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만 10개 기업 상장폐지…소액투자자들 피해 우려 ‘연중 상시 감사’ 요구 커져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다섯 배에 이르는 10곳의 기업이 상장폐지되면서 소액투자자들의 투자자 보호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8년 9월 26일 상장폐지가 예고된 11개사 주주들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상장폐지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웅진에너지와 신한, 썬텍, 파인넥스, 리드, 피앤텔, 에스마크, 차이나그레이트, 이엘케이, 에스에프씨가 올해 상반기 상장폐지된 기업이다. 웅진에너지와 신한, 이엘케이, 피앤텔, 에스마크, 파인넥스, 에스에프씨 등 7개 기업은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의견거절 감사의견을 받아 상장폐지됐다. 코스닥 상장사 리드의 경우 경영진의 횡령 및 배임 혐의와 함께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연루되며 상장폐지됐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1일 2019 사업연도 12월 법인 결산 관련 시장조치 현황을 통해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하는 법인이 40곳(코스피 7곳·코스닥 33곳)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집계된 관리종목으로 신규 지정된 법인만 30곳(코스피 2곳·코스닥 28곳)이다. 2018년 ‘무더기 상장폐지’ 사태의 재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더기 상장폐지’ 사태는 2018년 10월 11개 코스닥 종목이 상장폐지되면서 소액투자자들이 처음으로 집단행동까지 나선 일이다. 당시 소액투자자들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상장폐지 결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소액투자자들은 입장문을 통해 “현행 감사 제도를 개선해 상장폐지 심사 대상 기업이 충분한 소명 기회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장폐지 절차가 줄었음에도, 기업에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거래소는 2018년 2월 코스닥 상장규정 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기업심사위원회 심의와 시장심의위원회 심의·의결 2단계 절차를 기업심사위원회 심의·의결로 단순화한 바 있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에 대해서도 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은 상장사가 외부감사 결과 적정 감사의견을 받지 못하면 곧바로 상장폐지 대상이 되는 제도다. 적정 감사의견을 받지 못한 기업은 이의신청을 통해 동일한 감사인과 재감사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 한해 6개월 이내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선기간이 짧은 데다가, 개선기간 부여의 전제조건인 재감사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법원도 거래소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상장폐지 절차를 밟던 6개 기업에 대해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인용되며 정리매매가 중단된 것. 법원은 회생절차를 진행 중이던 감마누에 대한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변경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회생사건의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파티게임즈에 대해서는 “감사인이 재감사 보고서에서 2017년 재무제표에 대해 의견거절을 한 것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특히 감마누는 2018년 12월 31일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고, 2019년 1월 감사의견 ‘적정’을 받으며 상장폐지 사유가 사라졌다. 감마누의 부활로 상장폐지 결정을 내린 거래소가 체면을 구기게 된 셈이다. 최근 실소유주 박 아무개 씨 관련 의혹이 증폭된 파티게임즈의 경우 재감사 관련 회계법인과 소송을 진행 중인 한편, 거래소와 상장폐지 결정 무효 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 아무개 씨는 2018년 9월 파티게임즈 재감사 기간 당시 회계법인에 연락해 “재감사보고서 제출 기간을 앞당겨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더기 상폐’ 사태는 2018년 국정감사에서도 이슈로 떠올랐다. 국정감사에서는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 절차와 재량권 남용 등이 지적됐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2019년 3월 ‘감사의견 비적정기업에 대한 상장폐지 제도 개선’ 계획을 밝혔다. 감사의견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에 재감사를 요구하지 않고, 차기년도 감사의견을 기준으로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 다만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감사를 받아 감사의견을 수정하는 것도 허용했다. 더불어 상장폐지 사유 해소를 위한 개선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했다.
그 결과 지난해 상장폐지 기업은 급격히 줄었다. 2018년 감사에서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들에 1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 탓이다. 다만 이들 기업 가운데 2019년 다시 비적정 의견을 받는 경우가 생겨나며 올해 10곳의 상장사가 한 번에 퇴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소액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해 상장폐지 제도가 다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다수 상장사에서 기업사냥꾼의 무자본M&A와 경영진의 배임·횡령 문제 등이 불거지며 사회적 이슈가 된 만큼, 외부감사인과 소액투자자들이 회사 내부의 불법행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거래정지 중인 한 코스닥 상장사 소액투자자 대표는 “최근 문제가 불거진 기업들은 공시를 누락하거나 허위사실을 공시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며 “소액투자자들이 투자를 하는 데에 있어 유일하게 공신력 있는 지표는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인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외부감사인의 공신력 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내부의 은밀한 불법행위는 투자자는 물론 외부감사인 또한 확인하기 어렵다”며 “내부에서 문제 발생 시 외부감사인이 파악할 수 있는 연중 상시 감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도 연중 상시 감사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을 통해 주요 회계이슈 공시책임을 강화했다. 연중 상시 감사를 유도하기 위해 사업보고서에 핵심감사사항 등 주요 회계이슈와 관련된 내부감사기구와 외부감사인 간 논의 사항에 대해 공시토록 한 것. 다만 투자자들이 원하는 상시 감사의 적극적 도입 등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매년 평균 5곳에서 10곳 정도의 기업이 상장폐지되는데, 올해에는 지난해 상장폐지 대상이었던 기업들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이월하며 증가한 영향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투자자 보호 강화 요구에 대해서는) 금융위와의 협의를 통해 개선 노력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