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대권 분리 더욱 강화 움직임에 이낙연 측 반발…대통령 레임덕 우려에 친문계 차기주자 없다는 고민도
이낙연 의원이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협회 언론인 출신 21대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4월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이낙연 의원은 고민에 빠졌다. 8월 전대 출마 여부를 놓고서였다. 이 의원 주변에서 대선 직행을 권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 대표로서의 리스크를 줄이고, 대권 레이스에 집중하자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의원은 ‘문재인 케이스’를 선택했다. 문 대통령이 당 안팎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5년 2월 전대에 출마해 당 대표로 선출된 뒤, 대권까지 거머쥐었던 사례를 떠올렸던 것이다.
정가에서는 차기 주자로서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내 기반이 약한 이 의원으로선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받아들였다. 177석 공룡 여당 대표로서 세를 최대한 불리는 게 대권 도전에도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도 이 의원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당 일각에서 유력 주자인 이 의원 ‘추대론’이 불거졌고, 당권과 대권 분리 규정(당헌 25조)을 고쳐 대선 1년 전 당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 유력 주자인 이 의원에게 ‘꽃길’을 깔아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8월 전대가 대선 전초전 양상을 나타내면서 이 의원 견제 기류가 강해졌다. 당헌 25조 규정을 근거로 이 의원 불출마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이 때부터다. 8월 당 대표직에 오르더라도 대선에 나가기 위해선 2021년 3월경 사퇴해야 하는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민주당 한 친문계 의원은 “국민들이 준 압도적 과반으로 문재인 정부 개혁을 완수해야 하고, 다음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데 7개월가량 임시 대표를 뽑는 것은 소모적”이라면서 “내년 4월 부산시장 등을 뽑는 재·보궐 선거도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의원과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잠룡들도 대립각을 세웠다. 김부겸 전 의원은 당 대표가 될 경우 2년 임기를 채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대에서 승리하면 대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6월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헌·당규에 따라 처리할 문제”라면서 이 의원 전대 불출마론에 불을 지폈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홍영표 의원도 “(내년) 3월 당 대표를 그만두고 4월에 재·보궐 선거를 해야 하면 과연 누가 이걸 준비하고 선거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당 운영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며 이의원을 겨냥했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둘러싸고 ‘이낙연 vs 반이낙연’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셈인데, 여기엔 친문 진영 물밑에서 흐르는 이 의원 견제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4월 총선이 끝난 뒤 이 의원 세가 급격히 늘어날 조짐을 보이자 친문 쪽 긴장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 의원에게 힘이 쏠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이 의원 전대 불출마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여권 주류이자 최대 계파인 친문계의 이런 분위기는 다른 잠룡들에게도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친문과 이들 간 계산법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김부겸 전 의원. 사진=박정훈 기자
더좋은미래(더미래)발 ‘연판장설’은 이 의원 전대 불출마론에 불을 지폈다. 더미래는 계파를 망라한 50여 명 의원들이 속해 있는 당 내 최대 모임이다. 더미래 복수 의원이 민주당 중진 의원들과 함께 이 의원 불출마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빠르게 퍼졌다. 더미래 소속의 한 의원은 “최근 회의에서 비슷한 얘기가 나온 것은 맞다”면서도 “이 의원을 ‘콕’ 집은 것은 아니었다. 당 대표 임기, 차기 구도 조기 과열 등을 우려해 대선주자들의 출마가 과연 적절한지 머리를 맞대보자는 뜻이었다”고 귀띔했다.
이 의원 측은 발끈했다. 이 의원계로 통하는 한 의원은 “당헌에 적힌 대로 하겠다는 것뿐이다. 대선주자는 당권에 도전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어디에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당 요구대로 총선에 출마, 대승을 이끌었던 이 의원에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는 것은 해당행위”라고 했다. 그는 “당 유력 대선주자 앞길을 막는 것은 민주당 특정 세력의 오만이자 자충수”라고 덧붙였다. 이낙연 의원 역시 더미래 회장 진선미 의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 일부에게 서운한 감정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정가에선 이 의원 측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속사정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단순한 견제 차원을 넘은 친문 진영의 공세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 의원의 한 최측근 인사는 “연판장 운운하는 의원들 뒤에 친문으로 분류되는 한 다선 의원이 있다고 파악됐다. 그에게 우회적으로 항의성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친문계가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의원 전대 출마를 막으려 하는 것 같다. 대권을 위한 본격적인 내부 권력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친문 진영에선 ‘더미래 연판장’의 배후로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면서도 이낙연 전대 불출마론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사안 아니냐는 입장이 주를 이룬다. 한발 더 나아가 핵심 친문 몇몇은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보다 강화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 대표가 특별한 사유 없이 임기 도중 물러나는 일을 아예 규정으로 막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선거 출마는 ‘특별한 사유’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논의까지 오갔다. 당헌이 이렇게 바뀌게 되면 2022년 대선에 뜻을 두고 있는 잠룡들로선 당 대표 도전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친문 핵심 그룹인 ‘부엉이 모임’ 소속이기도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 당에서 당권-대권 공방이 벌어진 후 친문계 의원 10여 명이 모여 이 문제를 상의했다. 결론은 당헌의 취지를 되새겨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차기주자가 당권까지 갖게 될 경우 이를 대권 행보에 활용하거나, 당 내 줄서기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만들어진 당헌이었다. 또 이런 저런 사정으로 대표가 그만두면 ‘책임 정치’가 구현되기 어렵고,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2년간의 임기를 지켜주는 쪽으로 당헌 개정을 추진할 생각이다. 많은 의원들이 여기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의원 측은 친문 진영의 이러한 움직임에 또 다른 ‘노림수’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고 경계한다. 앞서의 이 의원계 의원은 “사실상 ‘이낙연 저격용’ 당헌 개정에 불과하다”면서 “이 의원을 비롯해 차기 주자들이 참여하지 않는 전당대회가 무슨 흥행이 되겠느냐. 단연코 악법이다. 의원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 최측근도 “(당헌 개정을) 진짜로 추진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이 의원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언제든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 불출마 카드를 꺼내든 배경엔 친문계의 ‘말 못할’ 고민들이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력 차기 주자인 이 의원이 당권까지 가져가면 힘이 급속도로 쏠려 문 대통령 레임덕이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7개월 뒤 다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당권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란 걱정도 비슷한 맥락이다. 친문 직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이 의원이 당 대표 시절 구축한 입지를 바탕으로 다른 계파 후보를 후임으로 밀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다는 점도 거론했다. 그는 “차기 당 대표는 공룡여당을 이끌며 대선을 치르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이 의원이 아무리 유력 차기주자라도 당 대표와의 관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이 의원과는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 솔직히 이 의원도 필요에 의해 우리와 함께 가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이낙연 의원을 대선후보로 미는 상황이 온다면, 당 대표 자리는 최소한의 ‘친문 보호막’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