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 인정하지만 ‘의무 없는 일’ 해당 여부는 다시 심리해야“
대법원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상고심에서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사진=박정훈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에 대한 상고심에서 심리 미진과 법리오해를 이유로 각각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 소속 직원에게 특정 인사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은 직권남용 행위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원 배제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하고,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토록 하게 한 행위 등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는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권남용죄(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즉 ‘의무 없는 일’에 대한 해석을 보다 엄격히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지시를 받는 쪽)이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임직원인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기에 그가 어떠한 일을 한 것이 의무 없는 일인지는 관계 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서로 간 협조를 거쳐 이뤄지는 게 통상적”이라며 “이러한 관계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협조하는 등의 행위를 법령상 의무 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 등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 등에 대해 이름과 배제 사유 등을 정리한 문건을 작성하게 하고, 정부지원금 등을 줄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전 실장은 1심에서 지원 배제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1급 공무원에 사직을 강요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돼 1심보다 높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조 전 장관은 1심에서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선 직권남용 혐의도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