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재공천 요구에 공관위 ‘김종인 입김’ 해석…김형오 사퇴로 ‘영입 반대’ 최고위원들에 힘 실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제가 직접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깃발을 들겠다.”
3월 16일 발표된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얼굴은 뜻밖에 황교안 대표뿐이었다. 그는 “이번에 구성되는 선대위는 경제 살리기와 나라 살리기 선대위가 될 것”이라며 “저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앞장서 뛰겠다”고 했다. 겉보기엔 흔쾌히 나선 모양새지만, 내부 사정은 복잡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섭외하기 위해 막판까지 협상의 협상을 거듭했지만 결국 불발된 것이다.
섭외 실패 배경으로는 ‘공천권’과 ‘선대위원장 역할론’ 등으로 압축된다. 당내 전언을 종합하면 김종인 전 위원장은 당시 김형오 위원장이 이끄는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일부를 되돌리길 원했고, 남은 공천권도 행사하고 싶어 했다. 선대위원장의 경우 ‘단독’ 아니면 맡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황 대표 측에서는 공천을 다시 돌리긴 어렵지만 남은 공천권 일부 행사는 여지를 남겨 놨다. 선대위원장은 상임(김종인)-총괄(황교안) 체제를 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협상은 더디지만 상당 부분 진전은 있었다”며 “원래 이르면 지난 3월 9일 최고위에서 의결을 하려 했으나 여러 이견이 있어 조금 미뤄졌고, 12일 의결이 유력하게 예측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2일 ‘돌발 변수’가 터져 나왔다. 그간 공관위의 공천 결정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황 대표가 침묵을 깬 것이다. 이날 황 대표는 최고위에서 컷오프(공천 배제) 된 민경욱 의원 지역구(인천 연수을) 등 6곳의 공천 재의를 공관위에 요구했다. 민 의원은 황 대표 지도부 체제에서 첫 대변인을 맡은 측근 인사다.
김형오 공관위는 황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움직임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간 ‘공천 전권’을 맡기겠다는 황 대표 입장과 상반되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공관위의 공천 결정을 최고위에서 보류해 다시 돌려보내는 것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공관위 내에서는 이러한 황 대표 측 움직임을 두고 측근 살리기를 넘어 공천 번복 시도를 위한 ‘김종인의 그림자’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급기야 13일 김형오 전 위원장은 전격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김형오 전 위원장 사퇴는 표면적으로는 당 지도부와의 ‘공천 갈등’으로 보이지만 물밑으로는 김종인 전 위원장을 향해 “공관위를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것이 중론이다. 공관위 한 관계자는 “유력한 선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강남갑 태영호 전 북한대사관 공천을 두고 문제를 삼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며 “김형오 위원장이 물러나면서 건들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3월 13일 태영호 전 공사와 관련 “남한에 뿌리가 없다”며 강남갑 공천을 ‘국가적 망신’이라 칭했다. 태 전 공사는 김형오 전 위원장이 직접 영입한 인사다.
‘김형오 사퇴’는 ‘김종인 모시기’를 반대하던 일부 최고위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13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긴급 심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김종인 전 위원장 반대와 찬성이 팽팽하게 갈렸다. 결국 결정권은 황 대표로 돌아간 가운데, 고뇌의 시간이 흘렀다. 이후 황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을 한 차례 더 접촉했고, 결론은 ‘섭외 불발’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사진=임준선 기자
이 과정을 두고 ‘정치 신인’으로서 황 대표의 취약한 리더십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당 핵심 관계자는 “황 대표는 총선 승리를 위해 김 전 위원장을 모시고 싶어 했다”며 “하지만 김형오 위원장 사퇴 파장과 당내 반대까지 억누를 만큼의 리더십은 역부족이었다. 물밑에서 김형오-김종인과 타협, 소통 공간을 확보하고 반발을 잠재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사실상 등을 떠밀려 총괄 선대위원장직을 맡은 황 대표를 두고 당내에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출사표를 던진 종로 판세가 어두운 상황에서 전국 선거를 지휘할 수 있느냐는 시각이다. 자칫하면 ‘오세훈 트라우마’를 되풀이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 20대 총선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종로 후보로 뛰면서 서울지역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인 그는 초반 지지율에서 상대방인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를 가볍게 제친 상태였다. 하지만 종로 외에 타 지역을 다니며 지원유세를 하는 ‘고공 플레이’를 펼치다 저인망으로 지역을 샅샅이 훑은 정 후보에게 결국 약 1만 표 차이로 지고 말았다.
황 대표는 초반부터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상대인 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를 앞서지 못했다. 중앙일보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에 의뢰해 3월 10~11일 종로구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전 총리 50.5%, 황 대표 30.2% 지지율로 차이가 무려 20.3%포인트로 벌어졌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다만 황 대표 측은 “추세로 보면 점점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부 조사로는 한 자릿수까지 좁혀졌고, 향후 행보에 따라 역전도 가능하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종로 판세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모습에 수도권 ‘바람’도 요원해지는 모양새다. 주요 격전지인 광진을에서 오세훈 전 시장은 민주당 고민정 선대위 대변인과 혈투를 벌이고 있고, 구로을에 자객공천된 3선 김용태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과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후보로 뛰고 있는 한 중진의원은 “김종인 섭외는 중도층 흡수에 상당 부분 기여해 종로뿐만 아니라 수도권 선거를 견인할 수 있었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라며 “황 대표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평가할 수 있겠지만 종로 자체가 기가 살지 않아 수도권을 이끌 만큼의 선대위원장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은 총선 승리의 ‘바로미터’가 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통합당 전신)은 수도권 122석 중 34석을 얻는 참패 끝에 1당 지위를 뺏겼다. 최근 당내에선 황 대표를 두고 종로 ‘생존’ 가능성이 낮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일고 있다. 이는 황 대표가 리더십 동력을 잃어버리는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김종인 불발, 힘겨운 종로 판세, 수도권 전반적 침체, 총선 위기의식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황 대표의 불안한 리더십이 드러났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최근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한선교 전 대표가 황 대표 영입인재 상당수를 비례대표 당선권에서 배제하는 ‘공천 쿠데타’를 벌인 것도 황 대표의 취약한 리더십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른바 ‘한선교의 난’은 미래한국당 지도부 총사퇴로 수습됐으나, 황 대표의 리더십이 강하게 확보되지 않는 한 이러한 사태는 또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 핵심 관계자는 “미래한국당 새 지도부와 당헌당규 정비 등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겠지만, 선거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은 황 대표의 강력한 리더십, 카리스마가 더욱 뒷받침이 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