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섭 기자의 연예편지 스물여덟 번째
사진 제공=지상욱 선거사무소
‘8월의 크리스마스’도 이제 고전입니다. 1998년 1월에 개봉한 영화니 벌써 20여년을 훌쩍 넘긴 과거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영화팬들이 최고의 한국 영화 가운데 한 편으로 손꼽는 영화입니다. 허진호 감독의 입봉작으로 거장의 탄생을 알린 이 영화에서 허 감독은 특유의 연출력으로 군산이라는 도시에 지울 수 없는 잔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군산과 초원미술관이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게 만든 1등 공신은 당연히 허 감독입니다. 게다가 초원미술관은 정원 역할을 맡은 한석규의 공간입니다. 거기서 다림 역할의 심은하와 사랑을 싹틔우지만 절대적으로 한석규의 출연 분량이 많은 공간입니다. 그럼에도 군산을 찾는 이들, 초원미술관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은 하나 같이 심은하를 얘기합니다. 그렇게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심은하의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포스터
사실 심은하는 대표작이 그리 많은 배우는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드라마 ‘청춘의 덫’은 말 그대로 레전드에 속하고 데뷔작인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등을 더 손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승부’의 다슬이 역할로 심은하는 데뷔와 동시에 청순가련형 여배우의 선두주자로 올라섰습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는 한국 영화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로 언급됐을 정도입니다.
그리곤 그다지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심은하라는 이름값 때문에 큰 관심을 받았던 ‘본 투 킬’ ‘텔 미 썸딩’ 등은 유명세에 비해 흥행과 평이 모두 기대 이하였고 드라마 ‘백야 3.98’ 역시 이젠 제목만 가물가물 기억이 날 정도입니다. 다른 출연작들은 제목도 기억이 안 날 정도인데 그나마 ‘다슬이’로 청순가령형 스타가 된 심은하의 차기작이 공포물이라 화제성이 컸던 드라마 ‘엠’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나마도 ‘응답하라 1994’에서 ‘엠’을 다룬 에피소드가 화제가 됐던 영향이 큽니다.
1993년 MBC 2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1994년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2000년 4월에 개봉한 영화 ‘인터뷰’가 마지막 작품이니 배우 심은하는 7년 정도 짧게 활동했던 과거의 여배우일 뿐입니다. 활동 기간이 7년인데 활동을 중단한 지는 벌써 20년이 됐습니다. 지금이 2020년 4월이니 정확히 심은하 은퇴 20주년이기도 합니다.
심은하라는 배우의 강점은 스타성에 있습니다. ‘마지막 승부’의 다슬이로 한 번에 최고의 스타가 된 심은하는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와 1999년 ‘청춘의 덫’을 통해 연기력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스타성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배우이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영화계도 그의 컴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심은하라는 배우의 스타성이 부각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94년 데뷔작으로 스타덤에 오른 심은하는 사생활 관련 폭로로 잠시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로 반등이 시작돼 90년대 후반엔 연기파 배우로 더 큰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게 심은하는 신비주의 스타가 됩니다. 한동안 위기를 겪은 탓도 있지만 90년대엔 톱스타들의 대부분이 신비주의 전략을 쓰기도 했습니다.
사진 제공=지상욱 선거사무소
그런데 심은하는 2000년 돌연 활동을 중단해 2001년에는 아예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렇게 신비주의 속으로 아예 들어가 버립니다. 정우성 전지현 등 당대의 신비주의 스타들이 대부분 나중에는 신비주의의 옷을 벗고 대중 가까이로 다가왔지만 심은하는 신비주의 시절에 은퇴를 해버리면서 영원한 신비주의 스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행보가 스타성을 더욱 견인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죠. 그 당시에는 심은하의 평소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나 인터뷰를 시도하는 짧은 영상만으로도 화제가 됐을 정도입니다. 2005년 결혼하면서 은퇴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다시 15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자는 물론이고 2000년대 초중반 활동한 연예부 기자들 가운데에는 심은하의 모습이라면 무엇이라도 포착하기 위해 애를 쓰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기자 역시 심은하가 결혼 전에 살던 우면산 형촌마을에서 수없이 잠복 취재를 하며 심은하를 괴롭히던 나쁜 기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남성과 함께 외출하는 모습을 단독으로 포착했는데 그 남성이 바로 지상욱 미래통합당 서울 중구성동구을 국회의원 후보입니다. 당시 지 후보가 심은하를 차에 태워 어딘가로 향했는데 그곳은 바로 웨딩숍이었고 그 모습은 기자에게 ‘심은하 결혼’이라는 희대의 특종을 선물해 줬습니다. 그렇게 심은하는 정치인의 아내, 아니 당시엔 정치지망생의 아내가 됐습니다.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 자유선진당 서울시장 후보로 등록하면서 지상욱 후보는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세인의 관심사는 심은하였습니다. 과연 심은하가 다른 정치인 배우자들처럼 선거유세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일지 여부가 관심사가 된 것이죠. 김한길 전 의원의 부인인 배우 최명길과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심은하는 선거 유세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지상욱 후보가 출마했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거 당일 부부가 함께 투표하는 모습과 20대 총선에선 당선이 확정됐을 당시 함께 기뻐하는 모습 정도가 언론에 노출된 게 전부였습니다.
