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유풍’에 노심초사

피할 수 없다면 무시해라?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 관계자들은 유시민 후보가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자 영 찜찜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거 속성상 앞서가던 후보들이 한 번 반격의 모멘텀을 줘 역전을 허용하면 웬만해선 재역전이 힘들다는 게 정설이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여유 있게 앞서가던 한나라당의 수도권 후보들이 본격 선거운동 직전에 터진 유시민발 단일화 효과의 영향으로 선거 초점이 ‘어느 정도 차이로 이길 것인가’에서 ‘언제 역전될 것인가’로 모아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정몽준 대표 원톱 체제가 유시민 바람을 오히려 부추길 것이라고 걱정한다. 특히 정몽준 대표가 유 후보의 단일화 하루 전 그의 천안함 발언에 대해 국가관이 잘못됐다며 공격한 것이 극적인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정몽준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의 1등 공신 아닌가. 그는 지난 2002년 야권 단일화 합의를 내팽개치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했다가 그것이 노풍 점화를 불러 극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이번에도 정 대표가 ‘리틀 노무현’ 유시민 후보를 괜히 자극해 공격하다가 유 후보가 야권 지지 부동층 당원의 표 결집으로 신승을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유 후보에 대해 지나친 견제를 한 것이 오히려 ‘어게인 2002’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노풍’ 재점화의 불씨를 살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노풍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가 오히려 ‘풍선효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의 선거 지도부는 유 후보가 승리하자마자 일제히 “노무현 정권 컴백쇼” “경력을 세탁한 위장개업”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공세는 오히려 유 후보가 만들어 논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 지도부가 노풍에 대해 전면적인 대결로 전략을 정함에 따라 이번 선거를 정책대결 위주로 가져간다는 기존 방식에서 점차 벗어나 정치선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당의 한 재선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이미 인위적인 ‘노풍’ 차단은 늦었다. 차라리 현직 프리미엄이 있는 수도권 후보들이 정책 아젠다를 더 꾸준히 던져 노풍 프레임을 방관 또는 무시하는 전략이 더 낫다. 노풍에 대한 반격은 한 곳을 누르면 한 곳이 튀어나오는(전국 9곳의 친노 후보들이 연대해 싸우면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 때문에) 풍선효과로 인해 오히려 노풍을 더 부채질할 수 있다. 유시민 바람으로 노풍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자리를 잡았다. 여당이 그것을 막아낼 방법은 없다. 반면 조용하지만 강한 정책바람으로 정면승부를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