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 3일’ 캡처
꽃은 살아 있는 소통 수단이다.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건네며 네가 겪는 굴곡의 과정을 응원한다고 말하고 연인에게 사과하기 어려울 때 말 대신 꽃을 내민다.
처음과 끝이 반복되는 인생의 주기를 특별하게 기념하고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같은 진심을 대체한다. 꽃 한 송이가 품속으로 들어오는 매 순간 이야기가 있듯이 꽃 한 송이 피워내기까지의 이야기는 희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화훼농업은 다른 농산물 재배와는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2020년의 화훼 농가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전인 1월부터 졸업, 입학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판매를 하지 못해 두 달 이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맞은 김해 대동화훼마을을 찾았다. 가까이서 지켜본 농민들은 절망의 시기에 오히려 새로운 모종을 심고 비닐 온실을 신축하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남은 힘을 끌어올려 다음 꽃 농사를 준비하는 대동화훼마을의 농민들은 결국 제작진과 내레이션을 맡은 김규리 배우를 눈물짓게 했다.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에 있는 대동화훼마을은 장미, 카네이션, 거베라 등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의 절화 생산지이다.
한때는 국내 절화의 70%를 생산했던 마을은 해외에서 밀려드는 수입산과의 가격 경쟁력, 지속적 감소 추세인 1인당 화훼 소비액 등과 맞물려 침체되어 왔다.
평균적인 규모의 비닐 온실 4958㎡(1,500평) 기준, 초기 시설비는 약 4억 5000만 원, 모종 구매비는 연간 약 2000만 원을 감당해야 한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올해 2월의 꽃 판매량은 작년 대비 약 40% 감소했다.
꽃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꽃 중의 꽃, 장미에 발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필수품이 있는데 다름 아닌 편한 작업복. 날카로운 가시밭길을 헤치며 사이, 사이마다 꽃을 솎아내고 잎 순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예쁜 일상복을 입지 못하고 자나 깨나 화재 걱정에 비닐 온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잠을 청하지만 오늘도 무사히 꽃밭에 꽃들이 있어 줘서 감사하다는 주인의 소박한 고백.
그 마음이 닿는 어머니의 손길 하나, 하나가 아름다운 꽃송이로 피어나고 있다.
정성 어린 손길로 피어난 꽃들이 제 주인을 찾기까지는 꽤 어렵다. 낙찰가는 기존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이마저도 다행인 실정이다.
경매장에서 유찰된 꽃들은 피어난 송이, 송이마다 가위로 잘려 바닥에 나부낀다. 멀쩡하게 버려진 꽃 중 일부를 주워서 판매하는 일들이 과거에 있었기에 건강한 유통 환경을 위해서는 꽃송이를 직접 잘라 폐기 처분을 할 수밖에 없다.
1000만 원대를 훌쩍 넘는 모종과 비료 구매 후 비닐 온실의 난방비까지 나가면 인건비도 안 나온다는 한 거베라 농가는 어쩔 수 없이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는다.
꽃을 키우면 키울수록 적자가 심화되고 수지가 맞지 않는 상황. 폐기를 위해 가위질을 반복하다 꽃잎을 어루만지는 화훼공판장 직원의 마음이나 엎은 밭을 덤덤히 보다 이윽고 한숨 짓는 농부의 마음은 모두 잔뜩 움츠러졌다.
그래도 늘 우울할 수는 없다. 금어초를 키우는 한명자 씨는 대동화훼마을의 ‘최고 인기인’이다. 37년간 농사를 지으며 한결같은 쾌활함으로 이웃들을 북돋우는 덕분에 금어초 비닐 온실은 동네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졸업식과 입학식 등 화훼 성수기에 꽃값이 하락해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금어초 농가의 식탁에서는 웃음꽃이 핀다. 금어초 비닐 온실이 늘 화훼 재배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이들의 우정 때문이 아닐까.
꽃은 있는 그대로도 예쁘지만 꽃꽂이로 디자인되는 순간 예쁨이 배가 된다. 대동화훼마을에서 유일하게 꽃집 겸 카페를 운영하는 김은정 씨는 손님들에게 꽃 한 송이씩 선물하며 틈틈이 꽃꽂이 수업을 연다.
아기 탄생을 기원하는 젊은 부부의 ‘간절함’, 무심해 보이는 중년 남성의 ‘포근함’, 리본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쓰며 전하는 ‘고마움’. 그리고 함께 흐뭇한 꽃 카페를 운영하는 김은정 씨의 ‘대동화훼마을 자부심’까지.
꽃꽂이 한 바구니가 사람들의 마음을 물들여 간다.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대동화훼마을 사람들의 꽃 사랑과 화훼농사. 꽃 피우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에 그래도 꽃은 핀다.
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며 꿋꿋이 봄을 준비하는 사람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피어있는 ‘김해 대동화훼마을’에서의 72시간의 기록을 담았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