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라인 한직 발령 등 견제 가능성…검찰의 청와대 수사 속도에 변수될 수도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하루 전인 4일,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며 기세를 올렸던 ‘윤석열의 검찰’. 하지만 곧바로 다음날 청와대는 더 센 장관 후보자로 추미애 의원을 낙점하며 견제 포석을 분명히 했다. 국회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빨라도 12월 말, 늦으면 새해 초 장관 취임이 예상된다. 검찰 역시 그에 맞춰 수사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거론된다.
#청와대, 판사 출신 추미애 낙점 배경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여고와 한양대 법대를 나온 추미애 장관 후보자는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광주고법 판사와 춘천·인천·전주지법 판사를 지냈다. 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당선된 뒤 17대를 제외하고 20대까지 같은 지역에서 5선을 했다.
추 후보자를 잘 아는 법조인들은 “검찰과는 별 인연이 없는 것 같지만, 오히려 ‘악연’에 더 가깝다”고 평가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저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줄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검찰개혁) 마무리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라고 얘기했는데, ‘더 센 사람’으로 추미애 내정자를 감안하고 한 얘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하게 검찰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2016년 20대 총선 과정에선 허위사실 공표 논란에 휘말려 검찰 수사를 받고 결국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8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자 “검찰이 편향된 수사를 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주변에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에 ‘좋은 기억’이 없다는 얘기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헌정 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 정치인으로,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했다. 강한 소신과 개혁성은 국민의 희망인 사법 개혁을 완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사 이유를 밝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던 전력에 당내에서도 비문으로 분류되는 비주류였지만 법무부 장관이 된 과정에는 ‘그만큼 확실한 계획 검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는 “원래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 장관이 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과정에서, 사실 다른 몇몇 유력 후보들이 내년 4월 총선 등을 이유로 장관직을 거절하면서 추미애 의원까지 장관직이 가게 됐지만, 당대표까지 했던 인물을 격이 안 맞는 법무부 장관으로 보내는 것은 그만큼 확실한 계획과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검찰 개혁을 명분 삼아, 윤석열 총장의 검찰이 청와대와 여당 핵심 인사들로 수사를 벌이는 것을 견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검찰청 청사에서 이동 중인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고성준 기자
#법무부 장관은 “인사권자” 당장 2월 인사설 ‘솔솔’
당연히 그 견제 카드는 ‘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 당장 추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장악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예정된 인사는 2020년 2월. 이미 평검사들 정기 인사가 예고됐다. 이때 ‘간부급’ 인사를 통해 윤석열 총장의 복심들을 ‘한직’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견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청와대와 법무부는 올해 7월 말 인사 때 검사장급 이상 간부직 여섯 자리를 비워 놨는데, 새로운 장관이 왔다는 것은 인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된다는 설명이다.
장관 대행 역할을 하던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대검찰청을 휘어잡지 못하고 있는 점 등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출신 법조인은 “최근 법무부는 대검찰청과 소통도 거의 없어졌고, 대검이 법무부의 지시를 과거에 비해 표면적으로만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는데, 법무부를 통한 장악력 확대를 위해서라도 인사판을 뒤집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인사권을 이용해 조국 전 장관 일가 의혹,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무마 의혹을 담당하는 수사팀을 ‘한직’으로 보내면, 인사에 취약한 검사들이 알아서 장악될 것이라는 추론이다. 익명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팀 검사 좌천설이 수사 시작부터 제기됐는데 인사권자가 누가 올지까지 결정됐으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검사가 있겠느냐”며 “분위기가 싸하다”고 귀띔했다. 직접적 성격의 인사권만으로도 얼마든지 검찰을 뒤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민정 관련 수사 전선 확대 제동 걸리나
현재 검찰 수사는 크게 두 갈래다. 모두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향하고 있는데,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 첩보 및 하명수사 지시 의혹 등이다. 차질 없이 청와대와 핵심 여권 인사를 정조준하며 수사는 진행되고 있었는데, 추미애 후보자 등장과 함께 속도 및 수사 전선이 조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진=최준필 기자
현재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과 관련해, 4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 청와대 압수수색인데,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유재수 전 부시장을 구속하며 “특감반원들의 첩보를 민정수석실이 무마한 것은 직권남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명분을 확보한 만큼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 역시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첩보 하명 의혹’을 수사하고 있어, 추가 청와대 압수수색이 불가피하다. 전직 감찰반원과 민정수석실 관계자 소환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 및 자료 등에 대한 추가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첩보를 제공했다고 한 송철호 울산시장의 측근, 송병기 울산부시장의 자택과 사무실도 압수수색하며 기본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다.
또 다른 수사의 핵심 증거는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일하다 최근 소환조사를 앞두고 숨진 수사관 A 씨 관련 휴대전화 자료다. A 씨의 동료들이 “최근 특정 비서관이 계속 연락해 A 씨가 부담을 느꼈다”고 언론 인터뷰를 했다. 백원우 전 비서관과 청와대 측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하지만 진술이 엇갈린 탓에 휴대전화에 남긴 자료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검찰은 A 씨의 휴대전화가 아이폰인 탓에 잠금장치를 푸는데 애를 먹고 있지만, 포렌식 작업을 마치는 대로 청와대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총장을 잘 아는 검찰 출신 법조인은 “윤석열 총장은 ‘수사로 말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적절하게 언론과 정치권에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가기 때문에 어설픈 흔들기는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면서도 “윤 총장도 청와대를 정면으로 수사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고 스트레스를 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추미애 후보자의 등장이, 수사 속도나 전선 확대에 다소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가늠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