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 여야 갈등 커지면 투표율에 영향…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헌법소원도 돌출 변수
한국 정치사상 처음 도입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만 18세 투표권 부여가 21대 총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은다. 국회 본회의 장면. 사진=이종현 기자
4·15 총선 룰의 핵심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골자는 이렇다. 총선 의석수는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으로 과거와 동일하다.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 한해 상한선(Cap·캡)을 도입한다. 다만 100%가 아닌 50%만 적용한다. 나머지 17석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기존 병립형을 적용한다. 이 때문에 연동형이 아닌 준연동형으로 불린다. 쉽게 말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국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정당의 총 의석수를 보장하는 제도다. 지역구에서 획득한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못 미칠 경우 비례대표 의석을 통해 총 의석을 보장한다는 얘기다.
산출 셈법은 ‘정당 득표율 기준으로 정당별 총 의석수 배분→지역구 당선자 수를 제외한 남은 의석수 절반을 비례대표로 배정→비례 대표 30석 중 잔여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 등의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A 정당이 정당 득표율 30%, 지역구 당선자 20명을 배출했다면, 300석 중 30%인 90석에서 지역구 당선자 20석을 제외한 70석 가운데 절반인 35석을 보장받는다.
20대 총선 결과를 이 룰에 대입하면 더불어민주당 115석,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112석, 국민의당 54석, 정의당은 12석을 각각 얻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123석과 122석을 획득했던 민주당과 한국당은 8석과 10석 각각 줄어든다. 반면 38석을 얻었던 국민의당은 14석 더 얻는다. 6석의 정의당은 11석으로 늘어난다. 비례대표 의석수는 민주당 5석, 새누리당 7석, 국민의당 27석, 정의당 9석으로 계산된다. 지금은 사라진 국민의당을 제외하고 정의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유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니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과반 의석이 사라지고 다당제 시대의 문을 여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선거제 도입으로 정당 투표의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안착한다면, 포스트 총선 국면에서는 진보진영의 연립정부 구성과 분권형 개헌 등 메가톤급 변수가 정국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거대 양당(민주당·한국당)이 비례민주당과 비례한국당 창당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 중앙선관위원회에 등록한 정당만 30개를 훌쩍 넘는다. 공식 창당을 준비 중인 예비정당만도 15개를 넘어섰다. 현행 정당법상 창당은 허가 요건이 아닌 등록 요건이다. 중앙선거관리위가 창당을 허가하는 게 아니라 정당법에 따른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위성정당이라도 등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한 뒤 정당 명칭과 사무소 소재지 등을 신고하고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전국 5개 이상 시·도당을 설립하는 것으로 등록 요건은 끝난다. 일각에선 4·15 총선을 앞두고 100개 이상의 정당이 난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길어진 투표용지로 개표기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수개표’ 작업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88조에 따라 위성정당의 선거운동 제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동 조항은 “후보자,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회계책임자, 연설원, 대담·토론자는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일체 내지 않을 때나 비례 위성정당의 선거운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비례 위성정당에 대해 “유권자들이 꼼수로 인식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8년 지방선거 투표소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만 18세 투표권 부여도 총선판을 뒤흔들 변수로 꼽힌다. 4·15 총선 투표권을 가진 이들은 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자들이다. 2019년 4월 말 기준 만 17세 인구의 규모는 53만 2295명(통계청 기준)이다. ‘2002년생들이 몰려온다’가 현실화한 셈이다. 정치권에선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만 18세 이하 투표권의 손익계산을 놓고 계산기 두드리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만 18세 부모들이 86(80년대 학번·60년대생)그룹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민주화를 경험한 부모 세대 밑에서 자란 만큼, 2002년생 다수가 진보적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정보통신(IT)에 익숙한 Z세대인 이들이 실용주의 가치를 가졌다는 시각도 있다. 야권 의원 보좌관도 “‘젊은 층=진보’ 공식이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도 젊은 층은 진영논리보다는 공정 가치 등을 이유로 현 정권을 비토했다. 수적으로는 이들이 규모가 당락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약 53만 명이 현재 전국 253개 지역구에 할당되는 수는 2100명 선이다. 이들이 실제 투표권을 얼마나 행사할지도 미지수다. 20대 총선 19세 투표율은 50% 선에 그쳤다. 초박빙 승부처를 제외하고는 2002년생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선거구 획정도 변수다. 이 국면은 패스트트랙과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승부처’다. 여야를 떠나 각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인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는 전북 김제시·부안군(13만 9470명)을 ‘선거구 인구 하한선’으로 잡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 지역구의 인구 편차가 2 대 1을 넘어서는 곳은 예외다.
이 안이 확정된다면, 서울 강남구 갑·을·병과 노원구 갑·을·병은 2개 선거구로 축소된다. 경기 군포시 갑·을은 1개 지역구로 통합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안산도 4개 지역에서 3개 지역구로 줄어든다. 인구가 많이 증가한 세종시와 강원도 춘천, 전남 순천 등은 2개 지역구로 분할한다. 다만 역대 총선에서도 막판까지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총선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이를 둘러싼 여야 간 극한 대립은 중도층 표심 및 전체 투표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돌출 변수는 ‘헌법소원’이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추악한 뒷거래”라며 헌법소원 제기 뜻을 밝혔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국회 본회의 통과 당일(지난해 12월 27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민주주의 원리, 직접·평등 선거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위헌 논거는 이렇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정당 득표율이 높아도 지역구 당선을 많이 하는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은 줄어든다. 지역구 1표와 비례정당 1표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오히려 등가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지역구·비례 별개 원칙’에 위배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헌법소원에서는 2단계에 걸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재분배 방식이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헌재 재판관 구성상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나온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사법연수원 13기)과 문형배 재판관(18기)은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김기영·이미선 재판관(22기·26기)도 진보 성향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이석태 재판관(14기)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출신이다. 헌재 소장을 포함한 9명의 헌법재판관 중 과반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헌법소원 인용 정족수는 ‘재판관 7인 이상 출석과 6인 이상 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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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