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손길승 회장(왼쪽)과 정몽규 회장 | ||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당초 정무위의 국감 증인으로 참석할 예정이던 재벌총수들이 대거 증인명단에서 빠지거나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뒷말이 많다. 이들 재벌오너 중 몇 명은 이런 저런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한다는 의사를 해당 의원실에 통보했고, 몇몇 재벌총수들은 아예 최종 증인명단 선정에서 빠졌다. 이렇게 되자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재벌총수들을 증인자격으로 불러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냐”며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국감이기는 하지만, 재계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국감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는 지난해에 재계 3위의 SK그룹이 계열사의 분식회계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던 데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일부 재벌그룹이 편법적인 방법으로 2세들에게 재산을 넘겨줬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
또 카드사의 잇따른 부실 등으로 말미암아 국내 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는 점 등을 보면 재계로선 이번 국감은 여느 때와 달리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닌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번 국감을 앞두고 삼성 SK LG 현대차 등 4대 재벌은 물론 다른 그룹들에서도 일부 부서의 직원을 아예 여의도에 급파시키는 등 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국회 출입이 잦은 한 재계 인사는 “평소에는 한산했던 국회 주변에 국감이 시작된 이후 외부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국회 관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는 모습”이라며 “어림잡아 1천여 명은 돼 보인다”고 전했다. 이같이 재벌그룹들이 바짝 긴장한 이면에는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국감 증인으로 출두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국회 안팎에서 흘러나왔기 때문. 물론 그룹 오너가 국감증인으로 채택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룹 입장에서는 보자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
그러나 최근 정무위에서 내놓은 최종 증인명단을 보면 사정은 전혀 달랐다. 무성한 소문과는 달리 재벌 총수들의 이름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정무위는 국감을 앞둔 지난 9월 중순 1차로 증인명단을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명단에 들어있던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모두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이 회장은 당초 전환사채 처분과 관련해 국감증인으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자신이 대주주인 CJ 계열사가 보유중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넘겨받았다는 지적을 시민단체로부터 받았으나, 최근 해당 주식을 최초 매입가격으로 CJ그룹에 환원한 바 있다.
정몽규 회장 역시 최종 명단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 회장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 및 처분과 관련해 국감 증인으로 나설 예정이었다. 정 회장 역시 시민단체로부터 지난 99년 두 차례에 걸쳐 해외 BW를 발행, 대부분의 물량을 배분받아 회사 지분을 늘리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무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재현 회장과 정몽규 회장은 각각 하나의 사안뿐이어서 국감증인으로 출석하기는 다소 ‘미미한’ 수준인 데다가, 문제가 됐던 CB, BW 등에 대한 향후 처리를 밝힌 상황이어서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LG투자증권의 서경석 사장 역시 위탁증거금과 관련해 국감증인으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종 명단에서는 빠졌다.
정무위가 제출한 증인명단에는 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빠지는 총수도 여러 명. 정무위는 분식회계와 관련해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과 구자홍 전 동양생명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이 기간 동안 해외 출장길에 오를 예정이어서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지 못할 예정이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국회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기는 했으나, 오래 전에 예정된 해외 출장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불참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현 회장은 이 기간 동안 APEC 산하의 한 기관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할 예정.
이외에도 SK그룹 분식회계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손길승 SK그룹 회장 역시 참석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손 회장은 국내 전경련과 비슷한 모임인 중국의 공상련에 한국측 인사로 초청을 받았기 때문.
SK그룹 관계자는 “손 회장의 일정이 정확히 잡혀 있지는 않지만, 공상련 모임과 국감 일정이 겹쳐 (국감 증인으로) 참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