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시민당보다 주목 민주당 1당 사수 비상…총선 이후 친문 분화 가능성
3월 8일 오후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정봉주, 손혜원 최고위원이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선거를 앞둔 민주당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열린민주당 등장이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과 정봉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비례대표용 정당을 띄울 때만 해도 민주당에선 낙천(정봉주)이나 탈당(손혜원)한 인사 몇몇이 가는 ‘이삭줍기 정당’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뤘다. 이른바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는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최강욱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2번)과 김의겸(4번) 전 청와대 대변인이 열린민주당에 합류하자 여당 안팎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입(김의겸)과 칼(최강욱), 부인 김정숙 여사 절친(손혜원)을 모두 뺏겼다”라며 초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손 의원은 김정숙 여사와 숙명여고 동창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선명성 경쟁에서 열린민주당이 치고나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열린민주당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민주당은 친문계 분화가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에 휩싸여 있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친문 분화가 당장 본격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총선 판세와 결과에 따라 친문계가 새판 짜기에 나설 수는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양당의 관계를 ‘전략적 이별’로 규정했지만, 열린민주당은 ‘친문 적자 논쟁’에 불을 붙였다. 손혜원 의원이 3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콕 집어 “아직도 문 대통령의 복심인지, 그의 행보가 과연 문재인 정부를 위한 것인지”라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친문 적자 논쟁의 서막을 먼저 열어젖힌 것이다.
친문 적자 논쟁의 분기점은 포스트 총선 정국에서 다시 부상할 ‘검찰 개혁’이다. 열린민주당은 최강욱 전 비서관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활동 확인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 전 비서관이 사퇴의 변에서 남긴 말도 “촛불을 거스르는 특정 세력의 준동은 좌시할 수 없다”였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이해찬 대표가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가장 공들인 것은 ‘율사 출신’ 영입이다. 법조계 인사만 40명 가까이 수혈했다. 반면 여당의 그간 공천 문법이었던 ‘진보 시민단체 영입’은 최소화했다. 여당 한 보좌관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검찰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열린민주당의 등장으로 ‘친조국·반검찰’ 프레임의 이니셔티브(주도권)는 사실상 잠식당했다.
이해찬 대표가 3월 25일 국회에서 민주당이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우희종, 최배근 공동대표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열린민주당 바람은 지표로도 확인됐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3월 23∼25일까지 사흘간 조사해 26일 공개한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처음 포함된 열린민주당은 11.6%로 더불어시민당(28.9%)와 미래한국당(28.0%)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정의당(5.4%)보다는 두 배 이상 높았다. 원내 의석수 1석 기준인 마의 3% 커트라인을 단숨에 넘은 것이다. 열린민주당은 애초 비례대표 1∼5번인 ‘김진애 최강욱 강민정 김의겸 허숙정’까지를 당선권으로 봤다가, 최근엔 두 자릿수로 목표치를 높였다.
친문 지지층도 인터넷상에서 “지역구는 민주당에, 정당투표는 열린민주당에 각각 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이에 고무된 손혜원 의원은 3월 24일 ‘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 생방송에서 “보수적으로 (정당 득표율) 25%는 자신 있다”며 “(비례대표 후보 중) 12명은 반드시 당선시킬 것”이라고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다급한 쪽은 여당이다. 이해찬 대표까지 저격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3월 25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더불어시민당은 민주당이 전 당원 투표를 통해 참여한 유일한 비례연합정당”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열린민주당을 향해선 “무단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참칭하지 말기를 부탁한다”고 직격했다. 3월 23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꼭 우리가 의석이 제일 많지 않더라도 원 구성을 하기 전까지 연합하면 된다”고 연립정부 가능성을 언급한 지 이틀 만이다. 이번 총선 목표도 130석 수준이라고 몸을 낮췄다. 여당과 함께한 최배근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도 “열린민주당을 찍으면 (우리 당의) 뒤에 있는 후보들이 떨어진다”고 측면 지원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열린민주당 변수가 민주당 의석수에 미치는 영향 △포스트 총선 정국을 달굴 범진보진영의 정계개편 등이다. 열린민주당이 초반 돌풍을 일으킨 만큼, 여당의 의석수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열린민주당이 최대 두 자릿수 의석수를 차지하면, 민주당은 120석 안팎에 그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통합당에 제1당을 뺏길 수도 있다.
이 경우 정계개편 진원지는 범진보진영 내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명 ‘친문발 정계개편’이다. 이들이 포스트 총선 정국에서 연합정당을 형성한다면, 정치적 이슈마다 ‘친조국 프레임’을 놓고 선명성 경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범진보진영이 내부 총질로 공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포스트 총선에서 머리(민주당)와 팔(열린민주당), 다리(더불어시민당)가 하나로 합체된 로봇태권브이를 움직이는 삼위일체의 ‘훈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내부 역학구도를 둘러싼 ‘진문(진짜 문재인) 감별’ 논란이 여권을 덮칠 수 있다. 여당이 살길은 ‘제1당 사수’뿐이다. 안으로는 친문 적자 논쟁에, 밖으로는 여야 구도에 각각 둘러싸인 ‘내우외환’, 21대 총선을 코앞에 둔 여당의 현주소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