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5억에 사무실 운영비·차량 유지비 등 지원…1인당 GDP 대비 ‘월드클래스급’
12월 10일 2020년도 예산안이 가결된 뒤 국회 본회의장에서 피켓시위를 펼치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박은숙 기자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국회는 세비 2.1% 인상안에 합의했다. 사사건건 부딪혔던 여야였지만 이 안건만큼은 이견 없이 통과됐다. 밀실에서 논의된 결과였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국회의 세비 인상 소식에 국민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매년 예산안 통과 때 반복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12월 11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시아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1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9월 발표한 2.1%에서 0.1% 감소한 2.0%로 조정했다. 이를 놓고 국회의원 세비 인상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회의 세비 인상안에 따르면 입법활동비와 특수활동비는 동결하되 국회의원 수당에 공무원 공통보수 증가율 2.8%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들끓는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했을까. 한국당을 뺀 여야 4+1 협의체는 세비 동결을 결정했다. 12월 10일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비 동결 사실을 알렸다. 이 의원은 “국회가 난장판이 된 마당에 세비 인상은 염치가 없다는 제안에 각 당이 호응했다”면서 “4+1 협의체는 의원 세비 동결을 결단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정의당의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법안’ 취지에 따라 2020년 의원 세비 삭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섭단체 예산 소위 진행 과정에선 세비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의당이 꺼내든 세비 30% 삭감 주장은 공허한 외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당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물론, 각 당은 세비 절감 혁신안을 언급하고 있긴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회의 일수 10% 이상 불출석 시 페널티형 세비 삭감을 제시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원 정수 10% 축소를 바탕으로 세비 예산 절감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혁신안들과 관련해 여야 의원 300명의 공감대가 형성되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회의사당. 사진=박은숙 기자
자유한국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세비 동결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진행된 것이라 본다”면서 “세비 셀프인상 논란이 불거지자 자유한국당이 빠진 4+1 협의체에선 세비 동결을 합의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 세비 셀프인상 논란 책임을 자유한국당 측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세비가 동결됨에 따라 2020년 국회의원 1인당 세비는 지난해와 같은 1억 5180만 원가량이다.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면 기본급에 해당하는 연 수당이 약 1억 476만 원, 입법활동비 3768만 원, 특별활동비 936만 원이다. 월별 수당은 873만 원, 입법활동비 314만 원, 특별활동비는 78만 원이다. 국회의원이 한 달에 받는 급여는 대략 1265만 원인 셈이다. 게다가 연간 4722만 원에 달하는 활동비(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엔 세금이 붙지 않는다.
직접 수령하는 금액 말고도 국회의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실비는 더 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수당 및 활동비와 별도로 사무실 운영비, 차량유지비, 유류대 등 경비는 예산안 편성 기준에 따라 관서 운영 소요 경비로 집행된다.
12월 12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 문앞 길목에 진을 치고 현수막 시위를 벌이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이동섭 기자
사회 전체를 통틀어도 국회의원은 고소득 직군에 속한다.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최고-최저 연봉직업’ 자료에 따르면 국회의원 평균 연봉은 1억 4000만 원(당해 의원 1인당 세비 1억 4733만 원)으로 1위에 올랐다. 성형외과 의사(1억 3800만 원) 기업 고위임원(1억 3000만 원) 도선사(1억 2000만 원) 대학 총장·학장(1억 1000만 원) 등보다 높은 순위였다. 2017년 이후 2019년까지 국회의원 세비가 꾸준히 인상된 점을 고려하면 국회의원의 ‘연봉킹’ 지위는 굳건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연봉은 다른 나라 의원들과 비교해 봐도 높은 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10위권이다. 1위는 이탈리아로 연간 약 3억 원의 세비 혜택을 받는다. 2위와 3위는 일본과 미국이다. 일본 의원은 약 2억 3500만 원을, 미국 의원은 연간 2억 원 초반대의 세비를 받는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대비 각국 의원 연봉을 살펴보면 한국 국회의원 세비 규모는 ‘월드클래스’ 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 연봉은 1인당 GDP 대비 4.1배 높다. 1인당 GDP 대비 4.1배 이상의 세비를 지급받는 나라는 칠레 이탈리아 터키 일본 4개국 정도다.
국회의원 세비는 1949년 3월 31일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로 처음 제정됐다. 당시 국회의원 1인당 세비는 연 36만 원이었다. 국회의원 세비 인상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과 맥을 함께 해왔다. 유신과 군부독재를 거쳐 제6공화국이 선포된 지 3년 뒤인 1991년 국회의원 세비는 4468만 9000원까지 치솟았다. 그후 IMF 위기와 국제 금융 위기 등 경제계에 메가톤급 풍파가 들이닥치는 동안에도 그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