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애니·게임 여성캐릭터에 가슴·제복 등 에로틱 요소 부각…일부 창작자 문제의식 표출하며 수용자와 마찰
#캐릭터 조형론으로서의 모에
모에는 수용자의 반응으로만이 아니라 캐릭터 조형론으로도 작동한다. 창작 방법론으로서의 모에는 인물, 정확히는 ‘미소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 캐릭터의 내외적 조형을 극단적으로 부품화한 취향 코드 일체다. 모에 캐릭터는 인물로서 태어난다기보다는 어떤 취향에 닿아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형태로 ‘조립’된다.
사람의 취향은 한 사람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하고, 당연히 사람 수만큼 곱절로 다양하다. 모에는 이 수많은 취향에 해당하는 내외적 요소들을 시청각화하여 알아보기 쉬운 형태로 전시한다. 안경, 가슴 크기, 머리카락의 모양, 눈매, 특정 제복, 머리카락 색깔, 말투 등 여성 캐릭터들이 하고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조합의 대상이며, 서사와 대사를 통해 인물의 존재를 납득시키기보다 일단 감각기관에 1차적으로 들어가는 요소를 통해 ‘이 캐릭터는 어떤 역할’임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립식 미소녀들이 넘쳐난다는 건, 곧 특정 취향에 맞춰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 캐릭터는 물론 작품 자체가 성립하고 이를 기꺼이 봐 줄 사람이 일정 이상 있음을 의미한다. 미소녀 캐릭터를 여럿 배치해놓고 각자의 모에 포인트를 부여하는 건 ‘이 중 하나는 너에게 맞는 캐릭터가 있을 것이다’라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모에의 본질, 성적 대상화
모에는 창작 방법론으로서는 캐릭터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분 유용하지만, 문제는 모에라는 취향 집합에서 성적 대상화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모에 캐릭터가 미소녀라는 형태를 띠고 있는 이상, 결국 모에는 남성 입장에서 여성으로 규정한 대상을 부위별로 나누어 놓은 후 성적으로 끌리는 점들을 그러모아 맞춰놓는 것을 뜻한다.
이런 연유로 말미암아 오로지 모에로만 이루어진 캐릭터들은 지극히 얄팍해지는 경향이 있다. 조립이 용이하게끔 하기 위해서는 부품끼리 서로 튀지 말아야(즉 단순해야) 하고, 성적 취향에 닿아 있는 지점을 부각해야 하는 목적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형태면에서 단순함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에가 극단화할수록 캐릭터 조형의 변별력은 떨어지고 성적인 뉘앙스는 올라간다.
이러한 조형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 연예인과 모델을 내세운 노출 사진 화보(통칭 그라비아 화보)에서 에로티시즘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자세와 구도가 시도되는데, 역시 극단화할수록 ‘만화적 과장임을 감안하더라도’ 애초에 인간의 몸에서는 나올 수 없는 형태를 보여주게 된다. 이야기와도 동떨어져 조형과 성격 코드를 통해 과도하게 부각되는 성적 요소는 여성들에게는 분명한 여성혐오(미소지니) 요소다.
최근 등장하는 미소녀 카드 수집형 게임 상당수가 중국에서 개발된 일본식 모에 미소녀물이다. 이미지는 요리를 모에화한 중국 게임 요리차원의 한국 캐릭터. 헐벗은 여성을 음식에 비유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에서의 모에
일찍이 우리나라의 비실사 시각 문화는 많은 면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어 왔다. 오덕, 덕후라는 이름으로 한국화한 문화의 원류도 일본이고, 이들이 즐겨 온 문화 대부분도 일본에서 왔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동아시아권이 공히 그러한데, 역사적 맥락에서 유쾌하진 않으나 그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본이 대중문화 전반에서 우위에 있던 시기, 상품화가 용이한 캐릭터들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넓은 내수 시장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분명 많은 창작자들이 그 영향권 아래에서 창작 활동을 했다.
비단 오타쿠 문화만이 아니라, 일본의 대중문화 자체가 거대한 규모로 부각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K-POP이 J-POP을 압도하고, 한국의 영화감독이 오스카를 받아 드는 풍경을 목도하는 시대가 됐다. 만화도 애니메이션도 각기 웹툰과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서 성장세를 이루며 일본의 영향권에서 많은 부분 벗어나 있는 상태가 됐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잘해서기도 하지만, 일본이 영광의 시대에 안주한 채 답보한 결과기도 하다. 물론 답보해도 시장이 일정 부분 유지되기에 그들로서는 아쉬울 게 없을지 몰라도, 우리는 아니다.
한국의 비실사 시각 문화들은 상당 부분 일본의 영향권을 벗어나면서 오덕들이 주로 보던 대상에서 벗어나 한층 더 넓은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게 됐다. 그 결과 그간 관습적으로 받아들여 오면서 묻어뒀던 문제 요소들이 점차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됐다. 인물을 취향 조립 선에서 얄팍하게 성립시키면서 발생하는 성적 대상화, 나아가 여성 혐오에 해당하는 부분들은 이제 끊임없이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된다. 현재 한국의 SNS에서는 만화 속 여성 표현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형론의 일부로서 모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 또한 미(美)-라는 접두어가 가리키듯, 성별불문 누구에게나 예쁘고 멋진 이를 보고 싶은 본능은 있다. 하지만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이 드러내는 일방통행적인 성적 대상화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사회에서 성적 대상화가 왜 문제가 되는지 우리는 이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일본에서 그저 문제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따르면 우리 안에서는 분명히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음도 드러나고 있다. 만화계에는 이 지점에서 충돌을 겪으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고 점차 문제점을 인지하고 고민하는 창작자들도 늘어가고 있다. 일례로 그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라는 일성을 남겼던 ‘누들누드’의 양영순도 ‘덴마’ 연재 중 여성 표현의 기조를 바꾸었고, 작품의 채색을 담당하는 작가의 페미니즘 지지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게임 업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이러한 불편함에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나 만화가를 “잘라내라”는 목소리가 수용층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게임 업계에서는 아예 모에 캐릭터를 탑재한 가챠형 게임(미소녀 카드 뽑기 게임)을 ‘일본식 미소녀물’이라는 설명까지 붙여가며 ‘서브컬처 장르’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유통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모에가 여전히 적당한 작법론을 넘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유통되는 분야가 게임이고, 역시 한국의 인터넷에서 인권과 정치에 이르는 영역을 통틀어 가장 퇴행한 형태를 보이며 만화 창작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끊임없이 끼치는 곳이 10~20대 게이머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와 특정 위키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한국의 비실사 시각 문화들이 공히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어도 이제는 아니다”라는 지점에 ‘함께’ 눈 돌릴 필요가 있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