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자산가 신용대출로 우량 자산에 투자…저소득자는 위험 안고 증시 고금리 융자 쏠림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모두 ‘돈잔치’에 뛰어들고 있지만 처한 상황이 달라 부의 양극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종현 기자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 2분기(4~6월) 중 가계신용을 보면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873조 원(잠정)으로, 지난 1분기 말보다 14조 8000억 원 증가했다. 지난 1분기 증가액(15조 3000억 원)보다 다소 감소한 수치다. 반면 2분기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잔액은 672조 7000억 원으로 지난 1분기 말보다 9조 1000억 원이나 급증했다. 올해 1분기 증가액 1조 9000억 원의 5배 수준이다.
고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은행대출은 14조 4000억 원이나 급증했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비은행 대출은 2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신용대출 증가액은 은행이 4조 1000억 원, 비은행이 1조 400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8월 19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 5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신용등급과 대출금액 등에 따라 연 1.74%~3.58%다. 주담대 금리(신규코픽스 기준)의 경우 연 2.04~3.98%다. 고신용자에 적용되는 신용대출의 하단이 주담대 하단보다 낮다. 이른바 신용대출보다 담보대출 금리가 더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신용대출은 상대적으로 담보대출보다 미상환 위험이 더 큰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더 많은 가산금리가 붙어 전체 대출이자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대출 규제를 위해 차주에 대한 평가가 정교해지면서 신용대출의 부실 확률이 줄었고, 그만큼 가산금리도 낮아졌다. 2019년 3월만 해도 예금은행 신용대출(신규기준) 금리는 4.6%, 주담대 금리는 3.04%로 차이가 1.54%포인트(p)에 달했다.
하지만 올 6월 말 신용대출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3%대 아래인 2.93%까지 떨어지면서 주담대 금리(2.49%)와의 차이는 0.44%p로 좁혀지게 됐다. 1억 원이면 연간 차이가 44만 원이다. 담보설정 비용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차이가 없는 셈이다. 부동산 규제로 담보대출 성장에 제동이 걸린 은행들도 신용대출 영업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도입됐지만 초저금리로 기존 부채의 이자부담이 낮아져 추가 차입 여력이 발생했다. 예금은행의 대출금리 연 3% 미만 가계대출 비중을 보면 2018년 7월 10.7%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봄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올 6월 85.1%까지 치솟았다. 은행 가계대출의 85%가 연 이자율 3% 미만이란 뜻이다. 신용대출 비용이 주담대보다 낮아 자산가나 고소득자들은 대출 규제의 영향을 덜 받으며 은행에서 맘껏 돈을 빌릴 수 있는 셈이다.
고소득자와 자산가들은 차입 투자에 적극적이다. 통계청의 ‘소득 분위별 대출 현황’을 보면 지난해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5분위 가구의 경우 주담대의 29.6%를, 신용대출의 15.3%를 사실상 부동산 투자를 의미하는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 마련’에 사용했다. 반면 소득1분위의 경우 주담대의 5.7%, 신용대출의 3.1%만을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 마련’에 썼다. 최근 집값 상승에 고소득자들이 가장 많은 수혜를 입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최근에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도 차입 투자에 적극적이다. 주식시장에서다. 증권회사 등의 가계대출이 올 1분기 4조 7000억 원 늘어난 데 이어 2분기에는 10조 3000억 원이나 폭증했다.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융자 잔액이 3월말 6조 5000억 원에서 6월말 12조 6000억 원으로 6조 원가량 늘어난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신용융자는 지난 8월 18일 16조 원을 돌파했다. 신용융자는 증거금만 내면 손쉽게 빌릴 수 있지만 금리가 연 10%에 육박해 주로 저신용자들이 이용하는 ‘고리대’다.
신용융자로 매수한 주식의 가격이 일정 수준으로 하락하면 반대매매가 자동으로 실행돼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이자를 감당하려면 단기간에 고수익이 가능한 변동성 높은 종목에 투자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자산가와 고소득자들이 싼 이자율로 큰 돈을 빌려 변동성 낮은 우량 자산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장기투자도 가능하다. 그만큼 투자성공 확률이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초저금리와 통화량 팽창으로 자산가격 상승 기울기가 근로소득 상승추세보다 가파르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부의 양극화가 코로나19 이후 더 뜨거워진 자산시장 랠리로 고착화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최열희 언론인