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등 해외 상황 심각 “인구 20~60% 걸릴 것” 전망도…7~8월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 지속돼야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 조짐이 보인다. 사진은 집단 감염이 발생한 콜센터가 위치한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에서 의료진이 사람들의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팬데믹 자체를 언급하지 않던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지시각으로 3월 9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확산) 거점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팬데믹의 위협이 매우 현실화했다”고 입장을 냈다. 특히 이탈리아에선 3월 11일 오전 9시 현지시각 기준 확진자가 1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는 631명에 달한다. 3월 10일 하루에만 확진자가 977명 추가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을 봉쇄하는 초유의 결단을 내렸다. 2월 21일 첫 확진자가 나온 뒤 20일 만이다. 이탈리아에 사는 사람들은 업무나 건강 등의 불가피한 이유를 제외하곤 거주 지역 외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게 됐다.
미국도 코로나19로 휘청거린다. CNN과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매체 등에 따르면 3월 11일 오전 9시 기준 미국 코로나19 확진자는 959명이다. 전날보다 354명 늘어난 수치다. 사망자는 28명이다. 미국 각 지역의 비상사태 선포가 줄을 잇고 있다. 필 머피 뉴저지주 주지사는 3월 10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로드아일랜드주와 오하이오주도 비상사태로 대응 조치가 격상됐다. 워싱턴주에 이어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은 뉴욕주는 주 방위군을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의 뉴 로셸 지역에 투입했다. 뉴 로셸 지역에 있는 유대교 예배당을 중심으로 1마일(1.6km)을 ‘봉쇄 존’으로 설정하고 사람들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심산이다.
3월 11일 오전 9시 기준 8042명의 확진자가 나온 이란에선 코로나19 감염자들이 몸속 바이러스를 소독하기 위해 공업용 알코올을 마신 뒤 사망하는 사례도 나왔다. 유럽의 주요 국가인 프랑스(1784명), 스페인(1639명), 독일(1296명)에도 3월 11일 오전 9시 기준 전날과 비교해 각각 593명, 615명, 157명 확진자가 추가되는 등 확산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전국 이동제한령이 발효된 첫 날인 3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 주변은 인적이 드물다. 사진=연합뉴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지 않는 이유는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면 전 국가에서 임시적으로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19의 치료제는 없다. 결국 팬데믹이 선언되면 실익은 없는 가운데 혼돈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세계 확산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며칠 동안 확산세가 감소하고 있다. 하루 최대 확진자 909명이 나온 2월 29일을 기점으로 3월 7일 483명, 3월 8일 367명, 3월 9일 248명, 3월 10일 131명이 추가되며 하루 확진자 수가 확연히 줄고 있다. 대구는 98%, 경북 지역은 100% 신천지 교인 전수 검사가 끝나면서 감소 추세가 나타난다고 분석된다. 우리나라 확진자는 7755명으로 이젠 이탈리아와 이란보다는 적다. 우리나라에선 코로나가 한풀 꺾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안심 단계가 아닌 이제 시작 단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한풀 꺾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이제 시작”이라며 “대구 신천지 교인들을 전수 검사하는 과정에서 확진자가 대폭으로 나왔고, 이제 전수검사가 끝나서 적게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이 폐쇄됐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어 전병율 교수는 “코로나19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종플루보다 훨씬 확산이 빠르고 강하다.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처럼 ‘작은 신천지’가 산발적으로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며 “세계 인구 20~60%가 걸린다는 분석이 있는데 동의한다. 일반 계절성 감기도 한 바퀴 돌아야 끝난다. 사실 치료제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면역체계를 갖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방역 전문가인 박찬병 서울서북시립병원장은 “물론 아직 방심해선 안 된다. 하지만 한풀 꺾이는 추세는 맞는 것 같다. 학교가 개학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비를 잘하고 있다면 구로 콜센터처럼 집단 감염이 터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종식까진 장기간을 두고 봐야 한다. 해외의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3월 11일 0시 기준 구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자는 90명이다. 밀집된 공간에서 여러 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좁은 간격으로 앉아 함께 일하고 식사를 같이 하면서 집단 감염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구로 콜센터와 같은 소수 집단 감염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코로나19가 한 바퀴 돌아야 끝난다면 추적·봉쇄식 방역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인구 60%가 감염돼야 끝난다고 할지라도 방역은 계속돼야 한다. 방역은 감염 확산 속도를 늦추고 치사율을 낮춘다.
방역 전문가인 박찬병 서울서북시립병원장은“더불어 시민들이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적 마스크가 품절된 약국 앞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박찬병 원장은 “방역을 통해서 감염 확산 속도를 늦추는 게 의미가 있다. 대구처럼 수용 가능한 인원보다 많은 감염자가 한꺼번에 나오면 모든 사람에게 의료 혜택을 보장할 수 없다. 이탈리아나 이란처럼 많은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다”며 “더불어 시민들이 스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전에 대비한다고 봤을 때 일선 의료진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병율 교수는 “경증상자와 중증상자를 나눠, 경증상자 병동엔 의료진을 최소 배치하고, 중증상자 병동에 의료진의 80%가 집중할 수 있도록 해서 의료진 피로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