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재건 ‘실탄’ 아시아나 구주 매각 대금 못 받아…산은 차입금 만기 연장으로 급한 불은 꺼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지연되는 가운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난 4월 25일 만기였던 산업은행 차입금 1300억 원의 만기를 연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18년 7월 4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내식 대란’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임준선기자
#여유부리는 현산, 지원으로 압박한 산은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아시아나IDT, 에어부산 등 7개 계열사를 통으로 넘기며 그룹 규모가 재계순위 60위권 밖으로 축소됐다. 아시아나항공 구주 매각 대금 3200억 원으로 그룹 재건에 나설 예정이지만 아직 대금을 손에 쥐지 못해 지난 4월 25일 만기였던 산업은행 차입금마저 갚지 못했다.
HDC현산의 인수작업 지연은 지난 3월 27일 아시아나항공 공시를 통해 확인됐다. 아시아나항공은 공시를 통해 4월 7일이던 납입일을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로 정정했다. 미국, 중국 등 해외 5개국에서 기업결합이 승인된 가운데 HDC현산의 인수가 지연되자 시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HDC현산이 2500억 원의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인수를 철회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케이프증권은 지난 4월 23일 HDC현산에 대해 “전년과 매우 달라진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기업가지 제고를 위한 기업의 현명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HDC현산이 아시아나 인수를 재검토할 가능성을 점친 셈이다.
이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형항공사 금융지원에 나섰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각각 1조 2000억 원과 1조 7000억 원을 지원할 것을 밝혔다. 또 아시아나항공 M&A(인수·합병)와 관련해서는 “인수자인 HDC현대산업개발이 기업결합승인 절차 등을 완료하고 정상적으로 M&A를 종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은의 이번 자금 지원은 정부가 나서 인수 지연 명분을 없애는 동시에 인수를 신속히 마무리하라는 신호로 읽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산은이 시기적절하게 지원을 밝힌 것은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촉구하는 의미로 보인다”며 “금호그룹이나 산은 입장에서 HDC현산이 발을 빼면 다른 대안이 없고, HDC현산 또한 이제 와 인수를 접으면 금호그룹이나 아시아나항공 경영악화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HDC현산은 인수 계획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시간은 HDC현산의 편이다. HDC현산은 지난 4월 29일 공시를 통해 4월 30일 예정돼 있던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일자를 또 한 번 변경했다. 정정사유는 ‘선행조건 충족 여부’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승인을 신청한 6개국 가운데 러시아 한 곳의 승인만 남겨두고 있다.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 상황을 잘 아는 한 재계 관계자는 “HDC현산은 올해 안에 인수를 완료하기만 하면 된다. 산은의 이번 지원 자체도 HDC현산의 인수를 전제로 진행된 만큼 인수 여부에 대한 재검토를 한다기보다는, 잔금을 납입하고 본격적으로 인수에 들어가는 시기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빠르면 6월 늦으면 하반기를 염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1300억 원에 지배구조 흔들리는 금호
HDC현산이 시간적 여유를 갖고 고심하는 반면, 인수 대금을 손에 넣지 못한 금호그룹은 하루가 급하다. 금호그룹은 지난 4월 25일 만기였던 차입금 1300억 원을 갚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지난 4월 28일 통화에서 “지난 25일 차입금 만기였던 것이 맞다”면서도 “빌린 입장에서 산은의 선택을 따를 뿐, 만기 연장 등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내놓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번에 만기가 도래한 차입금은 산은 등 채권단이 2019년 4월 아시아나항공에 1조 6000억 원 규모를 지원하고 연내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호고속에 지원한 자금이다. 당시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M&A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고속에 대해 브리지론(단기자금 대출) 형태로 13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금호고속 부채로 인해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호고속은 2018년 4월 금호산업 보유 지분 전량을 담보로 1300억 원을 차입, 이후 리파이낸싱(재융자)했으나 2019년 4월 만기 도래 때도 이를 갚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금호고속에 1300억 원을 지원해 이를 메우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금호그룹의 지배구조가 ‘박삼구 회장→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만큼 금호고속이 차입금을 갚지 못해 금호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잃게 될 경우, 아시아나항공 매각 계획이 모두 흐트러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다만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지난해 12월 4일 기자간담회에서 금호고속 대출 연장에 대해 “정책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절차적으로 자격이 있으면 연장되는 것”이라며 금호그룹 지원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수차례 혈세를 투입해 ‘퍼주기식’ 지원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던 때다.
그러나 산은은 이번에도 해당 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만기 연장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시장에서는 산은이 차입금 만기를 연장하는 조건으로 금호그룹의 구주 가격을 낮춰 HDC현산을 지원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산은 관계자는 “금호고속 차입금에 대한 만기를 연장했다”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금호그룹 솟아날 구멍 없나
금호그룹은 산은의 만기 연장으로 당장 급한 불을 끄게 됐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지난해 기준 금호고속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19억 원에 불과하다. 유스퀘어를 비롯해 목포터미널·대전터미널 등 자산 또한 채권 담보로 잡혀있다. 유동화 가능한 자산이 마땅치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에 금호고속 여객마저 감소했다. 금호고속에 따르면 금호고속의 지난 2월 버스 이용객은 112만 5000명으로 전년(216만 1000명) 대비 48%가량 줄었다. 지난 3월 1일부터 15일까지 이용객도 전년 동기 대비 65%가량 줄었다.
금호그룹이 믿을 구석은 최근 호조세를 보이는 건설 계열사 금호산업뿐이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매출 성장세를 보인데다, 오는 5월 대구와 전북 군산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예정이다. 금호그룹 또한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을 떠나보내며 금호산업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 실적을 개선해 그룹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금호산업의 주택사업 순항이 금호그룹의 위기 타개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금호산업 상황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호건설이 부도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있었다”며 “아시아나항공 매각 대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금호그룹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금호그룹 관계자 또한 “금호산업이 성장세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시기에 건설부문은 상대적으로 하락이 더뎌 상황이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금호산업 중심의 사업 개편이나 그룹 재건 등을 언급하기에는 섣부른 것 같다. 아시아나 매각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