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우리은행의 갈등이 ‘집안’ 밖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우리금융지주회사 윤병철 회장. | ||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우리은행이 정면으로 맞붙어 금융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우리은행의 지분 1백%를 가지고 있는 지주회사. 또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지분 86.8%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다. 소유관계로 보면 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가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하고 있고,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우리은행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우리은행의 주인이어서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우리은행이 충돌하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러나 ‘한집 식구’나 마찬가지인 두 회사가 정면 충돌한 것을 두고 업계 전문가들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분석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덕훈 우리은행장과 윤병철 우리금융지주회장 사이에 흐르던 이상기류가 표면화된 것은 지난 9월 초였다. 우리금융그룹 계열사인 우리신용카드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두고 두 회사가 정반대의 의견을 내비친 것이 발단이었다.
우리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경영이 악화된 우리신용카드를 은행쪽에 흡수 합병하길 원했고, 반면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우리신용카드의 독자회생을 주장했다. 두 회사의 갈등은 우리신용카드의 유상증자 문제로 본격화됐다.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우리신용카드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증자에 필요한 자금을 우리은행측에 요구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지난달 29일 우리금융지주회사에 3천8백여억원의 중간배당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은행과 우리금융지주회사의 갈등은 수면 아래에 잠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10월13일 우리금융지주회사가 느닷없이 공시를 통해 자회사인 우리은행에 대해 제재 조치를 내렸다고 밝히면서 표면화됐다.
우리금융지주회사가 밝힌 제재 사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리은행이 지난 2분기에 부적절하게 회계를 처리해 그룹 전체의 회계 투명성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우리카드 경영정상화 추진과정에서 은행이 그룹(금융지주회사)의 전략과 역행해 전체 경영에 차질을 초래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우리은행에 요청한 징계의 수위였다. 이덕훈 행장에게는 엄중 주의를, 또 관련 부서장인 최병길 경영기획본부장과 김영석 신용관리본부장에게는 한 달 이상 정직토록 요구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금융계 전체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금융계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취한 제재 수위는 회계상의 문제로 보기에는 초강수”라고 평가했다.
더욱 놀랄 일은 이 조치가 취해진 이후였다. 이덕훈 행장이 대주주인 금융지주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나온 것. 우리은행 관계자는 “부적절한 회계라는 표현도 몹시 불쾌하다”며 “적정한 회계에 대한 기준은 천차만별이고 우리는 전혀 회계를 잘못한 것이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결국 잘못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행장에 대한 제재 조치나 최 본부장, 김 본부장 등에 대한 정직요구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것. 특히 이 관계자는 “회계 문제나 우리신용카드 처리 문제로 트집잡는 것은 겉으로 내건 명분에 불과하며, 지주회사의 속셈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 이덕훈 우리은행장. | ||
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지난 16일 두 회사는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는 선에서 타협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태가 커지자 금감원이 우리금융지주회사과 우리은행의 실무진을 불러 이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지 않을 경우 양측에 대해 ‘강력 제재’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
이후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회사측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회계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태도를 누그러뜨리면서 대신 이덕훈 행장을 비롯해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요청을 재고해줄 것으로 요청했다. 우리금융지주회사 역시 이 같은 내용을 거래소에 공시했다.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우리은행의 반기실적에 대한 수정사항이 발생했으며, 이를 최종 확정하기 위한 회계업무가 진행되고 있다고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표면적으로 양측의 갈등이 봉합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 속내를 보면 해결된 것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두 회사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빚어진 갈등이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
업계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집안의 파워게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한집에서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 하는 싸움이다. 벌이 없는 아버지가 돈을 벌어오는 아들의 살림살이를 일일이 간섭하면 집안이 평안할 리 있겠는가”하고 빗대어 말했다.
우리은행이 번 돈을 갖고 운영해가는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우리은행의 경영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식의 경영간섭을 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었다는 것. 따라서 이 같은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두 회사의 갈등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재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회사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데다, 우리은행의 이익에 대한 배당금 전체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회사로 넘어가고 있다. 여기에 우리금융지주회사의 태생적 한계도 두 회사의 갈등을 깊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회사의 경우 정부가 대주주이기 때문에 비슷한 경영구조를 가진 신한금융지주회사 등과 달리 자회사에 대한 인사권 등을 발휘할 수가 없다. 표면상 두 회사의 관계는 대주주(우리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우리은행)라는 수직관계에 있지만,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독자경영이 가능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금융그룹의 경우 대부분의 임원 인사가 재경부나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우리은행의 내부갈등은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게 금융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