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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다드차터드은행(Standard Chartered Bank)은 지난 6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보유했던 한미은행 주식 9.76%(1천9백82만주)를 1억5천4백만달러에 매입했다. 주당 평균 매입가격은 9천1백87원.
이로써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한미은행 지분 36.6%를 보유중인 칼라일컨소시엄에 이어 한미은행의 2대주주가 됐다. 기존 2대 주주였던 삼성그룹(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은 전자와 생명 보유물량 전부를 처분, 물산이 보유중인 0.33% 지분만 남아 소액주주로 위치가 바뀌었다.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은 삼성전자가 매도한 물량 4.2% 중 3.68%를, 삼성생명이 매도한 물량 7.6% 중 6.08%를 각각 매입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내놓은 물량 전체를 매입하지 않고 일부를 다른 외국계가 인수, 이로 인해 매입가격이 다소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삼성전자가 내놓은 물량 8백49만7천3백58주는 당초 지분율로 계산하면 4.64%이나 지난 7월1일자로 우선주 일부가 보통주로 전환돼 정확한 비율은 4.2%라고 한미은행은 설명했다. 또 삼성생명이 처분한 물량은 5일 3백만 주와 6일 1천2백35만6천5백70주를 합쳐 총1천5백35만6천5백70주, 지분율 7.6%다.
따라서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는 한미은행 지분 총 11.8%를 처분했으나 스탠다드차타드는 이 중 9.8%만을 인수했고, 나머지 2%를 다른 외국계가 인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탠다드차터드은행 멀빈 데이비스(Mervyn Davies) 대표는 “한미은행은 우수한 경영실적, 탁월한 경영진, 외국인 소유권을 보유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은행”이라며 “이번 매입으로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은 한국시장에 또 하나의 거점을 마련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현시점에서는 추가 매입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금융계에서는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의 한미은행 지분 매입을 놓고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다.
LG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의 한미은행 지분매입은 주가에 분명히 긍정적이지만, 투자의견 변경은 향후 지분 추가매입 여부, 칼라일컨소시엄의 입장 등이 좀더 명확해지는 시점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향후 한미은행 지분구도에 대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 현 지분구도 유지. 둘째, 일부에서 추측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지분매각은 파킹(parking)용. 셋째,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의 전략적 투자가능성, 그리고 이에 따른 지분 추가매입, 경영권변경 등이다.
LG증권은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이 그동안 국내 신용카드사 인수, 대금업 진출여부 검토 등 국내 소매금융시장에 진출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면서 ‘더욱이 한미은행의 대주주 지분구도 역시 스탠다드차터드은행에 의한 기업 인수합병(M&A)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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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은행 전경. | ||
칼라일컨소시엄의 경우 전략적 투자자가 아닌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단기펀드이며, 이미 2001년부터 지분 매각의사를 밝힌 바 있어 대내외적인 정황이 투자이익을 실현하려는 칼라일컨소시엄과 국내 소매금융시장에 진출하려는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의 의지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즉,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의 한미은행 지분 추가매입은 그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칼라일컨소시엄은 2000년 11월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하면서 향후 3년 내에 팔지 않기로 했다. 따라서 올해 11월 이후에 칼라일측이 한미은행 매각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칼라일측이 한미은행을 산 가격이 주당 6천8백원이고,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이 삼성측으로부터 산 가격이 주당 9천1백87원이므로, 스탠더드차터드측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주면 칼라일도 상당한 이익을 내면서 팔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삼성은 은행 진출의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일까.
금융계에서는 한미은행 지분을 매각한 삼성그룹은 은행업 진출의 꿈을 접은 것이냐는 추측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 내부의 목소리는 이와는 다르다. 한미은행 소유를 포기한 것일 뿐 은행 진출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삼성의 속내라는 분석.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M&A 여건이 원활해지는 등 환경변화가 따라준다면 언제든 은행업 진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지난 2001년 말 기자간담회에서 “은행 진출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하고 싶어도 정부 규제가 심해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 아니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본부장의 이 같은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정부규제만 풀린다면 적극적으로 은행진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이후에도 은행진출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에서는 증권, 보험, 카드, 캐피털, 투신운용 등 웬만한 금융업종을 망라하고 국내 톱 클래스로 키운 삼성이 금융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을 보유하지 않고는 금융영역에서 더 이상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은행진출의 꿈을 쉽게 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삼성이 은행업에 대한 사업메리트가 없어진 까닭에 은행업 진출의 야심을 버렸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우선 금융업종의 영역파괴와 융·복합화에 따라 과거처럼 은행 소유의 절박성이 크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라는 것.
또 은행의 대형화 바람 속에서 한미은행의 생존력이나 수익성에 대한 의심이 매각을 결정케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미은행 지분매각은 더 이상 은행 지분을 ‘다리 걸치기’ 식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것. 즉, 정부규제가 풀린다면 아무래도 현재 은행 지분을 조금이라도 보유한 산업자본(기업)에 우선권을 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은행지분을 보유해 온 삼성이 이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는 시각이다.
양효석 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