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섭 기자의 연예편지 스물다섯 번째
하루 뒤인 21일 오후 심은하가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내용이 <한국일보>를 통해 단독 보도됐습니다.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응급실을 찾은 시점은 20일 새벽. 지 의원이 당대표 후보직 사퇴를 한 시점이 20일 오후임을 감안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긴 가족은 부인 심은하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20일 새벽 부인이 응급실에 실려 가자 지 의원이 그날 오후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사퇴의 뜻을 밝힌 것이죠.
이 대목에서 기자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심은하가 드디어 연예계에서 완벽하게 은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점부터 호칭도 ‘심은하’가 아닌 ‘심은하 씨’로 바꾸겠습니다. 연예인의 경우 기사에서 호칭을 생략하고 이름을 쓰는데 더 이상 연예인이 아닌 정치인의 부인인 만큼 이에 맞춰 호칭을 정리한 것입니다.
지상욱 의원 당선 확정 당시 모습. 다소 어색한 표정의 심은하. 연합뉴스
심은하 씨는 지난 2001년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고 그 이후 17년 동안 연예계 활동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극동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심은하와 차 한잔을> 통해 잠시 방송 활동을 했지만 보다 정확히 보면 이것은 방송 활동이 아닌 종교 활동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은퇴한 지 17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컴백설이 끊이지 않으며 연예면에 자주 등장하던 심 씨지만 이번 응급실 행 소식은 사회면에 실렸습니다. 심 씨가 완벽히 연예계에서 은퇴해 정치인의 부인이 됐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는 나름 연예계에선 ‘심은하 전문 기자’입니다. 그만큼 심 씨를 많이 괴롭힌 기자인데 은퇴 선언 이후 몇 차례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 단독 보도한 바 있으며 지 의원과의 결혼을 특종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심 씨의 결혼과 출산 이후 더 이상 관련 기사를 쓸 기회가 크게 줄어들면서 차츰 ‘심은하 전문 기자’라는 타이틀도 잊혀 가는 상황에서 또 한 번 나름 큰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연예인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건 분명 큰 뉴스인데 이번엔 그 주인공이 ‘당대 최고의 스타 심은하’ 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 시점에 기자는 해외에 체류 중이었습니다. 가족 여행을 위해 20일 오전에 해외로 떠난 기자는 잘 터지지 않고 느린 호텔 와이파이로 겨우겨우 관련 뉴스를 지켜보는 데 급급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2001년 연예계 은퇴 이후 심 씨를 둘러싼 다양한 뉴스를 취재했던 ‘심은하 전문 기자’가 이번만큼은 손을 놓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진정수면제를 과다 복용했을까요? 심 씨는 공식입장을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를 위해 약을 복용하다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며 “최근에 모르고 지냈던 과거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발견하게 됐다. 약물치료가 필요했지만, 지금까지 저의 의지와 노력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스스로 극복해 왔다. 그러다 최근에 약을 복용하게 되면서 부득이하게 병원을 찾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의학적인 설명(수면제 과다 복용이 자살 시도는 아니다)과 심 씨 측의 설명(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목적의 수면제 복용)을 더해서 보면 이번 응급실 행은 ‘심 씨가 과거 앓았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재발해 치료 목적으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진정수면제를 복용했는데 어떤 이유로 정량이 아닌 과다 복용을 했고 이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그렇다면 다시 두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우선 어떤 이유로 정량이 아닌 과다 복용을 했는지가 의문이며 왜 심 씨가 과거 앓았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재발했는지 여부도 궁금증으로 남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과다 복용으로 입원했지만 그리 심극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 씨가 이틀 만에 퇴원했기 때문이죠. 같은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진정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던 빅뱅의 탑이 의식불명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됐던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이른 퇴원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의사들은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갔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많은 양을 복용한 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 씨 측의 설명처럼 최근 해당 약을 다시 복용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증상에 따른 정확한 양이 아닌 그보다 더 많은 양의 약을 복용하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결국 핵심 의혹은 왜 심 씨가 최근 다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겨워하고 있는 지입니다. 약물치료 없이 의지와 노력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스스로 극복이 가능했던 질환이 최근 들어 다시 심각해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응급실까지 갔다는 얘기는 결국 최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말이 좋아 ‘심은하 전문 기자’일 뿐입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영화 <인터뷰>가 개봉할 즈음 수습이었던 기자는 본래 심은하 열성 팬이었던 터라 연예부 기자가 된 만큼 꼭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지만 얼마 안 돼 은퇴를 선언해 버렸습니다. 이후 허접한 컴백설 기사나 쓰고 그의 집 앞에서 잠복하가 스포츠 센터에 운동하는 일상을 포착해 나름 단독이라고 보도하던 ‘은퇴한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침해하던’, 그런 기자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결혼 준비 과정을 포착해 결혼 특종을 보도한 게 전부이죠.
사실 심은하 전문기자라 불리던 분들은 따로 있습니다. 일요신문 연예부의 레전드인 백미정 기자를 비롯해 90년대 후반부터 은퇴 시점까지 다양한 취재를 해온 선배 기자 분들이 있는데 대부분 지금은 현직을 떠났습니다. 은퇴 선언이 된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여성지 선배 기자분도 ‘심은하 전문기자’셨는데 그 분은 다른 사건에 연루돼 역시 연예계를 떠나셨습니다. 심 씨가 은퇴한 이후 억지로 ‘심은하 전문기자’가 된 기자는 사실 그를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진짜 전문기자인 선배 기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심 씨가 과연 컴백하느냐’ 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부분의 선배들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답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톱스타였지만 대중 앞에 서는 걸 정신적으로 힘겨워 하고 있어 다시 연예계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길 자주 들었습니다. 이번 응급실 행을 거치며 아무래도 심 씨가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던 그 이유가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심 씨는 연예계를 떠나 정치인의 부인이 된 뒤에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시절에도 그랬으며 지난 번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선거를 하는 모습, 개표 방송을 보며 당선의 기쁨을 함께 하는 모습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결혼 이후에는 늘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지 의원의 부인과 가정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게 느끼곤 했습니다. 몰래 잠복하고 미행하며 그들의 모습을 엿본 경험이 많은 터라 자신 있게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소동을 겪으며 떠돌고 있는 부부 관계에 대한 각종 루머는 대부분이 사실무근이라고, 적어도 기자는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심 씨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거치며 과거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약물치료 없이 스스로 이겨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재발했고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당대표에 출마하는 등 과감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던 지 의원은 아픈 아내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부디 심 씨가 다시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잘 이겨내길 바라며 지 의원도 올곧게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이어나가길 기원합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