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마스크 구해 줄게” 4명에 약 10억 원씩 받은 뒤 잠적…중국인들, 한국인 향해 악플 세례
지난 2월 중국 언론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실추될 만한 보도가 나왔다. 기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수요가 가장 몰릴 때 한국인이 마스크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확인된 피해금액만 4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됐다. 해당 보도를 접한 중국 여론은 ‘생명과 직결된 마스크로 사기를 쳤다는 것’에 분개하는 목소리가 대다수였다.
중국 언론 ‘소후’에 소개된 이 씨. 이 씨 얼굴은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보도하고 오른쪽에 있는 지인의 얼굴만 빨간 펜으로 칠을 했다.
이 씨가 주로 했던 일은 중국 인플루언서인 왕홍을 영입해 화장품을 홍보하는 등의 마케팅 업무였고 판매 플랫폼에 자사 화장품을 넣는 역할도 했다. 당시 이 씨와 거래했던 한 중국업체 관계자는 “이 씨는 술을 좋아하고 호탕한 성격이다. 클럽을 좋아해 자주 찾았다. 명품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돈이 많은 줄 알았다. 술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영업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중국어에 능통했기에 영업 대부분을 맡거나 회사 대표가 중국에 왔을 때 통역을 전담하곤 했다. 이 씨는 중국 거래처에 자신을 ‘A 화장품 중국 지사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 씨의 실제 직위는 대리에 불과했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했다. 이 씨가 회사 몰래 백마진(리베이트)을 받는 것이 발각되면서다. 그는 이 일로 불명예 퇴직 위기에 몰렸다.
그때 코로나19가 터졌고 중국에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시작됐다. 한국보다 5배 이상의 가격을 쳐주는 곳도 있었다. 당시 마스크를 중국에 팔았던 한 무역업 관계자는 “당시 마스크 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 한국에서 마스크 가격은 1000원 이하였는데 중국에서는 5000원 이상에도 팔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퇴직 위기에 몰린 이 씨는 거래하던 업체들에 자신이 마스크를 사서 갖고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하던 업체 사장들은 이 씨가 평소 중국 지사장이라고 말했던 것을 믿고 다들 거래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때 이 씨가 다소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 씨와 마스크를 거래했던 피해자 B 씨는 “계좌를 10개 이상 보여주면서 분할해서 입금해 달라고 말했다”면서 “한 번에 1억 원이나 2억 원을 10개 계좌에 나눠 보내줬다. 몇 차례 이런 식으로 입금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입금돼 확인된 금액만 약 4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때 한국에 있던 이 씨는 마스크와는 전혀 무관한 곳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던 환전소였다. 이 씨는 대림동 환전소에서 위안화를 입금받을 계좌를 받아 마스크를 사겠다는 업체 대표들에게 보내주기 시작했다. 이 씨는 업체 대표들에게는 “2월 6일, 2월 13일 그리고 14일 배를 통해 웨이하이, 에어로 허페이, 남창(南昌)으로 마스크를 보내줄 것”이라며 확신을 줬다. 입금이 완료되면 이 씨는 환전소에서 돈을 받아 가기만 하면 됐다.
중국 피해자들이 중국에서 이 씨를 고소한 고소장.
확인된 마스크 사기 피해자는 4명이며, 피해액은 한 명당 평균 10억 원 정도다. 이 씨에게 당한 또 다른 피해자 C 씨는 “한 명당 피해액이 큰 이유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이 씨가 중국 지사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업체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고 있다”며 “이 씨 사기와 재직 중이던 브랜드가 관련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해당 브랜드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실은 배가 들어간다고 했던 2월 초 이 씨는 마카오로 출국한다. 이후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앞서의 C 씨는 “마카오로 출국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씨가 마카오로 출국한 것을 보면 사기로 얻은 돈을 도박으로 다 소진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중국 언론에 기사가 나간 뒤 한국을 욕하는 댓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으로 온 한국유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사기 많이 치지 않나”, “한국 XX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라는 반응이 있었다. 간혹 “한국 오빠가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는 댓글도 눈에 띈다.
이 사건은 중국 피해자들이 고소하면서 중국 언론에 알려졌고 이후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한국까지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B 씨는 “마스크 사기는 코로나19 위기 속 죄질이 매우 불량한 사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이 씨 행각이 알려져야 더 이상의 사기를 막을 수 있고 이 씨가 잡힐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이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답신이 없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