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시장의 본격적인 지각변동이 시작될 조짐이다.
올 들어 두루넷과 온세통신의 법정관리로 불거진 후발 통신사업자들의 경영악화는 최근 하나로통신으로 불똥이 튀면서 소위 마이너 사업자 전체를 짓누르는 분위기다.
유독 KT와 SK텔레콤은 각각 유선과 무선시장에서 한층 더 공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긴 하나, 이들 지배적 사업자들마저도 최근 매출 신장세가 급격히 둔화되는 추세다. 한마디로 군소 후발사업자군에서 비롯된 최악의 경영난은 통신시장 전반을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넣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꿈틀대고 있는 통신시장 구조개편의 향배는 ‘KT-SK텔레콤-LG’의 통신3강 구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통신시장 만년 하위를 면치 못했던 LG그룹이 서 있고, LG가 계획대로 하나로통신을 인수하느냐에 따라서 판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LG는 하나로통신의 최대주주(13%)로 지난 8일 하나로통신 이사회에서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여타 대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 재무구조 개선 방안으로 5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관철시켰다.
다음달 임시주총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지만 일단 LG 입장에선 하나로통신 인수를 위한 첫 단추는 제대로 꿴 셈. LG가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경영권을 가져오면 다음 수순은 두루넷이다.
이미 올 초 데이콤이 입질을 했다 무산된 두루넷 인수는 LG의 가족이 되는 하나로통신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LG그룹 통신사업 총괄사장으로 영입된 정홍식 전 정보통신부 차관은 “하나로통신의 경영권을 가져오면 두루넷까지 인수해 하나로통신에 운영을 맡기겠다”면서 “온세통신 등 군소사업자들도 포괄적인 합병대상”이라고 했다. LG가 구상하는 후발사업자군의 구조조정 그림은 이미 짜여진 수순이며, 그 첫 분수령이 하나로통신의 경영권 인수인 것이다.
LG가 전에 없이 통신사업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치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통신 외에는 마땅한 신수종사업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전자, 화학이 양대 축이었지만 LG가 지주회사로 변신한 뒤부터는 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산업으로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LG는 지금까지 데이콤, 파워콤, LG텔레콤은 물론 1대주주인 하나로통신에 이르기까지 4개의 회사를 거느리면서 2조원이 훨씬 넘는 돈을 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 하나 자생력을 갖춘 기업은 없는 실정이다. 결국 벌여놓은 사업을 책임지는 수밖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LG의 통신3강 구상은 최근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정부의 통신정책과 KT, SK텔레콤이라는 막강한 견제에 부딪혀 예측할 수 없는 혼전양상을 불러올 전망이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취임당시부터 줄곧 ‘유효경쟁체제와 시장자율원리’를 강조해왔다. 유효경쟁이란 지난 10년간 통신시장에서 일관되게 견지해왔던 지배적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에 대한 차별적(비대칭) 규제.
시장원리는 소비자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사업자들의 자율적인 조정에 맡기겠다는 뜻이다. 일견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은 전에 없던 ‘시장원리’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최근 “유효경쟁체제라는 대원칙이 중요할 뿐 3강이냐 2강이냐가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완전경쟁을 통해 국가적 효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통신 3강으로 분류되길 원하는 LG로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크게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절대적 사업자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KT그룹과 SK텔레콤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진 미미했지만 만일 LG의 의도대로 하나로통신에 이어 두루넷까지 넘겨줄 경우 KT에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LG텔레콤을 제외하면 파워콤 데이콤 하나로통신 두루넷 등 주요 유선사업자들은 모두 LG로 총집결, KT에 반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장 인터넷과 유선전화, 기업용 회선임대 등 KT의 주수익원이 위협받는 문제 정도가 아니다.
정통부는 최근 전화선과 더불어 케이블TV망(HFC)을 차세대 기간통신망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KT는 현재 케이블망이 전혀 없는 반면, LG 계열 유선사업자들은 방대한 케이블망을 보유하고 있다. 멀지 않아 KT를 압박할 것이란 전망은 이런 이유.
SK텔레콤도 지금까지는 국내 최고의 수익률로 급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유선 부문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장담하긴 어렵다. 이동통신 시장 역시 포화상태에 다다르면서 SK텔레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KT나 SK텔레콤 모두 자금여력은 충분한 만큼 구조조정 매물로 나와있는 후발 유선사업자들을 입질할 수 있지만 유효경쟁의 원칙이 지속되는 한 공룡화에 대한 주변의 우려 탓에 당장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KT, SK텔레콤이 솔직한 속내는 ‘통신 2강의 현상유지’다. 양사가 후발사업자 진영의 구조조정 논의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모습이나, SK텔레콤이 하나로통신 이사회에서 LG의 반대편에 섰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국내 통신시장은 하나로통신, 두루넷의 경영권 향방이 드러날 앞으로의 한두 달간이 KT-SKT-LG그룹의 통신3강 구도냐, KT-SKT 절대강자와 기타 군소사업자군으로의 전면 재편이냐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서한 전자신문 기자
온라인 기사 ( 2024.12.12 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