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가운데)과 관계자들이 지난 19일 현대상선 사옥 대회의실에서 사실상 ‘KCC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검정색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회견장을 찾은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시숙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두고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상황을 의식한 듯했다. 그가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를 위해 1천만 주의 신주를 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숙 정상영 명예회장의 M&A 공세를 막겠다는 의지였다. 이 같은 내용의 발표문을 읽어내려가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현정은. 그는 잘 알려진 대로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다섯째 며느리이자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정 회장이 작고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9월 현 회장이 현대그룹의 새로운 경영자로 부상하기 시작했을 때 그룹 안팎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과연 그가 표류하고 있는 현대호의 조타수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결단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며느리들 중 드물게 국내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고, 또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한 번 석사를 받았을 정도로 학구적이었다. 그는 또 그동안 보이지 않게 각종 여성단체를 통해 나름대로 사회활동을 해왔다.
그가 이렇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현대가 며느리들 중 유일한 재벌가의 딸이란 점도 작용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사돈을 보면 정·재계 유력인사 집안과 맺은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섯째 아들인 정몽준 회장의 부인 김영명씨가 유력 정계인사인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이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유일하다.
현 회장의 집안을 보면 외할아버지인 고 김용주 회장은 전방그룹의 창업주이고, 현 회장의 아버지는 현대상선 회장을 지냈던 현영원씨다. 어머니인 김문희씨도 현재 용문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부친인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은 현대상선 고문을 거쳐 지난 2000년 3월 현대상선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현대그룹과 사돈을 맺은 후 당시 직접 운영했던 신한상선을 현대상선에 흡수시켰다. 또 김창성 경제인총연합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현 회장의 외삼촌이다.
특히 현 회장의 외가인 전방그룹은 지난 30년 설립된 기업으로 60년대에 들어서는 메리야스, 양말용품 등에 이용되는 원사와 청바지 등 각종 의류용 직물을 생산하는 대형 면방업체였다.
대학 시절 현 회장을 지도한 이동원 사회학과 교수는 현 회장에 대해 “눈빛이 살아있는 학생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다음은 이 교수가 전하는 현 회장의 학창시절 에피소드.
“현 회장이 1학년 때부터 내 수업을 들었다. 나는 당시 사회심리학, 사회조사론, 가족론 등에 관해 강의하고 있었다. 현 회장이 내 수업을 대부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 회장이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엔 그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무척 평범한 학생이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루는 수업을 하던 중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어떤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너무 밝아서 오히려 내가 대체 저 학생이 누굴까 궁금해했을 정도였다. 그 후 그 학생을 눈여겨보게 됐다. 바로 현정은 회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 회장은 리포트도 단연 눈에 띄었다. 내용이 충실하고, 항상 과제물들을 제 시간에 맞춰내는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현 회장은 학창 시절 재벌가의 자제이면서도 이를 전혀 티내지 않아 동기생들조차 처음에는 그의 집안에 대해 모를 정도였다. 그런 그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정몽헌 회장과의 결혼을 즈음해서였다. 당시 그의 집안은 현대그룹과 사돈을 맺으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 76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그해 여름 고 정몽헌 회장과 결혼을 했던 것.
이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내내 “저 학생은 공부를 계속 하기만 한다면 학계에 길이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현 회장은 결혼 후 공부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듬 해에 첫 딸 지이씨를 출산한 뒤에도 대학원을 다녔고, 석사과정을 거치고 나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저지에 있는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다시 한 번 석사과정을 밟았다.
현대가 관계자에 따르면 현 회장이 이처럼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데는 모친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의 모친 김문희씨는 용문학원 이사장이자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로, 지금도 현 회장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김문희씨 역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각종 학계, 여성단체 등에서 아직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 김씨는 사위인 정몽헌 회장이 작고한 뒤 사재를 털어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방어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현 회장의 사회활동은 그의 이력에서도 잘 엿보인다. 대학여학사협회 재정분과 위원, 걸스카웃연맹 중앙본부 이사, 홍보출판분과위원회,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이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직함이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집안에서 동기들과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생전에는 청운동 자택에서 자주 동기간에 어울렸지만, 그 이후에는 거의 왕래가 없었을 정도였다는 것. 게다가 일부 동기들과는 나이 차이도 커 사적인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동원 교수는 정몽헌 회장 장례식장에서 현 회장이 전한 얘기를 소개했다.
“남편(고 정 회장)은 종종 ‘사람이 50년을 산들, 1백년을 산들 무슨 차이가 있나,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있게 사는 걸까’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무심코 넘겼는데, 아내로서 남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가 왜 주먹을 불끈 쥐고 남편의 사업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