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공동창업주 각자도생 야권 개편 충격파…중도층 표심 놓고 결전 불가피
해외에 체류 중인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2일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2016년 2월 당시 대전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뒤 연설하는 안 전 의원. 사진=연합뉴스
“2년 전 결혼을 잘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새로운보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유승민 의원은 1월 1일 신년하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2년 전 바른정당을 이끌고 있던 그가 안철수 전 의원의 국민의당과 합당했던 것을 돌아보며 후회한다고 밝힌 것이다. 유 의원은 “바른미래당에 책상과 노트북, 국민 세금인 국고보조금 등을 다 주고 나왔지만 한 가지 안 주고 우리가 갖고 나온 게 있다. 창당 정신은 우리에게 있다”고도 했다.
바른미래당 두 대주주인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전 의원의 ‘결별’은 이제 기정사실화 됐다. 유 의원 측은 새보수당 출범에 앞서 안 전 의원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하지만 안 전 의원은 그때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지난해 12월 13일 측근을 통해 새보수당 합류에 선을 그었다.
안 전 의원이 정계복귀를 선언한 2일, 메시지에는 유 의원과 관련한 어떤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념에 찌든 기득권 정치세력들이 사생결단하며 싸우는 동안 우리의 미래는 계속 착취당하고 볼모로 잡혀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국민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안 전 의원 한 측근은 “유승민 의원과 함께하기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향해 방점을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승민계 한 관계자는 “안철수 전 의원 합류 여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영향력이 예전만 하겠느냐”라고 꼬집었다. 새보수당은 당초 계획대로 1월 5일 창당을 못 박았고, 이에 앞서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안 전 의원이 정계복귀를 했지만 유 의원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더욱 명확해진 셈이다.
손을 잡은 두 사람이 각자 갈림길에 서기까지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양측은 2017년 5월 펼쳐진 19대 대선 이후 서서히 결합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1.4%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6.8%의 득표를 해 각각 3위, 4위를 기록했다. 두 사람의 득표율 합은 2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24.0%)를 넘어섰다.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이 참여해 발족한 국민통합포럼도 통합의 밑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 됐다. 당시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은 통합 필요성을 주창했고 바른정당에선 유의동 오신환 의원 등이 통합 논의를 이끄는 모습을 보였다. 통합 찬성파였던 김관영 의원(당시 국민의당, 전북 군산을)은 통합에 부정적인 호남계 중진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고 박주선, 김동철, 주승용 의원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유승민 의원이 1월 3일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유 의원과 안 전 의원의 당 내부 상황도 각각 작용했다. 안 전 의원의 경우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에 성공했지만 총선 이후 ‘리베이트 사건’ 등이 터지며 논란을 샀다. 또 대선을 거친 뒤 국민의당에 ‘제보 조작 사건’이 강타하며 악재가 겹쳤다. 안 전 의원이 내세운 새정치는 이미지가 퇴색했다.
유 의원의 바른정당은 대선 국면에서 두 차례의 대규모 탈당 사태를 맞으며 원내교섭단체 지위도 상실하는 등 세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파구는 통합이었다. 마침 안 전 의원은 바른정당에서 김무성 전 대표 등 보수 중진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빠져나가자 노선이 가까워졌다고 보고 통합 손짓을 적극적으로 보냈다고 한다. 안 전 의원이 내민 손을 유 의원은 결국 잡았고 2018년 2월 13일 바른미래당이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두 사람의 통합 작업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각 당 내부에선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가 거세게 부딪쳤다. 한 정당의 통합도 제대로 못 이루는데, 서로 다른 두 정당이 만나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지 우려도 나왔다. 무엇보다 안 전 의원의 ‘합리적 개혁’과 유 의원의 ‘합리적 보수’라는 두 노선 차이는 갈등의 씨앗을 예고했다.
당시 통합 실무를 맡았던 한 관계자는 “통합 과정에서 다른 부분은 몰라도 당의 노선을 다루는 정강정책 파트는 정말 각 당 의원들이 피 터지게 싸웠다. 저렇게 해서 통합이 과연 될까 싶었다”며 “서로 생존을 위해 손을 잡았지만 끝내 노선 차이가 발목을 잡을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라고 회고했다.
희망을 갖고 시작했으나 내부적으로 불안 요소가 있었던 정치적 동거는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 참패라는 어두운 성적표를 받아들이며 빨간불이 켜졌다. 당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12곳은 물론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모두 의석을 따내는 데 실패했다. 안 전 의원의 경우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3위라는 초라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유 의원은 대표직을 사퇴했고 안 전 의원은 그해 9월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며 외국 유학길에 올랐다. 두 사람의 잠행이 시작된 셈이다.
그 시기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된 이는 손학규 대표였다. 당시 안철수계의 적극적인 지원이 자리했다. 안철수계 한 관계자는 “안 전 의원이 잠시 당을 비울 동안 관리인 역할을 해달라는 취지에서 당 대표로 적극 지원하게 된 것”이라며 “그런 손 대표가 당권에 집착하면서 당은 망가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승민-안철수’를 다시 소환하고 뭉치게 한 것은 손 대표의 영향이 자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손 대표는 지난해 4·3 국회의원 재보선 참패 이후 사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손 대표가 ‘버티기’에 나서자 유승민-안철수계 의원들은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을 꾸려 대응에 나섰다. 당의 내홍은 극으로 치달았다.
안 전 의원이 안철수계의 변혁 활동까지는 지지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러나 유승민계가 자유한국당과의 보수통합 논의에 착수하고, 급기야 보수 이름을 명시한 신당 창당에 나서자 ‘중도’를 표방하는 안 전 의원은 선긋기에 나섰다. 유 의원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안 전 의원 측에 답답함을 표시했다. 양측은 이렇게 서서히 결별 수순을 밟아갔다.
각자도생의 길에 선 두 사람은 이제 경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모양새다. 유 의원은 개혁보수를 내걸고 보수의 선두주자로 나서길 희망한다. 안 전 의원의 경우 중도를 표방하며 중도보수층까지 흡수하는 전략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향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권의 대표주자 자리를 놓고 결전이 불가피한 셈이다. 유 의원이 새보수당으로 나서는 가운데, 안 전 의원 역시 신당 창당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누가 웃을지는 불투명하다. 승자는 대권열차의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다. 패자는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양측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두 사람은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점이 많다. 확장성과 포용력에 있어선 결혼과 이혼 과정을 통해 비슷한 한계를 드러냈다”며 “유승민 의원이 결국 어려움을 헤치고 보수통합을 해낼지, 그리고 안철수 전 의원이 그간 얼마나 정치적 내공을 쌓았는지가 향후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