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박사’에 뒤통수 맞은 광팬들 경악
▲ 김 씨가 부동산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경매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
한때 부동산 경매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재테크의 달인’이 사기꾼으로 전락하기까지 기구한 인생 스토리를 들여다 봤다.
김 씨는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종로구 국일관 등 경매로 넘어간 부동산 3~4곳을 공동으로 사들여 수익을 나누자고 속이는 수법 등으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은 뒤 100억여 원의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자신이 설립한 그룹이 경매와 주식투자를 접목한 ‘한국의 골드만삭스’가 될 것이라는 말로 현혹해 투자자들을 모집해 왔다. 김 씨의 명성을 듣고 투자자들이 몰려들자 그는 거짓 투자정보를 퍼뜨려 자기 회사의 전환사채에 투자할 것을 권한 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파는 수법으로 수십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김 씨의 주가조작으로 인해 2008년에는 그룹 자회사의 주가가 두 달 사이 에 1600원에서 8700원까지 치솟았다가 한 달 만에 1000원대로 급락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김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자신의 강의에 열광하거나 ‘비법전수’를 원하는 수강생들의 뒤통수를 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G 사의 전환사채 투자 안내서를 게재하면서 “전환사채는 손실의 위험성이 없다. 원금을 무조건 보장하겠다”며 청약을 권유해 회원 313명으로부터 110억 원을 모집해 사채자금 상환에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매강의 수강생들을 상대로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경매에 대해 허위·과장 정보를 제공하는 수법으로 투자를 권유해 투자금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김 씨는 2008년 자신이 인수한 코스닥 등록업체 S 사가 필리핀에 카지노 사업장을 열고 라오스에서는 사파이어 채굴권을 따냈다고 거짓선전을 해 투자자를 끌어 모은 뒤 이 주식을 위탁받아 수십억 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김 씨가 한때 경매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문가로 통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김 씨의 사기행각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김 씨가 쉽게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이름값’ 때문이었다. 조사결과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경매박사’로 통하며 1만 400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재테크 카페까지 운영하고 있던 김 씨의 투자정보를 고스란히 믿고 투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일부 피해자들은 “수많은 경매 관련 책을 출간하고 방송출연과 언론 인터뷰는 물론이고 대학강단에까지 섰던 김 씨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번이라도 김 씨의 강의를 듣거나 그와 접촉해 본 인물이라면 그가 흘리는 정보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에 대한 일부 수강생들의 믿음은 거의 광적이었는데, 심지어 거액을 손해본 이들이 김 씨의 말을 믿고 또다시 대출받은 돈을 투자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날고 기는 고수들도 발붙이기 어렵다는 부동산 바닥에서 ‘고수’로 통하던 김 씨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부동산 재테크의 달인’ ‘경매박사’ ‘재신’ 등 화려한 수식어로 명성을 떨쳐오던 김 씨의 인생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그가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한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방불케했다.
▲ 김 씨에게 피해를 당한 이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인터넷 카페 모습. |
당시 그의 수중에 있던 돈은 교도소에서 받은 19만 8000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출소 후 현장조사와 이해관계 조절, 명도, 환금성 분석, 수익성 분석 등 각 분야에서 전문가인 사람들을 끌어모은 김 씨는 당시 사무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두 시간 새우잠을 자며 경매를 통한 재기 의욕을 불태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도 김 씨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 대학에 경매강의를 나가기도 했다. 경매물건의 권리분석은 물론 명도방법과 리모델링까지 실전처럼 생생하게 강의해 온 그는 어느덧 스타강사 반열에 올랐고, 공동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자금을 불릴 수 있었다.
김 씨가 본격적으로 세간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이유는 부동산 업계에서 전설로 전해지는 이른바 ‘500억 원 신화’ 때문이었다. 그는 20만 원도 안되는 돈을 부동산 경매를 통해 불과 2년 만에 500억 원으로 만드는 기적 같은 신화를 창조해냈다. 경매물건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경매물건에 얽힌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수익창출과 정확히 연결짓는 그의 감각과 실력이 신화창조의 밑거름이 됐다.
김 씨가 단돈 19만 8000원을 가지고 경매에 뛰어들어 단 2년 만에 500억 원을 벌었다는 얘기가 퍼지자 그는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김 씨는 방송과 언론 등에 자주 노출되며 국내 최고의 경매전문가로 유명세를 탔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탈출한 김 씨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특히 재산증식의 부푼 꿈을 안고 있던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김 씨의 인생은 날개를 달았다. 그는 부동산 경매에 대한 실전경험을 담은 책을 집필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집필한 10여 권의 경매서적들은 단순히 경매지식만을 묶어놓은 기존의 책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보이며 속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기업 운영자로서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올 초만 해도 김 씨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법원경매전문기업인 G 그룹을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밝히며 사업영역 확장을 공표하기도 했다. 법원경매와 부동산 자산관리업에 국한되지 않고 공동투자 컨설팅업, 상가운영 모집 및 임대사업, 부동산 분양 임대대행업, 테마파크, 해운업 등 부동산 관련 사업으로 다각화시키겠다는 것이 김 씨의 계획이었다.
현재 인터넷 카페에는 김 씨에게 피해를 당한 이들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상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