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율 등락 따라 각당 전략도 변화…정치 혐오 확산 땐 중도층 투표 기권 가능성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월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박람회장에서 열린 제7차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해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숫자 35를 주목하라.” 21대 총선 변수의 정점에는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자리 잡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국정 안정론 vs 국정 심판론’의 총선 프레임을 가르는 핵심 분수령이다. 각 당의 물갈이 등 공천 혁신과도 직접 맞닿아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 추세 변화에 따라 각 당의 총선 전략도 롤러코스터를 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지지도의 1차 분기점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40%선의 붕괴다. 조국 사태 당시 ‘한국갤럽’ 조사(10월 15~17 조사·18일 발표·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 문 대통령 지지도는 39%까지 하락했다. 부정 평가는 53%까지 치솟았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지켰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문 대통령을 레임덕(권력누수) 입구로 밀어 넣은 셈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2차 분기점이다. 조국 전 장관 사퇴 후 지지도를 회복한 문 대통령은 이후 40%대 중반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정당 지지도는 3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 사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 지지도가 35%까지 하락한다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지지도 밑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라며 “이 경우 여당 선거 전략에서 ‘문재인 네이밍’이 자취를 감출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도 “당·청 지지도가 뒤바뀌면, 여당 내 권력투쟁이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도가 임기 초반부터 하락하자 친노(친노무현)계와 비노(비노무현), 운동권그룹이 5년 내내 권력투쟁만 하다가 개혁 골든타임을 놓쳤다. 21대 총선이 노무현 정부 재판이 된다면 민주당의 단독 과반 내지 범여권 정당 연합 과반은 사실상 무너진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2월 17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과반을 못 넘으면 저부터 책임지겠다”며 여당 단독 과반 저지 배수진을 쳤다.
여당 내부에선 위기감도 엿보인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심리적 마지노선 위를 형성하고 있지만, 다시 도래한 ‘조국 정국’으로 패배 시나리오가 여권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청와대 하명수사·유재수 감찰무마·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등 친문(친문재인) 3대 의혹은 BH(청와대) 심장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문 대통령 지지도는 경제 문제와 외교, 인사 등의 3박자가 같이 가야만, 떨어지지 않는다”며 “우려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최근 폭등한 서울 아파트값을 비롯한 부동산 문제로 정책실 등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부에도 민심 이반에 대한 위기감이 짙게 깔렸다는 얘기다. 최악의 경우 여권 위기론은 ‘대통령 권력구조 개편’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이후 여권 내부에선 ‘외치(대통령)·내치(국무총리)’를 이원화하는 분권형 모델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미 정세균 후보자는 “개헌을 통해 정치를 바꾸자”며 블랙홀 의제를 던졌다.
문 대통령 지지도 추세는 여야 간판 교체 여부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당 내부에는 ‘이낙연 조기 등판론’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총선 접전이 불가피한 ‘수도권과 PK’ 일부 의원 측에선 아예 “이해찬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해찬·이낙연’ 공동 체제로 가야 한다는 입장인 당 지도부와 정면충돌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여권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활용법과 관련해 ‘빅매치(서울 종로)냐, 빅픽처(공동 선대위원장)냐’를 놓고 고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한때 선수교체론에 시달렸던 황교안 대표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정국’에서 또다시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 당 의원들은 “도대체 얻은 것이 뭐냐”고 부글부글 끓고 있다. 향후 보수대통합과 비례한국당 등 정계개편 총알이 어디로 튀느냐에 따라 황 대표 운명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황교안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국당 내부에선 한국당과 비례한국당의 연계성을 위해 황 대표 당적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 대표가 사실상의 페이퍼 정당으로 옮기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연합 정부 출범 후 자유민주연합의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여당 일부 의원이 소수 정당으로 당적을 전환한 사례는 있지만, 당 대표가 직접 기업 계열사 격인 당으로 이동한 적은 없다. 이에 여권 한 관계자는 “선거공학 역풍이 불 것”이라고 단언했다.
소수 정당의 셈법은 더 복잡하다. 바른미래당의 공동 창업주인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전 의원의 공존 여부를 비롯한 제3의 빅텐트 등장, 호남 정당을 자처하는 대안신당의 미래, 정의당의 독자 생존 가능성 등은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유 의원은 개혁적 보수 정당 창당에 시동을 걸었지만 정계 복귀가 임박한 안 전 의원의 경우 보수대통합 참여와 제3지대 빅텐트 구축, 신당 창당 등을 놓고 특유의 간보기 정치를 하고 있다. 다만 안 전 의원 관계자는 “안철수 열풍의 진원지는 거대 양당에 대한 실망층이 다수였다”며 “민주당·한국당과 손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 정당의 생존 전략은 민주당과 한국당의 과반 의석 확보와 맞물려있다. 20대 국회에서 거대 양당을 제외한 소수 정당이 정치적 변곡점마다 위력을 발휘했던 이유도 민주당과 한국당의 과반 실패와 무관치 않았다. 차기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또다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다면, 소수 정당의 영향력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유승민이든 안철수든 이 시나리오를 전제로 제3세력 구축에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과 PK 표심도 여야 총선 승부처로 꼽힌다. 범보수와 범진보의 양극단으로 치러진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서울에서 5%포인트(p) 이내 접전을 펼친 지역구는 31곳에 달했다. 이는 서울 전체 48곳의 65%에 육박한다. 수도권 전체 중 60∼70곳은 선거 일주일 전까지 초박빙 지역으로 분류된다. 지난 총선 기준 수도권 의석수는 122석(서울 49·경기 60·인천 13)이다. 전체 지역구 중 40%를 차지한다. 여권 관계자는 “수도권의 패배는 곧 총선 패배를 의미한다”며 “더 큰 문제는 대선에서 이길 가망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PK는 동남풍의 요충지다. 지난 총선 기준 의석수는 40석(부산 18·울산 6·경남 16)이다. 전체 의석수의 13% 수준이지만, 수도권 못지않은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부산 친노·친문 그룹이 조직화됐을 정도로 상징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참여정부는 부산 정권”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2012년 19대 총선 때부터 ‘낙동강 벨트’ 탈환을 본격화했던 민주당은 최근 두 번의 총선에서 3석(부산 2·경남 1석)과 6석(부산 4·경남 2)을 각각 얻는 데 그쳤다. 한국당도 1990년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이후 보수화된 PK 지역의 사수는 과반 확보를 위한 승부처다.
마지막 변수는 중도층 표심이다. 이는 투표율과 직결한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당시 ‘빠루’까지 등장한 20대 국회는 동물 국회 오명을 떠안았다. 역대 최저치 투표율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네 번의 총선에서 가장 높았던 투표율은 17대 총선으로 60.6%에 달했다. 가장 낮았던 투표율은 18대 총선 때인 46.1%였다. 19대와 20대 총선 투표율은 54.2%와 58.0%였다.
투표율이 높았던 17대 총선과 20대 총선에선 현 여당이 승리했다. 반대로 낮았던 18대와 19대 총선에선 한국당이 이겼다. 야권 한 보좌관은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큰 중도층과 20대 등 젊은층이 대거 기권한다면, 21대 총선은 양극단이 지배하는 정치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