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준 본부장. | ||
문제의 인물은 국민연금공단 연금 관리운용본부 조국준 본부장이었다. 사실 공단의 임원 한 명이 사직서를 냈다는 사실이 증권가의 핫이슈가 되는 것은 드문 경우다.
그러나 이날 조 본부장의 사표제출 사실이 증권가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자금 1백14조원의 운용을 총괄하고 있는 책임자였기 때문이었다.
조 본부장은 20여 년 동안 한미은행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2년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연금운용본부장에 스스로 지원해 입사했다. 그 이후 조 본부장은 1년3개월 동안(그의 임기는 2004년 말이다) 1백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운영하는 실질적 책임자로 일해왔다.
국민연금 1백14조원을 움직이던 그가 임기를 무려 1년6개월이나 남겨놓은 상황에서 돌연 사직서를 제출하자 업계의 관심이 쏠릴 만도 했다. 특히 공단 내부에서는 조 본부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져 그의 사임 배경을 두고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국민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 아니다. 휴가계를 제출했는데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의 비서 조윤경씨 역시 “지난주에 퇴근할 때 이와 관련한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사직서를 냈다니 뜻밖이다”며 놀란 표정이었다.
이들의 말로 미뤄보면 조 본부장은 공단 직원들에게조차 아무 말도 없이 사임의사를 밝혔다는 말이다. 그가 사직서를 제출했는지의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조 본부장의 사임 배경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이즈음 증권가에서는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조 본부장이 한 증권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동안 자금 운용과 관련해 외압에 시달려 고민이 많았다”는 내용 등이었다. 그의 사표제출 사실은 이튿날인 지난 10일 전 언론에 기사로 실렸다.
▲ 국민연금관리공단 본사 건물. | ||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조 본부장은 “사임의사를 밝히고 휴가를 떠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만큼 다시 본업에 충실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가 다시 회사로 출근하자, 국민연금공단측에서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다는 말이 잘못 전해진 것 같다”며 의혹을 떨쳐내기 위해 부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짧은 ‘외유’였다고 애써 사건을 무마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물론 증권가에서는 그가 사임을 결심했던 배경에 대해 여전히 의혹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는 그동안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자금운용 등을 둘러싸고 여러 기관들과 마찰이 있어 온 데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태생적 문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관리운용본부는 1실8팀 체제로 이뤄져있다. 국민연금 관계자에 따르면 본부조직은 지원부서인 기금관리실(기금기획팀, 자금관리팀은 기금관리실 소속)과 투자전략팀, 리서치팀, 리스크관리팀, 채권팀, 주식팀, 아웃소싱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조 본부장을 필두로 이들 8개 팀에서 총 68명의 직원(펀드매니저 46명)이 기금 1백14조원을 운영한다.
그러나 이 기금을 운영하는 절차는 무척 복잡하다.
공단측이 매년 초 기금운용계획을 세우면 기금운용위원회가 이를 검토하고 이어 국회의 동의를 거쳐 기금운용본부에 허가가 떨어진다. 이를 검토하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 경제부처 차관급 인사, 가입자 대표인 민주노총, 한국노총, 시민연대, KDI 원장 등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있다보니 마찰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이 국민연금 관계자의 설명.
특히 이번에 조 본부장의 ‘사직서 제출 해프닝’이 일어난 데에는 정부측 인사들과 조 본부장간의 알력다툼이 주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공단 주변에서 오가는 얘기.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기금을 운용하는 방법 중에서 ‘주식투자’를 두고 지난해 말부터 정부와 본부장의 의견 대립이 무척 심했다”고 전했다.
정부측에서는 기금으로 향후 주식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한 반면 조 본부장측에서는 주식에 대한 투자비중을 높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
그러나 결국 정부 인사들과의 마찰 속에 조 본부장이 더 이상 의견을 주장할 만한 권한이 사실상 없었던 것이 이번 사표제출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할 말은 다 하는 ‘윗선’들이 너무 많다. 이번 일도 그런 연장선상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고 전해 그동안의 의혹이 사실 무근이 아님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