도 많이 알고 있다”고도 했다.
국내에서 손가락에 꼽는 CB업자 B 씨 측근도 “B 씨로부터 청와대 내 은밀한 정보를 엄청 많이 들었고, 실제로 몇몇 청와대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 같더라”며 “그런 친분이 그들에게 검찰 수사로부터 ‘지켜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세력들”이라고 귀띔했다. 주가 흐름에 예민한 한 바이오 상장사 대표 역시 누군지는 정확히 언급하기를 조심하면서도 “몇몇 정치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행정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이 있으면 요청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만으로 수사를 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과장된 자랑’과 ‘사실’이 어설프게 섞여 떠도는 얘기가 많다는 것. 검찰 관계자는 “주가조작 세력을 수사하다 보면 친분이 어느 정도 있음이 보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뇌물이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며 “허풍과 허세 속에서 범죄 입증은 별개고, 그들의 관계가 청탁과 뇌물 그리고 청탁 실패로 틀어지지 않는 한 게이트 수사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