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정몽구 현대차 회장,김승연 한화 회장 | ||
재벌총수들의 회사 지키기는 일단 지분 확보가 출발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재벌총수들의 주식 매입방식이 평소 당사자들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20대 그룹 오너 중 올해 회사 지분율을 가장 많이 끌어올린 사람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말 그룹 지분은 12.86%였다.
그러나 그는 이후 꾸준히 주식을 사들여 현재 지분이 22.67%로 급상승했다. 8개월 사이에 지분을 10%가량 늘린 것이다.
그의 지분확보 행태는 ‘화끈한 장대비형’으로 평가된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주)한화 주식 12.86%(9백69만8천8백59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세 차례 주식을 거래해 지분을 10%가량 끌어올렸다. 주식 거래를 한 번 할 때마다 2백만 주 이상을 사들인 셈이다. 이 같은 거래에는 계열사의 지원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이 처음으로 주식을 대거 사들인 날은 지난 4월22일. 이날 한화유통은 한화 주식 2백50만 주를 시장에 내놓았고, 김 회장은 이 주식을 고스란히 사들였다. 이는 전체 지분의 3.31%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 거래로 김 회장의 지분은 16.17%(1천2백19만8천8백59주)로 늘어났다.
김 회장의 주식 사재기는 이 거래가 있은 지 석 달 뒤에 또 있었다. 지난 7월15일 한화유통은 주식 2백만 주를 시장에 내놨고, 김 회장은 또 이를 모두 사들여 전체 지분을 18.82%(1천4백19만8천8백59주)로 끌어올렸다.
김 회장의 마지막 베팅이 있었던 날은 지난 9월1일. 이날 한화유통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화주식 2백91만9천90주를 시장에 내놓았고, 김 회장은 이 주식을 전부 사들였다. 그 결과 김 회장은 한화지분 22.67%(1천7백11만7천9백49주)를 보유하게 됐다.
김 회장은 매번 수백만 주의 주식을 거래했다는 점에서 평소 그의 ‘통큰 성격’을 반영한 것으로 주식시장에서는 평가한다.
김승연 회장과는 반대로 박용만 두산그룹 사장은 ‘가랑비형’으로 분류된다.
박 사장은 지난 7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회사 주식을 끊임없이 사들여 데이트레이더(매일 주식거래를 하는 사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가 한 달 동안 주식을 거래한 횟수는 15회. 당시 그는 하루 50주를 사들인 날도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 거래를 통해 박 사장의 (주)두산 지분은 연초 1.4%(38만2천2백86주)에서 3%까지 올라갔다.
그가 (주)두산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14일부터. 박 사장은 이날 장내에서 8만9천3백20주를 사들였고, 이어 이튿날인 15일에는 2만1백80주, 16일에는 6천8백60주, 18일에는 3만2천8백80주를 꾸준히 사들였다.
그의 주식 사재기 행진은 지난 7월21일부터 일주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7월29일 1만5천6백40주를, 31일에는 달랑 50주를 장내에서 사들였고, 지난 8월4일에는 2만7천1백50주, 5일에는 6만3백10주, 6일에는 8백80주를 매입했다.
박 사장은 이런 식으로 무려 열다섯 차례에 걸쳐 회사 주식을 사들여 자신의 지분을 3.1%까지 높였다. 현재 그는 박용곤 회장에 이어 대주주 서열 2위.
이웅렬 코오롱 그룹 회장의 경우는 ‘소나기형’으로 분류된다. 일정시점에 반짝 주식을 사다가 갑자기 중단하기 때문. 그러다 일정기간이 지난 뒤에 다시 집중적으로 주식을 사들인다.
이 회장은 올 초부터 지난 10월 말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회사 주식을 사들여 순식간에 자신의 개인 지분을 3%가량 끌어올렸다. 그렇지만 현재는 더 이상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을 기준으로 이 회장은 코오롱 지분 10.57%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그의 지분율은 13.47%.
이 회장의 주식 매입은 지난 5월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그는 지난 5월14일 장내에서 주식 14만9천90주(0.73%)를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에는 20만2천6백 주(0.99%), 16일에는 9만4백20주(0.44%)를 사들였다. 그 다음주인 월요일(5월19일)에도 그는 장내에서 9만2천7백40주를 사들였고, 열흘 뒤인 5월29일에는 6만 주를 사들였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그의 주식매입 스타일을 한 해 두세 차례 주식을 반짝 사들이는 ‘스팟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주식매입 스타일은 ‘집중호우형’으로 불리고 있다. 그의 주식매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같이 분류되고 있는 것.
정 회장의 경우는 지난 7월 말까지 현대차 주식 8백94만3천8백59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분율은 3.14%.
그러나 그는 지난 8월27일 장외에서 70만 주를 사들이며 지분율을 0.2% 끌어올렸다. 이후 정 회장은 거래는 뜸했지만, 지난달 연속 사흘 내내 주식을 사들여 자신의 지분을 3.39%에서 4.01%로 급상승시켰다. 세부적으로는 지난달 27일 장내에서 91만 주, 28일 41만 주, 29일 43만2천 주를 각각 사들였다.
이밖에도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 워낙 주식거래가 없어 ‘잠복형’으로 불리고 있으며,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주로 장외에서 거래를 해 ‘눈치형’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일부 재벌총수의 주식거래 행태에 대해 별칭이 붙는 이유는 올 들어 유난히 재벌총수들의 주식거래가 많기 때문. 대부분 지분확보 차원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증권전문가들은 “올 들어 외국계 회사들이 대거 국내 우량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된 기업체 오너들이 경영권 안정 차원에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