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거래종결 압박에 현산 ‘원점 재검토’ 요구…아시아나 몸값 재협상이 최대 쟁점
아시아나항공 매각 협상을 두고 HDC현대산업개발과 채권단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과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재협상에 돌입했다. 현산은 지난해 금호산업과 2조 5000억 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아시아나항공의 미심쩍은 회계처리 정황까지 속속 발견되면서 매각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었다.
현산과 채권단의 기싸움도 본격화됐다. 현산은 좀처럼 인수에 속도를 내지 않았고, 채권단은 명확한 의사를 밝히라고 채근했다. 그러다 지난 5월 29일, 채권단이 포문을 열었다. “6월 27일까지 인수 의사를 밝혀야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앞서 현산과 금호산업은 거래종결 시한을 ‘계약일로부터 6개월 내’라고 설정했다. 계약체결일이 지난해 12월 27일이라 계약은 오는 6월 27일까지였다. 채권단의 내용증명은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던 셈이다.
현산은 열흘 만인 지난 6월 9일 답변을 내놨다. 보도자료를 내고 “인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인수를 확정하기 위한 조건’을 붙였다. 계약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채권단에 공을 넘긴 모양새가 됐는데, 이 보도자료는 채권단과 사전 협의 없이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채권단은 하루가 지난 6월 10일 입장문을 내고 현산의 답변을 일단 환영했다. 그러나 넘겨받은 공을 다시 현산을 향해 받아쳤다. “그동안 현산의 인수 여부에 시장의 다양한 억측이 있었다”면서도 “늦었지만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밝힌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현산이 밝힌 ‘인수를 확정하기 위한 제시조건’은 이해관계자 간 많은 협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서면을 통해서만 진행하자는 의견에는 자칫 진정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며 “먼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협상 테이블로 직접 나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달라”고 밝혔다.
채권단이 재협상 요구를 수용한 만큼 양측은 새로운 협상 카드를 꺼내들고 테이블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오는 6월 27일이던 아시아나 인수 거래 종료 시점도 6개월 뒤인 12월 27일로 연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협상의 최대 쟁점은 아시아나항공의 몸값이다. 현산은 가격을 대폭 깎으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채권단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항공업계 위기에 공감하면서도 인수가와 핵심 조건 등에 대한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있는 용산아이파크몰. 사진=이종현 기자
그러나 현산은 앞서의 보도자료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재무 상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계약 체결 당시와 달리 지난해 말 2조 8000억 원의 부채가 새롭게 파악된 데다, 채권단의 1조 7000억 원 긴급 차입으로 부채가 4조 5000억 원 늘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6281%로 지난해 말 1386%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현산은 또 2019년 감사보고서(지난 3월 공시)에서 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놔 계약 기준이 됐던 재무제표의 신뢰성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현산 측이 몸값을 낮추기 위해 일단 금호산업으로부터 아시아나 주식(구주)을 사는 대가로 지급할 대금 3228억 원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현산은 지난해 계약 당시 금호고속이 가진 아시아나 주식 6868만 8063주(지분율 30.77%)를 주당 4700원에 사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 주가가 급락했다. 또 구주 대금은 아시아나 경영 정상화가 아닌 금호그룹 측에 들어가는 돈이라 줄일수록 유리하다. 업계에선 구주 대금을 최대 절반까지 인하해달라는 요구가 나올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만 구주 가격은 채권단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기 어렵다. 금호고속은 구주 대금으로 그룹을 재건하고, 산업은행에서 빌린 1300억 원을 상환할 계획이다. 채권단이 현산의 요구를 받아들여 계약 당사자인 금호 측을 설득할 순 있겠지만, 금호 측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현산 측이 2조 5000억 원의 전체 인수가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구주 매입 대금이 깎이면 총액도 줄겠지만 이를 넘어서는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영구채 5000억 원의 주식 전환도 쟁점 중 하나다. 당초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영구채 인수 형식으로 5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조치인데, 주식 전환이 이뤄지면 채권단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이 늘어난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그 밖에 현산이 인수와 함께 갚기로 한 대출금 만기 연장 등의 조건 변경 문제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여러 쟁점 가운데 대출금 만기 연장은 그나마 합의점을 찾기 쉬운 안건으로 평가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만약 재협상이 틀어질 경우 현산이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현산의 보도자료 속 원점 재검토 요구의 ‘근거’가 상세히 적혀 있는 만큼 인수 포기를 위한 퇴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산이 인수를 포기하면 재매각 주도권은 채권단이 가져간다.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금호그룹 전체가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주사인 금호고속부터 산업은행에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매각 협상이 틀어지면 추가적 자금 투입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후 재매각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