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도용 잇따라…사칭범들끼리 서로 ‘사칭주의’ 붙여놓는 웃지 못 할 상황도
SNS 사칭 피해를 입은 유명 투자자의 말이다. 증권가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당했거나 지금도 당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카카오톡 채널(플러스 친구) 사칭이다.
존리 메리츠 자산운용 대표를 사칭한 채널도 넘쳐난다. 대부분 무료 리딩을 해준다고 유혹한다.
카카오톡 채널은 기업들이 일반 이용자들에게 쿠폰이나 이벤트 알림을 하거나 일대일 상담을 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이 많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정반대다. 유명 투자자나 주식업계 관계자를 사칭하는 사칭범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 사칭범은 대부분 ‘매매기법, 실시간 차트, 종목 분석을 공유한다’거나 ‘무료 리딩 회원 모집 중’, ‘1:1 맞춤형 교육 진행, 확실한 재테크’ 등을 내세우고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직접 말을 걸어보면 대부분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대신 투자를 해준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돈을 맡겼다가는 그대로 잠적해버리고 돈을 찾을 수 없다.
투자 관련해 소셜미디어에서 약간이라도 유명하면 사칭범들은 놓치지 않는다. 한 증권사 A 부장은 페이스북에서 투자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도 아닌 A 부장 역시 카카오톡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사칭 채널이 나타난다. 심지어 사칭범 때문에 A 부장 고객 한 명은 사기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A 부장 아이디와 프로필 사진을 보고 믿고 돈을 맡겼다가 나중에서야 사기임을 알게 된 것이다. 피해를 당한 고객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돈을 찾을 수 없었다.
A 부장은 “실제로 피해 본 사람까지 등장해 경찰에 ‘심각하다’고 강조하며 나머지 사칭범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도 하고,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었는데 단순 사칭은 처벌근거가 없어서 피해자 발생 전까지는 방법이 없다고 나 몰라라 하고 있어 포기한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칭범들은 증권업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투자회사 대표, 유명 개미투자자 등 닥치는 대로 프로필을 도용해 무료 리딩을 권유한다. 투자 관련 유튜버, 스트리머들도 대부분 1개에서 5개 이상 카카오톡 사칭 계정을 발견할 수 있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천영록 불리오 대표, 내일은 투자왕 김단테 등 유명인을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천영록 불리오 대표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자신을 사칭하는 채널이 있어 카카오 비즈니스 고객센터를 통해 대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천영록 대표를 검색하면 사칭 채널이 다시 나타난 상태다.
천영록 불리오 대표와 유튜버 박호두 씨 모두 사칭 채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 투자 관련 유튜버 B 씨는 신고를 해도 처리 자체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B 씨는 “사칭 채널이 너무 많아져서 나중에는 사칭범들끼리 서로 사칭주의를 붙여 놓아 어이가 없었다”며 “과거 사칭 채널이 있는 것을 알고 신고를 했지만 내가 나임을 입증하는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신고 부서 찾는 데도 쉽지 않았고 신고 관련 서류도 규격에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바로 거부당했다. 사칭범은 손쉽게 계정 만들고, 사칭당한 피해자는 사칭 채널을 삭제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칭을 당한 증권업계 관계자도 카카오 측에서 사칭 문제를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관계자는 “투자 관련 인플루언서의 카카오 프로필 도용이 넘쳐나는 상황이 황당할 뿐이다. 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애꿎은 욕을 먹을 수도 있고, 선량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신뢰를 잃는다는 건 중요한 문제다.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카오 측은 “카카오톡은 사업자, 유명인 등의 사칭 위험 방지 등 이용자의 식별을 돕기 위한 ‘비즈니스 채널’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비즈니스 채널은 일반 채널과 달리 인증을 통해야만 개설할 수 있기 때문에 옆에 인증 마크가 뜬다. 인증 마크가 있는 비즈니스 채널을 만들어두면 사칭 채널과 차별화할 수 있다”면서 “만약 사칭을 당하면 ‘신고하기’ 기능을 통해 지체 없이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신고자가 증빙 서류를 접수하면 피신고자에게 소명 요청을 한다. 이후 소명을 들어보고 처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 사칭을 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인플루언서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굳이 필요도 없는 비즈니스 채널을 만들게 하지 말고 애초에 채널 개설 시 검증을 강화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앞서의 B 씨는 “비즈니스 채널을 만들어도 인증 표시만 있을 뿐 사칭 채널은 그대로 존재한다. 또한 사칭 채널을 신고하면 삭제할 수 있다지만 기나긴 절차를 통해 채널을 삭제한다 해도 내일이면 또 만들어진다. 의미 없게 느껴질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