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끌고 있는 현대투자증권 및 현대투신운용 매각 협상이 이달 중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여졌으나 정부와 푸르덴셜금융그룹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또다시 지연될 전망이다. 당초 협상 마무리에 큰 기대를 걸었던 정부도 최근 “협상은 잘 타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애써 기대감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지만 목소리에는 왠지 힘이 빠진 듯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AIG컨소시엄(푸르덴셜과 협상하기 전 인수희망자)과 협상할 때처럼 협상다운 협상 한번 못해보고 불발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한국투신, 대한투신도 현재와 같은 경영상황이 지속될 경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주식시장의 급격한 호전 등 외부환경의 개선이 없는 한 독자적으로 경영정상화를 기대하기는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나 금융권에 골칫덩어리로 남은 대형 투신사들은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 또 현투 매각은 정말 가능한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앞서 먼저 투신사 부실 원인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정부는 투신사를 동원한 인위적인 증시안정대책에만 몰두한 나머지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더니 방심하고 여유를 부리는 동안 외환위기가 찾아왔고 주식시장은 수익률 경쟁이 더욱 심화됐다. 이러한 가운데 투신사들이 수익률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다고 내세운 카드가 이른바 대우채 집중 매입이었다. 이는 엄청난 손실로 이어져 투신사 경영부실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신탁자산 이관, 증권사로의 전환 및 투신운용사 분리 등으로 정리할 수는 없었는가. 정부는 중소투신사 및 투신운용사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모두 정리했다. 반면 대형투신 3사인 한국투신, 대한투신, 현대투신은 구조조정도 할 수 없는 중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댈 생각조차 못했다. 결국 정부는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의 정상화를 위해 공적자금 투입(한국투신 4조9천억원, 대한투신 2조8천억원) 및 경영개선이행약정(MOU)을 체결하면서 위기를 모면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현대투신은 공적자금 투입보다는 자구노력 유도 및 해외매각을 적극 추진했다. ‘정부가 어떻게 해 주겠지.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의 투신사들 입장도 문제.
지난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과 카드채 사태의 후폭풍으로 투신권에서 투자자금이 대거 이탈하면서 투신사의 실적(4∼6월)이 악화됐다. 그러나 임원 급여는 대폭 증가해 투자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과연 자구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 현대투신 매각을 위해 정부는 지난 2000년 6월 대주주 증자를 통한 자본확충 등 자구노력이 포함된 MOU(양해각서) 체결을 시작으로 지난 2002년 1월에는 해외 매각 추진을 위해 AIG컨소시엄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결렬됐다.
한참 시간이 지나 현투 매각이 금융권 이슈에 사라질 즈음인 지난 3월 정부는 푸르덴셜금융과 협상을 진행해 현투매각과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부도 이번만은 현투매각을 마무리짓는다는 각오로 적극인 협상에 임했다. 이렇게 막바지처럼 보인 현투 매각이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지난 3월 정부와 프르덴셜간에 체결한 MOU에 따르면 푸르덴셜이 매입 초기에 5천억원을 투입해 현투증권 대주주 지분 80%와 현대투신운용을 인수하고, 현투의 20% 지분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우선 인수한 뒤 푸르덴셜이 현투의 경영상황 호전추세를 감안해 모두 인수키로 했다.
또 최종 본계약 체결 전에 추가 발생한 손실을 보전해주는 인뎀니피케이션(사후손실보전) 조항이 첨부돼 있으며, 푸르덴셜은 최근 협상과정에서 부실채권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및 추가 손실 등을 감안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AIG처럼 투자위험을 전혀 떠안지 않고 투자과실을 모두 챙기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정부는 매각조건으로는 푸르덴셜이 현투증권에 1∼3차에 걸쳐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으며 정부와 푸르덴셜은 내달 말 최종 실사를 거쳐 잠재부실규모 등을 확정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안이 워낙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어 매각 협상 마무리 시점은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금융당국 관계자 밝힌 ‘복잡한 사안’은 공적자금 투입 문제일 것으로 추정된다. 공적자금 투입은 국회 동의가 있어야 한다. 현대투신의 경우 지난해 12월31일 이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어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에서 공적자금 지원이 가능하다.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은 민간기금으로 현투 공적자금 투입은 국회 동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국회는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에 출연하는 공적자금상환기금에 대한 기금운용 계획안 심사를 통한 간접적인 통제만 가능하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상 투입된 공적자금은 미회수액으로 남을 여지가 크다. 정부도 이 부분을 가장 크게 고민하고 있다. 또다시 여론의 화살을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과 반대로 시장 관계자들은 “투신사 부실은 간접투자자산운용 산업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므로 조속한 구조조정 계획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며 “현투 매각도 MOU를 통한 구조조정 이외의 공적자금 투입 등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시장의 입장은 정부의 입장과 반대되지만 모두의 입장은 결국 하루 속히 현투가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하튼 이제는 시간이 없다”며 “정부와 투신업계가 중론을 모아 시장원리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투신사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성규 연합인포맥스 기자 sg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