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건 두번 기소 우스운 꼴 유도한 것” 지적…법원 “판사에 대한 부당한 공격 말라” 입장 발표
다시 검찰 수사를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수사로 100여 명의 판사들이 참고인이나 피의자로 소환됐던 법원은 공소장 변경 불허 건으로 시민단체가 검찰에 재판부를 고발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법원은 “사법부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자제해 달라”고 하지만, 비슷한 시점에 조국 전 장관 5촌 조카 사건 공소장 변경은 받아들여지면서 “정치적 판단이 관여된 것이 아니냐”는 반발 여론도 적지 않다. 검찰 내에서도 “재판부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적극적 처벌 의사가 있느냐의 차이 아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며 포토라인에 선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진=최준필 기자
#공소장 변경이 뭐라고…검경 갈등 다시 불거지나
공소장은 검찰이 피의자를 형사처벌 해달라며 공소를 제기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하는 양식이다. 통상 피고인의 범죄 사실이 정리돼 있으며 범죄 사실 관련 법규를 위반한 사실 관계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그 뒤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증거들을 붙이는 방식인데 재판이 시작된 뒤에는 공소장을 변경하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공소장 변경’이 법조계 주요 키워드가 된 것은 바로 정경심 교수 재판 때문이다. 2019년 9월 조국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일, 검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된다며 정 교수를 표창장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이 범죄 사실 발생일로 지목한 것은 2012년 9월 7일. 이를 이유로 검찰은 정 교수 소환도 없이 기소를 먼저 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12월 10일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에 신청한다. 표창장 위조 시점은 2012년 9월 7일에서 2013년 6월, 범행 장소는 동양대에서 정 교수 주거지로 공범에 성명 불상자로 명시했던 것을 딸 조 아무개 씨로 수정해 달라고 한 것이다. 위조 방법은 총장직인 임의 날인에서 스캔 캡처 등으로 붙여 넣기로, 목적은 국내 유명 대학 진학에서 서울대 제출 목적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날짜와 장소가 바뀌는 것은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재판부는 “검사 스스로도 첫 공소 사실과 수사로 파악한 사실이 다르다고 판단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일부 사실만 변경한 만큼 불허는 부당하다”고 반발하자, 재판부는 “검사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나. 계속 반발하면 퇴정을 요청하겠다. 선고 뒤 항소나 상고하면 된다”고 큰소리로 지적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동일한 사건으로 볼 수 없다”며 불허를 확정했다.
법조계는 결국 변경 요청한 내용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한 판사는 “추가 기소를 하면 되지만, 결국 같은 사건을 놓고 검찰이 두 번의 기소를 하는 우스운 꼴이 돼는데 이걸 유도한 것 같아 다소 아쉽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가 신뢰할 수 없는 흐름이 있었다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던 점 외에도 다른 근거들과 모아 무죄로 판단하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직 검사 역시 “범죄 장소나 일자를 바꾸는 것은 검찰 스스로 공소가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셈이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첫 기소 때 ‘공소시효’가 다급했던 타이밍이지 않냐”며 “범죄 날짜가 바뀐다고 범죄 사실이 달라진다고 판단하는 것 역시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죄를 처벌한다’는 적극성 측면에서 재판부의 판단은 다소 아쉽다”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시민단체는 재판장인 송인권 부장판사를 고발하며, 검찰 수사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열렸다.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송 부장판사의 공소장 변경 불허는 재량권 일탈남용이고, 형법 123조에 의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12월 13일 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놓았다. 서울중앙지법은 고발장 접수 직후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가능하다”면서도 “재판장이 해당 사건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있다거나, 이념적으로 편향되었다고 하는 것은 판사 개인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자 재판의 독립을 훼손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소장 내 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재판장 몫이기에 직권남용은 아니지만, 검찰이 작심하고 사건을 활용할 경우 법원에 ‘피곤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결국 날짜와 장소가 바뀌는 것을 범죄로 볼 수 있느냐는 법조인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직권남용 혐의 수사는 불가능에 가깝다”면서도 “2018년 100명 넘는 판사들이 소환될 때마다 법원 내 분위기가 심각하게 흔들렸다. 이번 사건 역시 검찰이 소환이라도 한다면 사건마다 고발이 잇따르게 될 수 있다. 법원 내에 작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총사 스케치. 사진=최준필 기자
#결국 검찰 추가기소…한 사건 두 재판 ‘확정’
공소장 변경 불허 일주일 뒤인 12월 17일. 결국 검찰은 정경심 교수에 대해 추가 기소를 선택했다. 기존 공소도 유지하기로 했다. ‘표창장 위조’라는 범행을 놓고, 두 건의 사실 관계를 검찰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셈이다. 스스로 기소한 사건을 스스로 부정하는 주장을 해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고형곤)는 “12월 10일 법원이 공소장 변경 신청을 불허함에 따라 표창장 위조, 행사와 업무방해 혐의가 함께 심리돼 실체적 사실관계에 부합하는 판결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재판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표출했다. 공소장과 함께 법원에 ‘공소장변경신청 불허 결정의 부당성과 추가기소의 불가피성’이라는 제목의 의견서를 냈다. 의견서에는 ‘입시비리라는 동일한 목적에 따른 일련의 위조, 행사,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병합 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앞선 현직 검사는 “국민적 공분을 받고 있는 연쇄살인마의 살인 사건에서 피의자의 범죄 날짜를 수정한 건이었으면 재판부가 이를 거부했겠냐”며 “죄를 적극적으로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읽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장판사 출신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12월 11일 “공범과 위조 목적의 경우, 종전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했으므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불리한 게 아니라 오히려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핵심” 곰탕집 성추행 사건 판결 성대결 양상까지…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법원 내에서 더 고민이 많은 사건이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 것이냐는 다소 진지한 고민을 남긴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2월 12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온라인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던 일명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A 씨가 2017년 11월 26일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모임을 마친 뒤 일행을 배웅하던 중 옆을 지나치던 여성 엉덩이를 움켜잡은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진 건이다. 전과가 없었던 A 씨지만 1심은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가족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남녀 성대결 양상까지 불거졌다. 논란 속에 2심은 유죄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추행 정도와 가족의 탄원을 고려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며,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피해자가 오락가락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일관되게 진술하면 가해자는 꼼짝 못하는 게 성범죄 사건의 특징”이라며 “만졌는지 안 만졌는지는 둘만 아는데, 둘의 진술이 엇갈릴 때는 피해자의 편에 서서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판사들 사이에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피해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면 무조건 유죄인 기존 시스템이 옳은지 모르겠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판례를 기준으로 보면 ‘유죄’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만 피해자가 ‘불리한 진술의 동기가 없다’는 이유로 일관된 진술만 유지하면 유죄가 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이를 뇌물 사건으로 바꿔 비유하면 단순하다”며 “뇌물 공여자가 뇌물을 줬다고 일정하게 진술해도 정치 관련 사건에서는 무죄가 나오지 않냐, 성범죄 사건에서는 입증 책임이 좀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법관들끼리 ‘성범죄 시 입증 책임’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면 더 의미 있는 판례로 남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