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보호 조치는 인색한데 이들에게 불이익을 가한 데 따른 처벌은 관대
공익제보자는 많아졌지만 제도적 한계로 보호·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이 2016년 12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진상규명 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일요신문DB
#실효성 없는 공익신고법, 보호 요청해도 인용률 절반 안 돼
우리나라에서 공익제보와 관련해 적용되는 법은 기본적으로 2개다. 공공부문 부패행위를 규제하고 신고자를 보호·지원하고자 2001년 제정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과 이를 민간부문에 적용하고자 2011년 만들어진 ‘공익신고자보호법’이다. 내부고발자들은 두 법을 기반으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신고에 따른 불이익 및 신분·신변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요청하고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익위에 따르면 공익신고 처리 건수는 2011년 227건에서 2013년 2509건, 2015년 7089건, 2017년 2238건, 2019년 5165건으로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신고자들의 보호 요구도 해마다 늘고 있지만 실제 받아들여진 경우는 많지 않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국정감사 당시 권익위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1~2019년 9월 권익위가 접수·처리한 공익신고자 보호신청 256건 중 90건(35.16%)만 인용됐다.
공익신고자들이 늘면서 보호 조치 요구도 늘어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인용률은 여전히 낮다. 사진은 공익신고 보호사건 연도별 처리 현황.
2011~2019년 9월 합계한 공익신고 보호사건 항목별 처리 현황.
특히 제보에 따른 간접적 피해가 잘 보호되지 않았다. 불이익을 당한 뒤 복직 등 보호를 요구하는 ‘보호조치’는 131건의 신청 중 29.01%인 38건만 받아들여졌다. 제보자가 누군인지 짐작할 만한 정보를 유출했을 때 유출자가 누군지 공개를 요청하는 ‘신분공개’는 24.56%, 불이익 조치 가능성에 사전 보호를 요구하는 ‘불이익조치 금지’는 16.67%가 인용됐다.
반면 ‘신변보호’는 80.77%가 인용됐고, 제보자가 신고한 범죄에 가담했을 때 형 감경·면제를 요청하는 ‘책임감면’도 58.33%가 받아들여졌다. 폭력 등 직접적인 불이익은 막아줘도 전보나 따돌림, 해고 등 간접적 불이익에 대해서는 보호가 소홀한 셈이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인용되지 않은 건수 가운데 조사 과정에서 각하되거나 인용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인용건수만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다. 실제 조사 중간에 각하, 취하, 종결된 건수를 제외하면 신고자 보호 인용률은 60%에 달한다“며 ”담당 조사관부터 신고자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신고자 입장에서 바라보며 진행한다”고 반박했다.
#보호조치 소홀한데 관대한 처벌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는 인색한데 이들의 신원을 노출시키거나 불이익을 가한 데 따른 처벌은 관대하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짐작할 만한 사실을 타인에게 알려주거나 보도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또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가하거나 권익위 보호조치 결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부패방지권익위법에서도 신원 노출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 불이익조치 등을 가할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가한다.
그러나 실제 선고하는 형량은 약해 보인다. 유동수 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2019년 6월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으로 사법기관이 내린 가장 높은 처벌은 1심 기준 500만 원의 벌금형이다. 징역형을 선고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법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제보자 색출과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제보자가 소속기관에 신고하거나 행정·사법기관이 접수한 뒤 해당기관에 이첩할 때 기관 간 유착관계로 의도적으로 신분을 노출하거나 공무원의 실수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인 이상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경찰에서 제보 사건 조사를 마친 뒤 기관에 이첩하면서 자료를 낼 때 ‘누구의 제보로 이 사건이 시작됐다’고 적어 이름이 알려진 판례가 있는데 법원은 공무원이 악의 없이 업무수행 중 저지른 실수로 보고 벌금형을 선고했다”며 “제보자가 당하는 고통에 대한 사법부의 진지한 고민이나 매뉴얼이 없고, 신고기관에서도 제보 내용이 얼마나 무거운 사안인지 인식이 없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공무원이 의도적으로 신원을 노출했을 때는 물론이고 설사 실수여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조직 내 색출 문제도 제재하기 힘들다. 제보자는 조직 핵심 정보에 접근 가능한 직급인 경우가 많아 누가 신고했는지 파악하기 쉽다. 색출 후에는 보복성 혹은 제2의 내부고발자를 우려해 제보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일쑤다. 불이익조치에 대한 처벌이 약해 위반인 줄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희 변호사는 “색출 제재 규정을 강화하고 인적사항 유출이나 불이익조치가 발생했을 때 처벌 수준도 높여야 한다”며 “제보자를 색출·탄압해서 조직을 추스르는 이익보다 제보자를 탄압한 데 따른 처벌의 타격이 더 커야 제보자가 불이익을 받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원 유출을 막기 위한 비실명 대리신고도 보완이 필요하다. 