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게이트’ 미국·호주 등 이어 유럽서도 보상 협상…“한국선 협상 움직임 전혀 없어”
독일 현지의 폴크스바겐 광고판. 사진=연합뉴스
독일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이 ‘디젤 게이트’와 관련해 자국 소비자들과 보상 협상을 시작했다. BBC 등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지난 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디젤 게이트’ 관련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한 독일 소비자들과 보상 협상을 시작했다”며 “회사와 독일소비자연맹(VZBV)의 공동목표는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실용적인 해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대화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전했다.
독일소비자연맹은 지난해 10월부터 니더작센(Niedersachsen)주의 도시 브라운슈바이크 법원에서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소송에는 폴크스바겐 차주 44만 40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독일 현지 전문가 등은 2~3개월 내에 보상에 대한 협상이 이뤄져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외에 영국에서도 지난 12월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한 ‘디젤 게이트’ 집단소송 재판이 시작됐다. 런던 고등법원에서 배기가스 조작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 심리가 열린 것. 영국에서는 폴크스바겐 차주 10만여 명이 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폴크스바겐이 영국에서도 조만간 보상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폴크스바겐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디젤 게이트 관련 피해차주들에 보상을 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와 환경당국, 주정부, 딜러 등과의 문제 해결을 위해 250억 달러(약 30조 원)를 지급했다. 캐나다에서도 폴크스바겐은 소비자들에 폴크스바겐 채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카드뿐 아니라 1인당 최대 5950캐나다달러(약 530만 원)의 현금 보상을 제공했다. 호주에서도 최근 소비자들에 최대 1억 2700만 호주달러(약 1033억 원)를 보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서 직접적인 보상 합의에 나선 폴크스바겐은 그간 유럽에서는 보상 대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는 데에 그쳤다. 그런데 이번에 폴크스바겐이 유럽에서도 보상 협상에 돌입한 것이다. 유럽에서 보상 협상이 시작된 것은 디젤 게이트가 불거진 지 4년여 만이다. 디젤 게이트는 폴크스바겐이 2015년 9월 1070만 대의 디젤 차량을 상대로 배기가스 배출 관련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고 시인한 사건이다.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주행시험 시에만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정상 작동하도록 하고, 일반 주행 때는 작동하지 않게 했다.
폴크스바겐이 독일에서 보상 협상에 들어간 것을 두고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현지의 소송 및 수사 상황이 폴크스바겐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와 관련해 독일 내 전국적으로 6만여 건의 개별소송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초기엔 폴크스바겐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많았지만 최근엔 패소가 많다고 전해진다.
독일에서의 이번 집단소송도 독일 의회가 지난해 디젤 게이트와 관련해 한시적으로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줘 가능했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검찰은 지난 14일 디젤 게이트 관련해 폴크스바겐 임원 6명을 기소했다. 이미 5명을 기소한 바 있어, 기소된 전·현직 임원은 총 11명으로 늘었다. 이어 검찰은 추가로 32명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에 있다. 마틴 빈터코른 전 CEO(최고경영자) 등 폴크스바겐 수뇌부에 대한 형사재판도 올해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또 폴크스바겐 리콜 방안에 배기가스 저감장치 임의설정 요소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독일 정부의 인증 허가 문제에 대해 EU(유럽연합) 최고재판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자, 폴크스바겐이 소비자들과 보상 합의를 통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의 저명한 자동차 전문가인 페르디난드 두덴호퍼 교수는 독일의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폴크스바겐도 이제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디젤 게이트 등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발목을 잡고 있다”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 보상 합의에 나선 거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디젤 게이트’ 사건이 불거지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폭스바겐에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법원도 차량 구매자들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제조사·수입사의 배상책임 일부를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는 지난해 8월 폴크스바겐 차주들이 회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각 1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과거 폴크스바겐 관련 소송을 담당했던 하종선 변호사는 “폴크스바겐이 미국이나 독일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배상 및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며 “재판을 계속 끌면서 소비자들을 지치게 하는 지연작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각 국가마다 규정이 달라 나라별로 비교는 어렵다”면서도 “한국에서 피해차주들에 대한 보상 협의 등 계획에 대해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한편 배출가스 조작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요하네스 타머 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전 총괄사장은 2017년 6월 출장을 이유로 독일로 출국한 뒤 한국에 돌아오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재판이 이뤄지지 않자 검찰은 타머 전 총괄사장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범죄인 인도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