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영업 제한에 기준금리 인하로 자산운용 타격…“보험업 포화, 미래먹거리 찾아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에 입주한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보험업계는 대면 거래뿐만 아니라 비대면 영업까지 영향을 받게 된 상황이다. 사진=박정훈 기자
#‘성장’ 대신 ‘생존’ 목표로 했지만…
올해 보험업계는 ‘성장’보다는 ‘생존’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3월은 보험업계 대목이다. 4월 보험상품 개정을 앞두고 보험료가 오르고 보장이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하며 ‘절판 마케팅’을 통해 가입자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보험설계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고객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특히 대면 영업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명보험사가 처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생명·손해보험협회는 2월부터 설계사 등록자격시험까지 잠정 중단했다. 최근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로 보험사 콜센터가 집중관리대상에 포함되면서 콜센터를 통한 비대면 영업도 여의치 않다(관련기사 ‘외출 안하니 사고 뚝’ 코로나19 난리 속 손해보험사들 표정관리 중?).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대면 영업이 주를 이루는 생명보험 특성상 코로나19로 영업 사원이 고객을 못 만나면서 4~5월 매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파악된다”며 “인력이 이탈하고 있는데 설계사 시험마저 중단되면서 하반기에는 영업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은행이 지난 3월 16일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낮췄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운용(주식, 채권 투자 등)해 고객에게 보험금, 연금 등을 지급한다. 이런 가운데 보험사의 주요 투자처인 채권 수익률이 바닥을 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의 평균 자산운용 수익률 3.5% 수준이다. 올해는 이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운용 수익률 하락은 역마진 심화로 이어진다. 과거 5% 이상의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명보험사의 이차역마진(자산운용으로 버는 돈보다 보험금으로 나가는 돈이 많아지는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자산운용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관련 지표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가 얼마 전 이뤄져서 명확히 말할 순 없지만, 오랜 기간 보험으로 영위한 회사는 과거에 고정금리 상품을 많이 팔았기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계보다 업력이 긴 대형사들이 더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NH농협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4월부터 예정이율을 약 0.25%포인트(p) 인하할 예정이다.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고객이 납입한 보험료를 운용해 거둘 수 있는 예상 수익률을 의미한다. 예정이율을 0.25%p 내리면 보험료가 5~10% 증가해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른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가 국고채 금리에 바로 반영된 상황에서 예정이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예정이율을 내리고자 3월 31일까지 계속 고민해야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도 악화되는 상황
보험업계는 한 목소리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고금리 보험상품의 금리위험을 재보험사에 넘기는 공동재보험 제도 도입 등을 통해 보험사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공동재보험은 금리가 하락할 때를 대비해 재보험사에 위험을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공동재보험 제도를 2분기 도입을 추진할 예정인 가운데 이미 기준금리가 예상보다 급격히 낮아져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위기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통과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개정안은 보험회사의 해외 투자 비중을 30%에서 50%로 늘리는 것이 주된 골자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자산운용 수익률을 내고자 사방팔방 노력하고 있는데, 입법부가 가로막는 상황”이라며 “지금 놓치면 총선 치르고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 회사가 생존할지 의문이다”고 토로했다.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17 도입이 1년 미뤄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3월 17일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IFRS17의 시행 시기를 2023년 1월까지 연기했다. IFRS17은 보험사가 보험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보험사들의 부채가 대폭 늘어나면서 요구 자본이 늘고 지급여력(RBC)비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1년 연기되면서 일단 시간은 번 셈이다. 신지급여력제도(K-ICS)의 적용 시점도 1년 미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IFRS17 시행 연도에 맞춰 K-ICS 적용 일정을 조정해왔다.
#조만간 한계…미래먹거리 찾기 숙제
국내 보험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보험료를 인상하고 정부 지원을 받는다고 위기를 해결하긴 어렵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국내 가구당 평균 가입한 보험상품은 12개에 달한다. 매월 내는 보험료는 가구 소득의 20%에 육박한다. 특히 2017년 ‘문재인 케어’ 도입으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돼 민간보험의 필요성도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의료쇼핑은 늘어 보험사 손해율(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이 지난해 129.1%를 기록했다.
보험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지원으로 시간은 벌었지만, 저성장·저출산·저금리의 삼중고를 겪는 보험업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워 보인다”며 “특히 시장 포화로 신규 가입자 진입은 없는데 문재인 케어 이후 기존 가입자의 과잉진료가 늘어나서 적자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자본을 확충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미래먹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험연구원은 지난해부터 헬스케어서비스와 인슈어테크를 이용한 위험관리 서비스 등 보험회사의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앞서의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건전성 제고를 요청해 CEO(최고경영자)가 전면적으로 나서서 경영 내실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며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만큼 업계 전반적으로 미래먹거리를 찾고자 노력 중이지만 쉽진 않다”고 털어놨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