비실명 대리신고는 신고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이 아닌 변호사 이름으로 신고할 수 있는 제도로 권익위가 2018년 10월 도입했다. 그러나 변호사 지원 규모가 작아 활발히 운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권익위는 신고자가 변호사 선임을 원할 경우 자문변호사단을 통해 자문을 받고 대신 신고할 수 있도록 돕는데 이에 대한 변호사 수당은 법률자문 시 10만 원, 대리신고 시 45만 원에 그친다. 아울러 법률상 권익위에서만 대리신고제를 운영하는 만큼 행정·사법기관 등 모든 신고기관에 비실명 대리신고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영기 호루라기재단 이사장은 “변호사 선임비용은 많이 드는데 지원 규모는 작아 변호사들이 신고자에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신경 쓰기보다 형식적으로 대리 신고해 준 뒤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원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희 변호사도 “비실명 대리신고를 공익제보를 접수하는 모든 기관에서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공익침해 인정 범위를 넓히고, 제보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데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전경. 사진=연합뉴스
#공익침해 인정범위와 신고 창구 넓혀야
공익 침해 인정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법으로 공익제보에 해당하는 항목들을 정해놓는데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공익제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3월 5일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률을 현재의 284개에서 184개를 새로 추가해 총 468개 안건을 의결했다. 그러나 배임·횡령·상법 등 경제범죄 관련 주요 법률은 포함되지 않았고, 이 외에도 법률에 없으면 신고해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직무와 관련한 모든 법령 위반 행위를 공익신고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불이익 조치라고 인정하는 시기도 늘려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3조에는 공익신고 등이 있은 후 2년 이내에 공익신고자 등에 대하여 불이익 조치를 한 경우, 공익신고자 등이 해당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는 항목이 담겼다. 조직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제보자인 개인에게 불이익을 가할 것인데 이에 비해 2년이란 기간은 너무 짧다는 것.
팜한농 산업재해 은폐 사실을 폭로했던 이종헌 씨는 “조직은 공익신고자가 조직에서 퇴출될 때까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가할 것이 명백한데, 2년이라는 시간은 공익신고자가 제2의 삶을 준비하는데 너무 짧다“며 “가해자에게 부과한 입증책임의 의무를 기존 2년에서 더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접수창구를 넓히는 것도 공익제보 활성화 방안으로 꼽힌다. 법률상 공익신고 접수기관은 권익위와 수사기관, 국회의원, 지도·감독·규제·조사 등의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나 감독기관 등이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통한 제보는 인정되지 않아 권익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을 언론에 폭로한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권익위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다만 언론·시민단체에 제보한 뒤 접수기관에 정식으로 신고할 경우에는 보호가 가능하다.
이상희 변호사는 “공익침해 행위는 국민 안전, 공정 경쟁과 관련한 것으로 기업들이 이를 해할 때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 과정에서 횡령과 배임이 발생한다”며 “경제범죄와 안전 문제가 동전의 양면이니만큼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공익침해 범위도 모든 위반 행위로 넓혀야 한다”고 했다.
이영기 이사장은 “언론·시민단체에 폭로하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언론·시민단체에 제보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고기관 확대는 적극 검토해야 하지만 신고 가능한 언론·시민단체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생활고 시달리는 제보자들 생계지원 늘려야
제보자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권익위는 제보 덕분에 국가가 환수하는 이익이 있을 경우 최대 30억 원의 상한선을 두고 금액 단위에 따라 다른 비율을 적용해 보상금을 준다. 하지만 환수 이익이 상한금액 이상일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고, 금액 단위에 따라 다른 비율도 똑같이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제보자지원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이영기 이사장은 “상한선을 없애고 보상금 규모도 확대해 금전적 보장을 해주면 자유로운 공익제보가 가능해지고, 이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부당한 업무평가로 해고·좌천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제보자가 많은 만큼 해고당하면 일정 기간 생활비를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i 특별취재팀
(이수진 박형민 김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