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취득일 무기한 연기 ‘인수 의지 있나’ 의구심…지원군 미래에셋 재무상황도 변수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HDC 현대산업개발이 위치한 용산아이파크몰. 사진=이종현 기자
현산은 지난 4월 29일 정정공시를 통해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주식인 구주 취득일을 같은 달 30일에서 구주 매매계약 제5조에서 정한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달리 거래종결일로 합의하는 날로 변경했다.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로 발생하는 주식인 신주는 신주 인수계약 제4조에서 정한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의 다음날 또는 당사자들이 별도로 거래종결일로 합의하는 날의 다음 날로 정했다.
변경한 공시 내용은 주식 취득일을 특정하지 않고 기업결합심사나 유상증자 등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뜻이다. 선행조건 중 하나인 해외 6개국에 대한 기업결합심사는 현재 미국과 중국 등 5개국의 승인이 떨어졌고, 러시아 1곳만 남았다.
#현산 컨소시엄, 꽃놀이패 쥐었다?
현산 관계자는 “정정공시를 한 이유는 기존 공시에서 주식취득일로 기재했던 4월 30일이라는 기한이 넘었기 때문”이라며 “이 밖에 인수 관련 질문은 사안이 예민해 답변하기 힘들다”고 했다. 현산은 2019년 말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올해 4월 30일까지 주식취득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공시한 바 있다.
현산의 인수 연기는 이번이 3번째다. 지난 4월 초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를 연기하고 같은 달 하순 회사채 발행 계획도 중단한 데 이어 최근 주식 취득예정일까지 무기한 미루면서, 인수전이 오리무중에 빠졌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아시아나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항공업황이 불투명해지면서 계획이 틀어졌다는 분석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M&A(인수·합병)는 인수가격 조정과 경영 쇄신 등 조건을 제시하는 협상 과정을 수반한다”며 “코로나19로 그 과정이 길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지속적인 연기 이유로는 딜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꾸준히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를 비롯한 모든 항공업계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급할 것 없는 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 추가적인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용식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아시아나·채권단과 줄다리기 싸움에서 현산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했다”고 봤다. 황 교수는 또 “인수 후 부채를 감내하기보단 안 하는 것이 나아 보일 수 있어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위축된 시장 내 살아남은 항공사가 차지할 수 있는 파이가 크다. 앞으로 폭발적인 여행·항공 수요를 고려하면 포기하고 싶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인수를 결정한 때보다 상황이 나빠진 만큼 처음 제시한 인수가와 조건으론 손해라고 보고 적극 협상하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업계에서는 채권단이 투자한 아시아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대출금 상환 연장, 금리인하, 구조조정 등을 현산이 비공식적으로 요청했을 것으로 본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단기적으로 별다른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며 “산은이 2019년 인수한 영구채 5000억 원을 출자전환하면 아시아나의 이자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황 교수도 “아시아나의 인력 감축과 사업부 매각 등 재무구조 개선안, 인수가격 인하 등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계속해서 연기하면서 인수 무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가 멈춰서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머뭇거리는 현산, 인수 의지 남았나
현산이 제시한 조건을 산은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인수가 무산될 수 있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린다. KDB산업은행이 아시아나에 최근 1조 7000억 원 지원을 약속하면서 현산의 인수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으나 현산이 여전히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데다 최근 정정공시를 통해 무기한 연기하면서 인수 의지가 남았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세계 항공업계 불황이 장기화하고 여행의 패턴이 바뀐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현산도 이를 모니터링하고 있을 것”이라며 “지금 인수하면 고전하겠다는 판단에 자신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시아나에 물려 있는 건 산은이며 정몽규 회장은 발 빼면 그만이다. 이미 납부한 인수금액의 10%인 계약금 2500억 원도 아시아나 우발채무가 자꾸 나왔기에 다 손해 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대우조선해양처럼 정부가 떠안고 가는 형국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고운 연구원도 “언제까지 주식 취득이 가능하겠다는 목표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것을 보면 산은과 협상에서 막판 조건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직도 큰 듯하다”며 “산은이 양보하지 않는다면 인수전에서 발을 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한두 달 전까진 인수 의지가 있으나 좋은 조건을 얻어내려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판세가 역전돼 인수를 재검토하는 분위기”라며 “산은 입장에선 급하다 보니 아직까지 협상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미래에셋의 상황도 변수다. 미국 내 15개 고급호텔을 인수하려던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하면서 지난 4월 매도인인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인수를 마무리하라는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최 연구원은 “미래에셋대우가 그만큼 돈이 없다는 것으로 설명된다”며 “더 크게 보면 아시아나 인수전에 참여한 명분이 호텔 사업을 키우면 시너지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호텔을 포기한 만큼 항공도 포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했다.
황용식 교수는 “현산은 의지가 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자 후원자인 미래에셋의 경우 자금 여건이 좋지 않고 재무적인 마인드가 강하다 보니 인수에 부정적일 수 있다”며 “조건 협의 과정과 미래에셋의 스탠스, 코로나19 리스크가 인수의 향방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