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무르익으면서 고 국정원장(당시 변호사)이 신 전 부의장을 향해 무심코 농담을 던졌다. “자네 국정원장 안될 거면 다른 사람이라도 되게 (이름이) 거론되지나 말지 그랬어.”
이날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신상우씨가 국정원장을 하면 청와대와 친하다고 의심받지 않겠느냐”며 박희태 대표에게 추천을 요청, 그때까지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신상우 국정원장’ 카드가 폐기된 날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0여일이 지난 3월26일, 노 대통령은 고영구 변호사를 국정원장 후보로 내정했다. 우연하게 고 국정원장의 농담이 진담이 돼버린 것이다. 이날 신 전 부의장은 누구보다도 먼저 고 국정원장 후보에게 축하의 전화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신 전 부의장과 고 국정원장이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온 데는 ‘특별한 인연’이 숨어 있다.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1981년 초. 당시 민한당 사무총장 겸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던 신 전 부의장은 지인인 김정남 전 청와대 교문수석으로부터 고 국정원장을 소개받았다.
신 전 부의장은 “고 국정원장은 당시 법조계에서 ‘원칙주의자’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며 “공천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고 국정원장은 11대 총선에서 민한당 후보로 강원 영월·평창·정선에서 당선됐다. 신 전 부의장의 공천이 고 국정원장에게 정계에 입문한 계기를 만들어준 셈. 고 국정원장은 초선임에도 정책위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당시 민한당 부총재였던 신 전 부의장과 함께 당을 이끌어가기도 했다.
두 사람은 5공 시절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은신처 제공 과정에서 특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86년 인천 5·3사건 때 민통련 사무처장이던 이 의원은 5·3 배후조종 혐의로 도피중에 있었다. 이 의원과 대학(서울대 정치학과) 동기인 김정남 전 청와대 교문수석은 신 전 부의장에게 ‘이 의원을 숨겨달라’고 요청했다. 국회의원 신분인 신 전 부의장의 집이 안전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
그러나 신 전 부의장 집 바로 앞에 경찰 초소가 있는 것이 문제였다. 신 전 부의장은 항상 감시가 뒤따르는 자신의 집 대신 고영구 국정원장의 집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고 국정원장은 과천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야산 아래 집이 있어 은신처로는 적격이었던 것. 결국 이 의원의 도피처로 고 국정원장의 집이 선택됐고, 고 국정원장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이 의원은 서울 홍은동에서 김정남 전 청와대 수석을 만나러 갔다가 수사기관에 검거됐다.)
요즘도 고 국정원장과 신 전 부의장은 서로의 생일상을 차려줄 정도로 가까이 지낸다. 신 전 부의장은 “지난해에도 고 원장 생일 때 동부인해서 자리를 함께했다”고 말했다. 이런 자리에는 홍사덕 의원과 김정남 전 청와대 수석도 참석한다고 한다. 홍 의원은 고 국정원장과 마찬가지로 신 전 부의장의 공천으로 11대 때 민한당 후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신 전 부의장은 최근 고 국정원장 내정과 관련, 일각에서 제기하는 ‘신상우 입김설’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신 전 부의장은 “고 원장이 국정원장이 된 것은 잘 된 일이지만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고 원장을 잘 알지만 노 대통령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 때부터 고 원장이 어떤 인품을 지닌 사람인지 알고 지냈고, 노 대통령 주변에서도 고 원장을 추천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신 전 부의장은 최근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나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향후 정치참여(정계개편과 내년 총선출마) 등에 대해서는 “이제 초반인데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