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1일 경제계 인사 초청 오찬에 노무현 대통령 왼쪽 과 오른쪽에 이건희 구본무 회장이 나란히 앉았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
구 회장은 “한두 사람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훌륭한 최고 경영자를 육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구 회장의 이 발언은 결과적으로 보름 전인 지난 6월5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경영 2기 선포식에서 밝힌 ‘천재 육성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재벌이 다른 재벌의 의견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반박하거나 평가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구 회장의 발언은 재계에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일각에선 구 회장 체제의 LG가 삼성에 도전장을 냈다고 보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80년대 이래 재계 서열 3위권에서 맴돌던 LG가 90년대 말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삼성에 맞서서 ‘1등 LG’를 달성하기 위한 종합적인 이미지메이킹 작업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주목할 만한 것은 두 회장의 발언에서 보듯 이들의 퍼스낼리티가 차이가 있다는 점. 두 사람의 스타일을 집중분석했다.
[이건희 회장 스타일]
이건희 회장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은 ‘내성적’이라는 표현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언론매체에선 그를 ‘수줍음 잘 타고 소문난 눌변’ 또는 ‘수줍은 황제’라는 수식어로 묘사했다.
그가 회장 취임을 하던 87년부터 신경영선언을 하기 전인 93년까지 대외 활동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특강이 TV를 타면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가 장시간의 세미나에서 지치지 않고 정력적으로 많은 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말들은 통찰력으로 번뜩였다.
그가 최근 내세우는 패러다임은 ‘천재’다. 하지만 이는 그가 회장 취임 초부터 하던 말이기도 했다. ‘2급 두뇌 1천 명보다 1급 두뇌 2명이 소중’(81년), ‘경영자는 종합예술가가 되어야 한다’(88년) 등의 발언 내용을 보면 이미 이 회장은 그때부터 ‘인재경영’, ‘천재경영’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적으로 그는 여전히 ‘고독한 황제’라는 이미지가 붙어 다닌다. 그가 즐기는 스포츠인 골프나 승마, 카레이싱 등이 대부분 혼자 즐기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잠도 자지 않고 생각에 빠져드는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소집한 회의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열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가 취미로 즐기는 골프나 승마, 탁구 등은 아마추어 수준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등학생 때 레슬링 선수였기도 하다. 골프는 베스트 스코어가 71타였고, 탁구를 배울 때는 현역 감독을 모셔다가 직접 배웠다고 한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내려는 듯 맹렬하게 하지 대충대충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집중력은 그게 영화건 전자제품 분석이건 개 사육에 관한 것이든 어김없이 발휘된다. 애견가로 알려진 그는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삼성에서 맹인 안내견 육성 사업을 하는 것으로 취미를 발전시켰고, 자동차 수집은 교통박물관으로 결실을 맺었다. 물론 그의 전자제품 분석 실력은 삼성 신경영선언의 도화선이 될 만큼 전문 엔지니어 출신 이상이라고 한다.
브리태니커의 세계연감 97년판에는 이건희 회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건희는 삼성의 결점이 주입식 암기교육을 강조하는 교육제도와 지도층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약점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철저한 개혁을 요구했다. 이건희가 신경영이라고 부른 개념에 입각해 삼성은 부하직원들에게 상사의 잘못을 지적하도록 요구했다. 삼성은 또한 제품의 양보다 질을 강조했고, 여성을 고급간부로 승진시켰으며 관료적 관행을 폐지했다. …`활동적인 스포츠맨이기도 한 이건희는 승마를 즐기는가 하면 개인 전용 트랙에서 스포츠카를 몰거나 개를 키우면서 여가를 보낸다.’
[구본무 회장 스타일]
구본무 회장은 95년 회장 취임 뒤 ‘보수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LG그룹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지난 96년 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LG그룹 행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티셔츠 바람으로 노래를 부르고 율동까지 곁들인 것. 재벌 회장으로는 파격적인 구 회장의 동정을 LG에서는 공개했다. 구본무 회장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선명하게 드러낸 것.
이 행사는 ‘미국 유학을 마친 재벌 3세’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와 구본무 회장의 스타일이 얼마만큼 안 어울리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계열사 야구선수와 씨름선수를 진양의 외가집에 불러 식사를 함께 하고 일일이 이름까지 외우며 악수를 청한 일이나 줄서서 사원식당을 이용하는 것은 그의 소박하고 서민적인 스타일을 잘 드러내주는 일화이다. 하지만 소박한 것은 그의 전임경영자이자 그의 부친이기도 한 구자경 회장과 똑같은 면이다.
그가 전임자와 다른 색깔은 ‘1등주의’다. 이전 LG는 그룹 연수원 이름을 ‘인화원’이라고 정할 만큼 ‘인화’를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일등 LG’로 바꿨다. 그는 2002년 3월 임원 세미나에서 “기필코 일등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아무리 목표가 높더라도 해내겠다는 도전정신,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끝을 내는 승부근성,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갖춰야 할 정신자세다”고 강조하며 1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사실 1등주의는 5년간 유예된 것이기도 하다. 그의 취임과 더불어 ‘럭키금성’그룹에서 LG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LG는 원로 경영진들의 대거 퇴진과 더불어 보다 젊고, 그래서 더 공격적인 경영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DJ정부 시절 차세대 주력 사업군 중의 하나인 반도체 사업이 재벌간 빅딜로 현대그룹에 넘어가면서 구본무 회장 취임 초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우울한 5년을 보냈던 LG는 그동안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체제로 개편하고 몸을 추스른 뒤 올해부터 본격적인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
경제계 이슈를 다루는 유명 잡지 중에 하나인 미국 <포브스>는 지난 96년 8월 구 회장에 대해 “골프와 탐조를 즐기는 구 회장은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관리자들과 비공식 모임을 즐긴다. 하지만 때론 필요에 따라 단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몇몇 계열사에서 경영계층을 10단계에서 3단계로 대폭축소시키는 과감함을 보여주었다”고 묘사했다.
‘일등 LG’를 제창하고 있는LG의 전문 경영진들과 구본무 회장이 지난 60년대의 1등 LG 신화를 어떻게 재현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