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발언 문제 삼는 이들 향해 “나를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치적”
정치·사회적 발언들과 관련해 정우성은 “나를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사람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관심 속에는 ‘그 정우성’이, 대통령 역을 맡는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섞여 있었다. 평소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걸 꺼리지 않았던 그가 연기해 낸 대통령이 과연 누굴 모델로 한 것인지 설왕설래가 이어지기도 했다.
“특정 인물을 강조하지 않았는데요(웃음). 영화에 나오는 인물을 연기했을 뿐이지. 만일 누군가를 연상하셨다면 그건 영화를 보신 분들의 생각이겠죠.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정치적이나 국제적 상황 속 대한민국 대통령이 왜 수동적인 자세와 답답함을 보일 수밖에 없을까, 그런 정서적 접근을 우선시했을 뿐이에요. 현실적인 어떤 상황에 빗대서 상상의 이야기를 쓰긴 했지만 영화를, 캐릭터를 구현하는 사람으로서는 현실 인물을 다 배제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애초에 실존하는 지도자나 그 전에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지도자들의 모습을 (캐릭터로) 적용하는 건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지난 7월 23일 열린 ‘강철비2: 정상회담’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정우성은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해 화제가 됐다. 영화 이외의 부분에서 가장 큰 해프닝이었던 만큼 인터뷰 때마다 질문이 쏟아졌을 테지만 또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우성 역시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답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서 해방이 되고, 분단이 되고, 또 6‧25를 겪고,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정치적 상황이 열강에 의해서 펼쳐졌죠. 그런 뒤 같은 민족이 주적이 돼 긴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 정치적 상황을 다 배제하고 본다면 남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 다 불행한 시간을 겪었다고 생각했어요. 그 불행을 무덤덤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시간 안에서 굉장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많지 않았나…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큰 파도가 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결국 우리인데, 우린 충분히 불행한데 언제까지 더 불행해야 하나. 이 땅에 사는 우리에 대한 연민이 그때 갑자기 북받쳐 올라왔던 것 같아요.”
지난 7월 23일 열린 ‘강철비2: 정상회담’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정우성은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잠시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제가 정치적인 발언을 한 건 그렇게 (많이) 없더라고요(웃음). 보편적인 세상에서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의 원인과 피해자들을 알린다는 것이지, 제가 편향적이거나 정치적 또는 한쪽 방향의 이득만 위해 이야기한다거나 그러진 않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로만 저를 바라본다는 건 사실 저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지도 않은 거거든요. 무조건 ‘저 사람 그렇대, 그럼 그런가 보다’ 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정치적인) 또 그런 여지가 있지 않느냐 할 수 있죠. 하지만 영화를 보시면 정치적 이야기보다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어떤 가치관과 입장을 갖춰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다는 걸 아시게 될 거예요.”
조금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가벼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한경재 대통령은 너무 잘생겨서 비현실적이지 않나”는 농담 섞인 질문이었다. 곧바로 “근데 그건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나”는 답변이 나왔다. 이런 질문을 천연덕스럽게 받아칠 수 있는 것도 정우성이 가진 매력 가운데 하나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작품 찍을 때마다 대학교수가 왜 저래(마담 뺑덕), 출입국관리소 공무원이 왜 저래(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그러시니까…. 이제는 이게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마다 그런 이야기가 거론되니 저로서는 그냥 넘겨야 될 같아요. 사실 시각적으로 처음 보이는 캐릭터기 때문에 (외모가) 첫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그 너머의 갈등이나 고민, 가치관은 제가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요. 그 안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2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이어 ‘강철비2’로 다시 스크린을 찾는 정우성. 이번에는 ‘절친’ 이정재와 같은 시기 나란히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데 그게 왜 경쟁이에요(웃음)? 여태 극장에 걸린 영화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개봉은 모두에게 아주 다행스럽고, 자부심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코로나19에 대처를 잘했기 때문에 이렇게 극장에 올 수도 있고, 또 이제 영화가 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죠. 만약 이정재 씨와 제가 똑같거나 비슷한 장르의 소재, 비슷한 캐릭터라면 경쟁이 되겠지만 전혀 다른 영화잖아요. 관객들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거지 경쟁은 아닌 것 같아요.”
그의 말마따나 극장가를 포함해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사회에 조금씩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19 전까지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이 이토록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는 사람도 많다. 행복이란 것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가 교훈처럼 와닿기도 한다. 배우 정우성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저는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선택인 거지. 매일 아침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다 다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그런데 우리는 행복이란 단어를 저 멀리 떨어뜨려 맡겨 놓고 ‘우린 몰라’ 하기도 해요.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거겠죠(웃음). 내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카페에서 만나 수다 떨고, 함께 술 한 잔 한다는 게 이렇게 비싼 것이었는지 코로나19 사태에서야 깨달았잖아요.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일상 속 행복을 더 많이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