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선거 땐 보수, 전세대란·집값 하락 땐 진보 승리…한강벨트·일산벨트·3기 신도시 부동산이 판세 좌우
4·15 총선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 중 하나는 ‘부동산 정치학’이다. 핵심은 ‘강남 캐슬’을 비롯한 아파트 표심이다. 특히 2040세대가 유입된 신도시 유권자 표심은 판세를 좌우한다. 경기권 선거 변수인 ‘여대야촌(진보 정당은 대도시에서, 보수 정당은 농촌 소도시에서 지지를 받는 현상)’ 기저에도 아파트 표심이 깔렸다. 서울 종로를 비롯한 한강벨트(용산·강남4구·동작·강서), 일산벨트 등의 당락도 아파트 표심이 가를 전망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반포 한신4지구 아파트 단지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최준필 기자
이명박(MB)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여 만에 열린 2008년 18대 총선은 ‘기승전·뉴타운’ 선거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은 MB가 서울시장 시절 추진했던 뉴타운 공약을 쏟아냈다. MB가 2002년 띄운 뉴타운 시범지역 3곳(서울 은평·길음·왕십리)을 시작으로 촉발된 재개발·재건축 열풍은 노무현 정부의 신도시 정책과 맞물려 집값 폭등의 주범으로 작용했다. 뉴타운 특별법 제정 1년 만인 2006년, 버블 세븐(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용인·평촌) 신조어를 낳을 정도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서울 48석 중 7석만 건졌다. 승률은 14.58%에 불과했다. 경기(17석)와 인천(2석)에서도 1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수도권 승률은 23.42%(111석 중 26석)에 불과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72.97%(서울 40석+경기 32석+인천 9석)의 승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는 친노(친노무현)계의 폐족 전락 등이 한몫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을 통해 찍어 누를 때마다 튄 아파트값이 뉴타운 욕망을 타고 보수표로 향한 결과였다.
2012년 19대 총선 땐 뉴타운 사업이 한나라당에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부동산 폭락장→뉴타운 사업 좌초’ 등의 악순환이 민심 반란을 일으켰다. 강남 부동산 대명사로 통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미국발 금융위기 때 4개월간 20%가량(KB국민은행 기준) 빠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경매 물건은 총 29만 1143건으로, 전년보다 약 9% 증가했다. 민주당은 19대 총선에서 서울 30석, 경기 29석, 인천 6석으로, 수도권에서만 65석(58.03%)을 차지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서울 16석, 경기 21석, 인천 6석으로, 4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20대 총선에선 ‘전세 대란’이 변수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2013년 2월)부터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1월까지 전셋값 상승률은 18.16%(KB국민은행 기준)를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의 4년 차(2003년 2월∼2006년 1월) 1.66%보다 11배 높았다. 민주당은 수도권 122석 중 81석(서울 36석+경기 39석+인천 6석)을 싹쓸이했다. 파란 깃발의 비율은 66.39%. 반면 새누리당은 36석(서울 12석+경기 20석+인천 4석)으로, 점유율이 29.50%에 그쳤다. 뉴타운 선거에선 보수 정당이, 집값 하락과 전세 대란 땐 진보 정당이 각각 이긴 셈이다.
21대 총선 전망은 엇갈린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 출범 이후 ‘규제 끝판왕’인 종부세를 포함, 19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찍어 누를 때마다 아파트값은 튀었다. 부동산114 분석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때인 2017년 상반기∼지난해 하반기까지 서울 아파트값 평균 실거래가는 40.8%(5억 8524만 원→8억 2376만 원) 상승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34개 지역 아파트값이 30개월 조사 기간 중 26개월간 올랐다”며 “이 지역의 25명 아파트 기준 평균 4억 원(8억 5000만 원→12억 6000만 원)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외부 충격을 받은 최근에는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한풀 꺾였다. ‘미친 집값→하락 징조’의 흐름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셈이다. 고공행진을 하던 집값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던 시기와 유사한 셈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019년 5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에서 수도권 30만호 주택공급 방안에 따른 제3차 신규택지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21대 총선에서 아파트 표심이 변수인 지역은 서울 한강벨트와 경기 일산벨트, 3기 신도시로 지정된 남양주·과천·하남 등이 꼽힌다. 이 중 한강벨트는 수도권 바람의 핵심 지역으로 개발 호재가 많은 지역이다. 뉴타운 선거 표심과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일산벨트 핵심 축인 고양정은 집값이 하락한 지역이다. 과천은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다. 고양정은 정권 심판 분위기가, 과천은 보수화가 최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남은 신도시 유입에 따라 2040세대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투표 성향도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 표심의 핵심은 개발 욕망이다. ‘정치 1번지’ 종로에 출격한 이낙연 민주당 후보도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다. 황교안 통합당 후보는 선거 초반 경희궁자이 등이 있는 교남동 아파트 단지를 집중 공략했다. 현 판세는 이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5∼20%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지만, 종로 주민들은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에 대해 “선거 때마다 으레 나오는 공약”이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황 후보는 막판 뒤집기에 실패한다면, 2008년 제1야당 수장이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종로 총선에서 박진 한나라당 후보에게 밀렸던 손 전 대표는 총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강태웅(민주당) vs 권영세(통합당)’ 구도인 용산은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로 불리는 ‘한남 뉴타운’과 ‘주한미군 기지 활용’ 등 굵직한 부동산 이슈가 산적해 있다. 용산 아파트의 43%가 20년 이상이 됐을 정도로, 재건축·재개발은 용산 구민의 숙원이다. 이에 여당에선 서울시 행정1부시장 출신의 ‘도시행정가’를 내세웠다. 통합당은 3선이자 주중대사 출신의 거물급으로 맞불 전략을 썼다. 이들은 개발 공약인 ‘신분당선 보광역·신안산선 만리재역 신설’과 ‘대사관과 이태원을 활용한 글로벌교육 허브 육성’ 등을 각각 내세웠다.
강남 4구도 용산과 함께 재건축이 최대 현안이다. 강남갑에 출마하는 태구민(태영호) 통합당 후보는 “강남에 세금 폭탄이 불어닥쳤다”며 강남 아파트 표심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송파을의 배현진 통합당 후보도 일찌감치 잠실 아파트촌을 중심으로 표심 훑기에 나섰다. 최재성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 강남 후보 6명과 황희(양천갑)·강태웅(용산), 김병관(경기 분당갑)·김병욱(분당을) 의원 등 부촌 지역 후보들은 3월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 내부에선 “올려놓을 땐 언제고…”라며 볼멘소리가 나왔다.
60석인 걸린 경기도에선 20대 총선 때 고양을과 남양주갑, 군포갑이 각각 900표, 249표, 726표 차로 초박빙 구도였다. 이번 총선 결과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나서는 고양갑에선 문명순 민주당, 이경환 통합당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이어 고양을 한준호 vs 함경우, 고양병 홍정민 vs 김영환, 고양정 이용우 vs 김현아 후보 등이 나선다. 부동산 표심이 최대 변수인 지역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지역구인 고양정이다. 혁신기업 유치를 내세운 이용우 후보에 맞서 김현아 후보는 ‘3기 신도시 철회’를 내세웠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