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자금과 관련, 최근 전격 압수수색을 당한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왼쪽)은 각종 인맥을 통해 위기를 넘고 성장을 이뤄왔다. 3공시절 롯데백화점은 ‘쇼핑센터’로 이름을 바꿔 허가를 얻기도 했다. | ||
롯데 신격호 회장이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검찰수사가 본격 시작된 지난 10월부터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신 회장은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일을 보고, 짝수달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챙겼다. 관례에 따르면 그는 지난 11월 국내에 들어왔어야 했다. 하지만 불법 대선자금 제공 파문이 불거진 이후 신 회장은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채 일본에서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여러 군데에 사업장이 있으니 여러모로 좋다”며 수군대고 있다. 그러나 지난 12월5일 검찰이 롯데그룹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음지에 숨어 있던 신 회장과 롯데의 비자금 내역이 들통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사실 신 회장은 일본과 한국에 사업장을 두고 정치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줄타기를 해왔다. 그러나 현재 검찰의 태도로 보아 신 회장과 롯데의 비밀장부는 더이상 베일속에 머무를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롯데의 비밀이 한꺼풀씩 벗겨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그동안 신격호 회장이 어떤 정·관계 인맥을 통해 사업을 해왔는지 알아본다.
일본 롯데로 사업인생을 시작한 신 회장의 국내 정·관계 인맥의 뿌리는 3공화국부터 시작된다. 일본 롯데의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 회장이 국내에 ‘신격호’란 이름으로 진출한 시기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앙일보>에 연재된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나의 서울 만들기’라는 회고록을 보면 신 회장의 국내 사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지난 73년 10월 어느날 도시계획국장이던 나(손정목)는 양택식 시장과 함께 총리실로 불려가 “호텔롯데 건설에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김종필 총리의 지시를 받았다. 김 총리는 신격호씨가 서울에 호텔을 짓는 건 일본에서 모은 재산을 모국에 들여오는 것과 같으므로 단순히 한 기업을 지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롯데는 을지로1가 반도호텔 일대에 최고층 호텔을 짓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절차를 마치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기만 하면 되도록 손을 썼던 것.
손씨는 “74년 6월 반도호텔에 대한 공개 매각 입찰이 실시됐다. 말이 공매 입찰이지 사실상 정부 지원을 받은 롯데의 단독응찰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롯데에 대한 특혜는 일본에서 들여온 자금에 대해 취득세와 물품 수입에 따른 관세 면제 등 세제 특혜가 뒤따랐다. 특히 백화점 건립이 불가능했던 사대문 안에 롯데백화점이 들어선 것은 특혜의 결정판이었다.
▲ (왼쪽부터)유창순씨, 노신영씨 | ||
공식적으로 신 회장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3공화국 인물로는 유창순 전경련 명예회장을 들 수 있다. 유 명예회장은 지난 63년 박 정권 시절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뒤 당시 장관 출신으론 파격적으로 롯데제과 회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롯데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82년 국무총리를 지낸 뒤에 85년부터 롯데제과 고문, 89년부터는 호남석유화학 회장을 지내고 있다.
롯데의 5·6공 출신 인맥으론 80년대에 외무부 장관, 안기부장, 국무총리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노신영 전 총리를 들 수 있다. 노 전총리는 지난 94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계속 롯데 일을 봐주고 있다.
6공의 뒤를 이은 YS집권 시절에는 YS의 친인척이 롯데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98년 만년야당이던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롯데의 운명도 바뀌게 됐다. 호남 출신인 김대중 대통령과, 울산 출신인 데다 서울과 부산을 양포스트로 활용했던 신 회장의 배경은 너무 달랐다.
하지만 일각에선 다른 얘기도 나오고 있다. 재계의 속성상 재벌그룹이 여야 정치구도에서 한쪽만 지원할 수는 없었다는 것. 신 회장이 80년대 DJ 캠프였던 평민당의 후원자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DJ와 신 회장의 관계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한때 DJ 주위에서 활동했던 한 정치인은 “DJ 집권 초기 제2 롯데월드 부지 문제 등 YS 시절부터 누적돼온 롯데의 문제가 터질 기미를 보이자 신 회장이 일본 인맥을 움직여 나카소네 전 총리를 초청했다. 나카소네가 DJ를 예방하고 나서 롯데 문제는 순조롭게 풀렸다”고 전했다. DJ와 나카소네의 만남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신 회장의 일본 정계 인맥이 ‘건국 후 최초의 정권 교체’라는 초유의 정치상황에서 롯데를 지켜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
▲ 신동빈 부회장 | ||
재미있는 점은 신 회장의 정치인 영입이 6공 이후 중단됐다는 점이다. 유창순 명예회장이나 노신영 전 총리는 모두 정권이 바뀐 직후에 롯데에 영입됐다. 신 회장은 이들을 계열사 회장이나 자신이 벌이는 공익사업의 책임자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정치권과의 연결통로를 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YS정권 직후나, DJ정권 직후에는 영입된 인사들이 없다. 돈가스집의 예에서 보듯 DJ 시절 신 회장은 직접적인 인사 영입보다는 간접적인 ‘후원’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롯데 계열사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한 고위임원은 DJ와 관련된 한 단체의 후견인 노릇을 하기도 했다.
신 회장의 고향이 울산이고, 국내사업장 양대 포스트가 서울과 부산인 롯데그룹에게는 부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번 노무현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낯설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민주당 계열의 정권이 10년간 지속된다는 점, 신 회장이 이미 82세의 고령으로 후계구도를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입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세가 경영자로 자리잡을 때까지 정치바람을 막아줄 ‘병풍’을 찾아야 할 입장이다.
실제로 삼성그룹도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게서 2세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당시인 87년도에, 경상도 출신 경제관료의 대부라고 불렸던 신현확 전 총리와 김만제 전 총리를 영입했다.
특히 한국 롯데의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한 신동빈 부회장(49)의 경우 지난 97년 한국 롯데 부회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주로 일본에서 생활했던 터라 ‘연’을 특히나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편이다. 때문에 롯데는 신 부회장의 뒤를 받쳐줄 전직 고위관료나 정치인의 필요성이 다른 어느 그룹보다 더 큰 것.
롯데는 현금 부자인 데다 계열사 중 상장사는 롯데제과와 롯데칠성 등 5개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주회사격인 롯데백화점이나 부산롯데호텔 등은 거의 신 회장 일가의 개인회사에 다름없다. 2세 지분승계 과정이 다른 그룹보다 수월한 편인 것.
하지만 신동빈 부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의 회장이 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이전 신격호 회장의 한국 네트워크가 쌓이는 데는 박정희 대통령 등 3공화국의 전적인 지지와 그 뒤를 이은 5·6공의 정계·관계 인맥의 협조가 있었다.
한국사회에 ‘이식’된 지 5년여밖에 안된 신동빈 부회장은 다르다. 롯데의 정·관계 네트워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선자금 수사가 DJ정부 이후 새로운 정치지형도에 적응해간 롯데의 정계 네트워크 실상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