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 내놨지만 저금리로 부자들 차입여력 여전…다주택 탈출시한 제시, 투자처 없어 한계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앞에 붙어있는 매물표. 사진=고성준 기자
12·16 부동산 대책이 나온 배경은 △지연됐던 일부 재건축 계획 재개 △저금리와 주가부진 등으로 갭투자 매력 재부상 △분양가 상한제에 따른 공급 부족론 등이다. 대책 내용은 △대출규제 △보유세 및 양도세 인상 △분양가 상한제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정부의 원인 분석과 대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상과 대응책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저금리는 여전하고 부동산 외에 딱히 유망한 투자처도 없다. 분양가 상한제를 더 확대해 공급 부족 우려는 더 높였다. 대출 규제와 세제 강화도 서민에게 더 가혹할 가능성이 크다.
#부자들 차입 여력은 여전
대출 규제에서는 9억 원 초과 자산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을 40%에서 20%로 낮춘 점이 눈길을 끈다. 14억 원짜리 아파트는 현재 5억 6000만 원의 담보대출이 가능하지만 규제가 시행되면 4억 6000만 원으로 1억 원 줄어든다.
하지만 부족분을 신용대출로 조달한다면 차입 금액은 큰 차이가 없다. 연 이자율 3% 신용대출을 가정하면 원리금 동시 상환 시 연간 부담은 1억 원당 720만 원가량이다. DSR(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적용 시, 연소득 1억 원인 경우 연간 5억 5600만 원까지 차입이 가능하다.
결국 주담대와 신용대출 간 금리 차이 정도인데 최근 저금리로 그 격차가 크게 줄었다. 10월 말 기준 예금은행 평균 대출금리(신규)는 주담대가 2.5%, 신용대출이 3.9%다. 신용도가 높을수록 신용대출 금리는 더 낮아진다. 올 하반기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 1~2등급 고객에 대한 신용대출 금리는 3% 아래로 떨어졌다. 9억 원 초과분에 대한 LTV 하향이 고소득자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이유다.
15억 원 이상을 초고가 주택으로 규정, 주담대를 아예 금지시킨 점도 비슷한 함정에 빠진다. 고소득자 또는 고액자산가의 경우 구입대상 주택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자비용만 조금 더 부담한다면 얼마든지 금융권에서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부부가 연 1억 원씩 번다고 가정하면 차입할 수 있는 한도가 11억 원에 달한다.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라면 15억 원짜리 집도 살 수 있다. 주담대가 아닌 사적 계약, 즉 가족 간 대여 등을 통해서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다.
#보유세, 그래도 미미
그나마 가장 큰 효과가 기대되는 방안은 세금 인상이다. 종합부동산세 세율이 일제히 인상된다. 다주택자는 인상폭을 더 높였다. 또 정부는 시세변동률을 공시가격에 반영하고,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시가 대비 과세표준을 현실화할 방침이다. 서울의 경우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4.02% 인상됐다. 올해 85%인 공정가액비율은 매년 5%포인트(p)씩 높아져 내년 90%, 2022년 100%가 된다. 2022년까지 보유세 부담이 계속 높아진다는 뜻이다. 정부는 아파트의 경우 시세 9억~15억 원은 공시가격을 70%, 15억~30억 원은 75%, 30억 원 이상은 80% 이상 수준까지 반영할 방침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인근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공시가격 인상과 겹치면 고가 다주택자에게는 꽤 부담이 될 수 있다. 12·16 대책에서 보유세율은 1주택자는 0.1~0.3%p, 다주택자는 0.2~0.8%p 인상됐다. 오히려 조정지역 내 세부담 상한을 2주택자만 200%에서 300%로 확대했다. 하지만 다주택자 역시 공동명의로 소유한 경우에는 과표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자녀에게 전세나 주담대를 함께 물려주는 부담부 증여도 가능하다. 자녀가 둘 이상이거나, 출가했다면 공동명의를 활용해 절세할 수도 있다.
강남권 아파트의 경우 최근 재건축 규제 강화로 노후주택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매매시세 대비 전세가가 낮다. 올 9월말 KB부동산 기준 전세가율은 강북이 61.1%, 강남이 55.4%다. 최근 자립형 사립고 폐지 정책으로 학군 부활 기대감이 높다. 교육 목적의 강남 주택수요가 더 높아질 것을 감안한다면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에 넘길 명분이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다주택 탈출시한’ 6개월
정부는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가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양도소득세 중과를 배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른바 ‘다주택 탈출시한’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이 탈출 혜택을 얻기 위해 매도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양도세 중과비율은 2주택자 10%p, 3주택자 30%p다. 세금을 아끼느냐, 아니면 미래 자산가격 상승 기회를 유지하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문제는 목돈을 손에 쥐어도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는 데에 있다. 각종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 재매입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번 규제 강화로 이들 주택을 살 잠재 매수인들도 줄어들 수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직후 내놨던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통해 다주택 규제를 피한 이들도 상당수다. 이번 대책도 혜택이 많았던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택한 이들에게는 속수무책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청와대와 정부가 다주택자 고위공직자에 내린 주택처분령이다. 고위공직자들이 서울 집을 남기고 세종시 등 지방 집을 처분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연고가 서울에 있기 때문이지만 결국 서울 집값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고위공무원들의 세종시 아파트는 특별분양을 받아 시세보다 싸게 매입한 만큼 내년 6월 탈출시한 내에 매도할 경우 이번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다.
이번 대책의 초점이 다주택자에 맞춰진 만큼 어느 곳이든 유망한 곳에 한 채를 보유하려는 ‘똘똘한 한 채’ 열풍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이번 대책과 관련된 법 개정이 원활할지도 미지수다. 세율인상은 법 개정 사안이다. 1세대 1주택 과세혜택 거주요건 변경이나, 단기보유 양도세 차등적용 등도 법을 고쳐야 한다. 분양권을 주택수에 포함하는 기준도 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 전 국회에서 이 같은 법 개정이 원활히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총선이 끝나도 21대 국회 원구성이 이뤄지려면 하반기에나 가능하다. 관련 법 개정이 늦춰지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책 내용이 바뀐다면 시행 시기는 물론 시행 여부도 장담하기 힘들다. 다만 총선에서 집값이 주요한 이슈로 부상한다면 법 개정과 시행이 속도를 낼 수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