사진 제공=지상욱 선거사무소
그런데 이번엔 다릅니다. 심은하는 성동구 금남시장 등을 방문해 상인들을 만나며 직접 남편의 선거 유세를 적극 돕고 있습니다. ‘지상욱 배우자’라고 크게 적힌 핑크색 점퍼를 입고 선거 유세를 하는 심은하의 모습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는 기본적으로는 선거구도 때문일 겁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지상욱이라는 정치인의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한 선거였을 뿐 지 후보는 당선권이 아니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는 지상욱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 굳이 부인이 선거 유세까지 지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선 아나운서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후보와 지상욱 후보가 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도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습니다. 비로소 선거 유세에 배우자 심은하가 등판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죠. 어떤 이들은 지상욱 후보 측이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심은하 카드’까지 꺼내들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배우 심은하를 취재해 온 기자는 ‘처음으로 심은하가 등판할 상황이 연출됐을 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 그러니까 지상욱 후보자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서 낙선한 뒤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할 즈음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정리한 책 ‘굿소사이어티’를 냈습니다. 북파티 형식으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도 연예부 기자들이 대거 출동했습니다. 물론 심은하 때문이었죠. 이날 역시 무대에 오르지 않고 조용히 객석에 앉아 있던 심은하는 사회자의 질문을 받고 객석에서 마이크를 받았습니다. 짧게 한 두 마디하고 말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상 외로 심은하는 꽤 길게 얘기를 했습니다. 책을 쓰는 동안 남편이 고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의 심경부터 정치인이자 도시공학자인 지 후보자가 평소 어떤 고민을 하며 지내왔는 지 등을 솔직 담백하게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인의 아내로 준비된 심은하의 모습은 당시 언론을 통해 크게 화제가 됐고 기자 개인에게도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젠 배우가 아닌 정치인의 아내구나, 이제 심은하의 담당 부서는 연예부가 아닌 정치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후 연하장에 지 후보자와 함께 등장하는 등 심은하는 뒤에서 조용히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치인의 아내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뒤에서 조용히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유세 현장에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 되자 비로소 대중들 앞에 서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최준필 기자
얼마 전에는 심은하에게 걸려온 전화도 받았습니다. 아마 지역구민들은 많이 받으셨겠지만 바로 선거 관련 음성 메시지가 담긴 전화였습니다. 처음엔 지상욱 후보자와 함께 번갈아 가며 얘기하는 전화였고 나중에는 심은하 홀로 얘기하는 음성 메시지의 전화도 걸려왔습니다.
오래전이지만 심은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포착하려고, 심은하의 얘기를 단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잠복 취재까지 불사했던 시절이 떠오르며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심은하입니다”로 시작하는 음성 메시지에서 그가 자신을 “중학생 두 딸을 키우는 아이 엄마”라고 말하는 순간 잠깐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상욱 심은하 부부의 결혼을 보도하려 한참 뛰어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들의 2세가 둘 다 중학생이 됐으니까요. 시간은 참 금방 지나갑니다. 이제 선거철에 금남시장에 가면 심은하를 직접 만날 수 있고 그의 음성이 담긴 전화도 걸려옵니다.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더욱 빛나던 ‘신비주의 스타’가 아닌 이젠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는 ‘정치인의 아내’가 돼 20여년 만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완연한 정치인의 아내 심은하를 접하며 배우 심은하를 만날 가능성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는 부분입니다. 사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영화계에서 알게 모르게 심은하 컴백설이 나돌았었습니다. 당시 심은하가 유명 피트니스 클럽을 다니며 몸매 관리에 돌입했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영화계 관계자들과 만났다는 얘기도 들려왔습니다. 이런 소문의 근간은 남편 지상욱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심은하가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추측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시 선거에서 지상욱 후보가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지만 심은하의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선 심은하가 대중 앞에 나서서 직접 선거 유세를 지원하고 있음에도 컴백설은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긴 은퇴하고도 20년이 흘렀습니다. 이 글을 심은하라는 배우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 까닭 역시 요즘 20대는 이 배우를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상욱 후보와 박성준 후보의 멋진 승부로 인해 정치인의 아내 심은하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 부분을 감사드리며 누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던 21대 국회에서 좋은 의정활동 펼쳐주시길 응원합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