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만 있을 뿐 고민과 논리 없기 때문…국회의원들 월급쟁이 전락, 총선 기권율 높을 것”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선거법 처리 등을 놓고 대립 중인 국회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제1야당 자유한국당을 향해서도 우려와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지난 12월 24일 박관용 전 의장을 만나 여러 정치 현안과 관련해 얘기를 나눴다. 정치 원로는 인터뷰 내내 대한민국 미래가 걱정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일요신문은 지난 12월 24일 서울 서초구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에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만났다. 사진=최준필 기자
―최근 출범한 국민통합연대에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문에 내 이름이 자꾸 나오는데 나하고 전혀 관계없다. 논의해 온 사람도 없고 일방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일이 해명하러 다닐 수도 없고 답답하다. 정계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또 무슨 정치를 하겠나. 보수통합을 하는 게 원칙이긴 하다. 다만 보수통합이란 이름으로 보수를 분열시키고 있다. 이미 보수정당이 있는데 보수 통합을 하겠다고 또 단체를 만들면 그게 보수 분열 아닌가. 일방적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만 봐도 정치 장난이라고 본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통합이 지지부진하다.
“자기 이익을 너무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을 희생하려고 해야 통합이 되지, 자신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통합 안 된다. 대한민국 정치인은 타협하고 양보하고 절충안을 만드는 법을 모른다. 보수 통합을 하려고 하면 각 정당의 주장을 하나로 소화해 내야 하는데 말만 통합을 얘기하고 실질적으론 분열로 가고 있다.”
―선거법 처리 등을 둘러싸고 국회가 대치 중이다.
“국회는 토론하고 대립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런데 여야 모두 그런 능력이 없다. 쉽게 말하면 정치가 없다. 우리나라 정당 정치가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야당도 여당 주장 중에서도 받아들일 만한 게 있으면 인정해주고 대립할 건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게 없이 야당은 일방적으로 반대만 하고 있다. 타협하고 양보하는 게 정치의 본질인데 대치밖에 없다. 정치적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각 정당이 제대로 된 안을 들고 나오면 상대 당도 대안을 갖고 나오고 타협해야 한다. 각자 주장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지금은 대안도 없고 투쟁도 없다. 각 정당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는데 무엇 때문에 대립하는지 일반 국민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게 되면 민주주의가 망하는 것이다.”
―현재 국회는 매일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토론하고 격론하는 걸 국민이 보고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을 하게 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 있나. 대립만 있을 뿐 실질적인 고민이나 논리도 없고 자신들 안이 왜 더 나은지 제대로 홍보하고 있나. 그게 없으니 정치도, 투쟁도 없다고 말하는 거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정치가 상실된 상태다’라고 진단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선거법 개정은 어떻게 보는지.
“여야가 타협을 했다면 선거법 개정을 나쁘게 볼 수 없다. 여당이 야당 주장을 얼마나 들어줬느냐, 야당이 정당한 주장을 했느냐, 국민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했느냐, 그게 문제지 내용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고발하겠다고 한다.
“내가 국회의원이 아니니까 자세히 평가하긴 어렵다. 다만 의원들도 의장의 권위를 인정해줘야 한다. 의장도 권위만큼 공정 무사하게 사회를 봐야 한다. 의장은 출신 정당 일변도로 가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야당 주장을 일방적으로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여야 얘기를 양쪽 다 들으면서 절충안을 만들어내는 의장이 돼야 한다.”
―한국당은 여당이 야당을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이 야당을 무시하는 점도 있지만 야당이 야당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양쪽 다 책임이 있다.”
―지금의 국회를 과거와 비교해본다면.
“이렇게 무능한 정치를 본 적이 없다.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이런 분노와 원망이 쌓이면 언젠가 폭발한다. ‘정치하는 사람, 다 물러가라’ 소리가 나온다. 정치 지도자들이 뚜렷한 철학이나 소신이 없다. 지도자급들이 정치나 정책 목표가 없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로 보인다.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 밑에 엎드려 있고, 야당은 뚜렷한 주장도 없이 적당히 하자는 상황이다.”
―정치 수준은 왜 계속 떨어질까.
“지도자급 인물들의 리더십 문제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월급쟁이로 전락하고 있는 게 크다. 과연 의원들이 왜 정치를 하느냐는 의식이 있을까. 정치인이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소신 있게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고 토론해야 한다. 요즘은 정치인의 소명 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눈에 띄는 지도자급이 있나.
“없다. 안 보인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이 나라 민주주의가 시들어가고 있다”라고 미래를 다소 암울하게 봤다. 사진=최준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야당과 대화나 타협을 할 의사가 있는지 궁금하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만나서 자주 얘기해야 한다. 대북 문제도 야당과 상의해야 한다. 대북 정책만은 여야가 공조해야 국민도 안심하고 성공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민을 불안하게 해선 안 된다. 물론 야당이 제 역할을 해야 대화를 할 텐데 야당 노릇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에 대화 상대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야당이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데 왜 대화하겠나.”
―2020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선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다만 2020년 총선에서 기권율이 굉장히 높을 것으로 본다. 정치다운 정치를 못 봤기 때문에 투표율도 낮고 기권율도 높아질 것이다.”
―정치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나라 민주주의가 시들어가는구나. 정치 지도자로 소신과 투지가 있는 사람은 안 보인다. 국회는 마비돼 가고 국민 정치 혐오는 늘어가고 관심은 줄어들어 간다. 정치 역동성이 없어져 가는 걸 누군가는 ‘안정됐다’고 말하지만 안정된 게 아니다. 시드는 것이다. 이런 얘기 하기도 답답하다.”
―20대 국회의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의원들과 개인적으로 만나면 ‘이러면 되겠느냐’고 하고 강연에서도 계속 얘기한다. 제일 중요한 건 각 정당의 지도력이다. 결국 지도력이 바로 서야 잘 굴러간다.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없다. 정치가 밥벌이하려고 나오는 건지, 후배들에게 굉장히 실망하고 있다. 우리 사회 적체된 각 문제를 해결하는 곳,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곳, 그래서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구멍도 뚫어주는 곳이 국회라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