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 폭로까지 검증 없이 포털에 기사화…‘흠집 내기’ 대상 스타들, 대응과 무대응 사이 고민
연예계와 방송가에서는 ‘유튜브 폭로’를 ‘증권가 정보지’의 변형으로 지목한다. 루머 유포의 온상인 일명 ‘지라시’가 5~6년 전부터 휴대전화 메신저와 오픈채팅방을 이용한 ‘받은 글’ 형태로 진화했고, 이제는 유튜브가 그 대체재가 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가수 김건모를 향한 선정적이고 가학적인 폭로를 주도하고, 또 다른 연예인들을 언급해 루머를 유포한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변호사 강용석과 전 MBC 기자인 김세의 씨가 2019년 12월 6일 ‘가로세로연구소’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가수 김건모로부터 과거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을 공개해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가로세로연구소 방송 화면 캡처
#‘1인 방송’ ‘표현의 자유’ 뒤에서 무차별 루머 확산
변호사 강용석과 MBC 기자 출신 김세의 씨가 2019년 12월 6일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가수 김건모에게 과거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을 공개해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이후로도 강용석 변호사는 추가 폭로전을 이어갔다. 폭로에 사실 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인 가해 방법 묘사 등 선정적인 내용도 다수 포함돼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현재 김건모와 피해자들의 고소전이 진행 중이지만 재판 결과는 크게 중요치 않은 분위기다. 연예인에게 치명적인 ‘여론재판’은 실제 법정에서 벌어지는 다툼과는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가로세로연구소’ 출연진들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한 강연에서 유명 배우의 실명과 또 다른 가수를 언급하면서 김건모의 아내와 한때 연인 사이였다는 얘기까지 했다. 게다가 김용호 전 기자는 유튜브를 통해 유명 스포츠선수의 사생활을 유포하겠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1인 방송’을 표방하면서 원하는 누구나 채널을 개설할 수 있는 유튜브의 특성은 그 의도가 ‘루머 확산’에 맞춰질 때 치명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루머, 가짜뉴스를 실시간으로 쏟아내지만 규제의 영역을 비껴간 매체이기 때문에 사실상 제재할 방법이 없다. 방송심의규정이나 신문윤리강령이 존재하는 방송이나 신문 등 매체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무차별적이고 때로는 악의적인 목적을 띤 ‘유튜브 폭로’를 온라인 매체 등 일부 언론이 여과 없어 기사화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성폭력 등 성문제에 관한 한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유튜버가 내뱉는 일방적인 폭로를 그대로 ‘받아쓰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와 관련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최근 언론 모니터 결과를 발표하고 “김건모와 관련한 언론 보도 가운데 인권침해적인 기사가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로세로연구소’ 출연진들은 한 강연에서 유명 배우의 실명과 또 다른 가수를 언급하면서 김건모의 아내와 한때 연인 사이였다는 얘기까지 했다. 사진=SBS ‘미운우리새끼’ 방송 화면 캡처
#“굳이 대응하고 싶지 않다”…유튜버 폭로 가속
연예계에서 ‘지라시’가 줄어드는 계기가 된 사건은 2018년 tvN 예능 연출자인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 루머 파문이었다. 이전까지 몇몇 프로그램을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을 두고 ‘불륜설’을 언급한 ‘지라시’가 그해 10월 ‘받은 글’ 형태로 휴대전화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이에 당사자들이 “절대 선처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수사를 의뢰했다.
마침 ‘가짜뉴스’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들의 수사도 탄력을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지라시’의 최초 작성자는 방송 작가 이 아무개 씨와 지인 정 아무개 씨로 드러났다. 이들은 방송가에 떠도는 루머를 듣고 메신저를 활용해 지인들에 재미삼아 전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대화는 불과 2~3일 만에 휴대전화 메신저와 오픈 채팅방을 통해 유포됐다.
수사를 통해 루머의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가 드러나면서 연예인이나 유명인과 관련한 소문을 다룬 ‘지라시’의 확산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연예계에서는 “유포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나왔다. 바로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이 유튜브 방송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유튜브 방송으로 언급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연예인에게 닥치지만 사실상 대응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유튜버를 고소하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을 찾기 어렵다. 얼마 전 비슷한 피해를 입은 배우 김성령 역시 황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소속사를 통해 법적 대응을 시사했지만, 이미 폭로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뒤였다. 법적 대응마저도 재판을 통한 지난한 다툼에 부담을 느껴 주저하는 연예인들도 있다.
근거 없는 악의적 ‘흠집 내기’ 폭로에 연루된 연예인들은 실제로 대응과 무대응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공신력 없는 유튜버 개인의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다가 오히려 관련 내용이 공론화될 수 있다는 점이 이들을 망설이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얼마 전 한 유튜버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한 유명 연예인이 일체 대응을 하지 않고 입을 닫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그야말로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주장일 뿐이라 대응은커녕 언급하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판단했다”고 일축하면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